63. 번제형 무실에게 답함


  편지를 받으니 불사(佛事)는 행하나 선어(禪語)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니 불사를 행함과 선어를 이해하지 못함이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불사를 행하는 것이 곧 선어(禪語)임을 아십시오.

  선어(禪語)를 알고 불사를 행하지 않으면 마치 사람이 물 속에 앉아 있으면서 목마르다고 소리치는 것과도 같고, 음식 광주리 속에 앉아 있으면서 배고프다고 소리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마땅히 선어가 불사이고 불사가 선어임을 아십시오.

  행하는 것과 아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법에는 있지 않습니다.

  만약 다시 이 속(법)에서 같음과 다름을 찾는다면 이것은 빈주먹 손가락 위에서 실다운 견해를 내는 것이고 근(根), 경(境), 법(法) 중에 헛되이 터무니없는 사실을 꾸며내는 것입니다.

  마치 물러가면서 앞으로 가는 것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급히 서두를수록 더디어지며 빨리 할수록 멀어질 것입니다.

  바로 꺾어 마음을 깨닫고자 한다면 다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이해함과 이해하지 못함 같음과 다름 다름과 다르지 않음 이와 같이 사량함과 이와 같이 헤아리는 것은 타방세계(他方世界)에 쓸어버리고 다시 쓸어버릴 수 없는 곳에서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같은지 다른지를 살펴보면 문득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끊어질 것이니 마땅히 이러한 때에는 스스로가 애써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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