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황문사 절부에게 답함


  여기서는 따로 <보충설명>을 하지 않고 본문에 바로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편지와 많은 이야기를〔許多葛藤이란 장주가 자신이 깨달은 인연이라든지 깨달은 내용에 대해 대혜스님께 장황하게 말씀드린 것을 말한다〕받고 나도 모르게 곧 풀어서 이와 같이 나[대혜스님 자신]의 견해를 보였더니 바로 활발발(活鱍鱍
)하게 대답해 왔습니다.〔이 부분은 현재 출판되어 있는 서장에는 “이처럼 솜씨 있게 다룰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 나는 다르게 보고 싶다. 스승은 제자가 깨달으면 낱낱이 점검한 후에 하나도 막힘이 없을 때 인가를 하듯이 장주가 자기가 깨달은 내용을 서신을 통해 보내오니 대혜스님께서 다시 장주를 점검하기 위해 자신의 살림살이를 보였더니 장주는 막힘이 없이 다시 맞받아쳤다는 말이다. 拈弄은 註 867번 참조〕

  진실로 스스로 증득한 사람이니 기쁘고 기쁩니다. 다만 이와 같이만 한다면〔이 말은 ‘장주와 대혜스님이 서로 깨달은 경지만 주고받는다면’의 의미이다〕교학하는 사람들이〔여기서 從敎人은 그냥 從敎人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從은 종사한다는 뜻이고 敎는 敎學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한다. 따라서 從敎人은 교학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말하기를 “이 관리는 본분을〔관리로써의 임무〕 따르지 않고 어지럽게 말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他家〔여기서 他家란 從敎人에 반대되는 말로 참선을 하는 문중 곧 선종을 말한다고 여겨진다.〕에는 당연히 상통한 사람의 아낌이 있을 것이니, 오직 일찍이 증득하고 깨달은 사람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지 만약 메아리만 듣는 무리〔부처님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말씀만 쫓아가는 사람〕라면 그들이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鑽龜打瓦를 글자대로 해석하면 문맥이 어색해서 이렇게 해석했는데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여래선이니 조사선이니 하며 비판한다면〔안진호스님은 狀主의 비판이라고 했으나 나는 입장이 다르다. 여래선이니 조사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장주가 아니라 從敎人, 메아리만 듣는 무리이다. 이들은 장주가 대혜스님과 법거량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여래선을 깨달은 경지다, 조사선을 깨달은 경지다라고 자기들끼리 의견이 분분함을 말한다〕나의 주장자를 다 맞아야 할 것입니다.

  자 한번 일러 보시오.〔장주에게 묻는 말이다〕 이것은 그들을 상주는 것입니까, 벌주는 것입니까〔是란 주장자로 때리는 것. 伊란 從敎人, 메아리만 듣는 무리를 가리킨다〕제방(諸方)에서 다시 30년을 의심하도록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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