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탕승상 진지에게 답함


  그대가 이미 이 일대사인연에 마음을 두니 사바세계(缺減界)는 허망하여 참되지 않아서 혹은 거슬리고 혹은 순(順)하는 하나하나가 모두가 공부할 마음을 일으키는 계기(時節)입니다.

  다만 마음으로 하여금 활짝 비게 하여서 평상시 합당히 해야 할 일이라도 분수를 따라 덜어버리고 경계에 부딪히고 연(緣)을 만남에 수시로 화두를 들지언정 빠른 결과는 구하지 마십시오.

  지극한 이치를 궁구함은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마음을 두어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만약 마음을 두어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기다리는 바의 마음에 도안(道眼)이 가려짐을 당하여 급할수록 더욱 더뎌집니다.

  다만 화두를 들다가 문득 (화두를) 드는 곳에서 생사심이 끊어지면 이것이 집에 돌아가 편안히 앉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을 얻는다면 자연히 고인의 무수한 방편을 뚫어 가지가지 다른 견해가 자연히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경전에서 “마음의 생사를 끊고 마음의 빽빽한 수풀을 베고 마음의 더러운 때를 씻고 마음의 집착을 푼다.”고 했으니 집착하는 곳에 마음으로 하여금 (화두를) 굴리되 굴릴 때 또한 굴린다는 도리도 없으면 자연히 두두(頭頭)가 분명하고 물물(物物)이 드러나서 평상시 연(緣)을 따르는 곳에 혹 깨끗하고 혹 더럽고 혹 기뻐하고 혹 성내고 혹은 순(順)하고 혹은 거슬림에 마치 구슬이 쟁반에서 구름과 같아 튕기지 않아도 저절로 구를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얻으면 잡아내어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 없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남양충국사(南陽忠國師)가 말씀하시되 “법이 얻은 바 있다고 말하면 여우의 울음이 된다.”고 하시니 이 일은 맑은 하늘에 해와 같아서 한번 보면 곧 보이니 진실로 스스로 본 것은 삿된 스승이 흔들래야 흔들 수 없습니다.(註 227번 참조)

  지난날에 또한 일찍이 대면해 말하되 이 일은 전해 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겨우 기특하고 현묘하여 여섯 귀가 함께 꾀하지 못하는 말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서로를 속이는 것이니 곧 끌어다 놓고 얼굴에다 대고 침을 뱉어야 할 것입니다.

  서생(書生)에서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세간법(世間法) 가운데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만약 이 일을(일대사인연) 깨달아버리지 못한다면 곧 헛되이 남섬부주(南閻浮提)에 와서 한 번 만났다가 인(因)을 거두고 과(果)를 맺을 때 일신(一身)에 악업을 두르고 갈 것이니 경전에서는 “어리석게 복을 지음이 삼생(三生)의 원수다.”라고 했으니 어째서 삼생(三生)의 원수라고 하는가? 제 일생(第一生)에는 어리석게 복을 지어 견성하지 못함이요, 제 이생(第二生)에는 어리석게 지은 복을 받으나 부끄러움이 없어서 좋은 일을 하지 않고 한결같이 업을 지음이요. 제 삼생(第三生)에는 어리석게 지은 복을 받음이 다하고 좋은 일도 하지 않아 몸뚱이를 벗어버릴 때에 지옥에 들어감이 화살을 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은 받기가 어렵고 불법은 만나기가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서 이 몸을 제도하겠습니까? 이 도를 배움에 마땅히 확고한 뜻이 있어야 하니 만약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마치 소리를 듣고 점치는 자가 사람이 동(東)을 말하는 것을 보고는 곧 사람을 따라 동쪽으로 달려가고 서(西)를 말하면 곧 서쪽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잡아 가져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융(懶融)선사께서는 “설사 한 법이 열반보다 뛰어나더라도 내가 설함은 또한 꿈과 환과 같다”고 말씀 하셨으니 하물며 세간의 헛되고 꿈과 같아 실답지 못한 법에 다시 무슨 마음이 있어 세간과 더불어 교섭하겠습니까? 원컨대 그대는 이 뜻을 견고히 하여 손에 넣는 것으로 확고한 뜻으로 삼으면 비록 대지(大地)와 유정(有情)들로 하여금 다 마왕(魔王)이 되게 하여 와서 어지럽게 하고자 하더라도 그 틈을 얻을 수 없으니 반야(般若)상에서는 헛되이 버릴 공부가 없습니다.

  만약 마음을 위에서 말한 것에 둔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또한 종자를 깊이 심어 죽음이 닥쳐왔을 때 또한 업식(業識)의 끄달림을 당해 모든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몸을 바꾸어 돌아오면 또한 나를 매(昧)하게 하지 못할 것이니 살피십시오.
,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