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영시랑 무실에게 답함(2)


  편지를 받아보니 종명루진(鐘鳴漏盡)의 비방은 임금에게 정성을 다하고 아래로 백성을 편한케 하기 위함이니 자연히 거문고 타는 것을 듣고 그 소리를 감상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그대는 모든 일을 굳게 참아 역순의 경계를 만나면 바로 잘 힘을 쓰십시오.

  이른 바 이 깊은 마음을 가지고 진찰(塵刹: 티끌같이 많은 세계)을 받듦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평소에 도를 배움은 다만 역순경계 가운데 수용하고자 함이니 역순이 앞에 드러날 때 고뇌를 내면 평소에 일찍이 이 가운데서 마음을 쓰지 않음과 거의 같을 것입니다.

  조사가 말씀하시되 “대상(境)과 반연(緣)이 좋고 싫고가 없거늘 좋고 싫어함이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으로 만약 억지로 이름 붙이지 않는다면 망정(妄情)이 무엇을 따라 일어나리요? 망정(妄情)이 이미 일어나지 않으면 참된 마음이 두루 안다.” 고 하셨으니 청컨대 역순의 경계에 항상 이와 같이 살핀다면 오래하면 자연히 고뇌(苦惱)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고뇌가 이미 생기지 않으면 곧 마왕(魔王)을 몰아서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 이미 나이도 많은데 (나를 등용함은) 무슨 까닭인가라는 말이 귓가에 남아 있으니 어찌 잊겠습니까!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할진대 마땅히 시절인연을 관찰하십시오.

  거사가 지난 십여 년 사이에 스스로 한가로운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벼슬과 권세가 손에 있으니 곧 바쁜 시절입니다.

  한가할 때는 누가 한가하며 바쁠 때는 누가 바쁜가를 생각하고 마땅히 바쁠 때에 도리어 한가한 때의 도리(道理)가 있고 한가할 때에 도리어 바쁜 때의 도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바로 바쁜 가운데에 임금이 그대를 기용(起用)한 뜻을 체달하여 잠시라도 잊지 말고 스스로 경책하고 살펴보아 무엇으로써 보답할까 생각하십시오.

  만약 항상 이와 같은 생각을 일으키면 끓는 가마솥이나 화롯불, 칼산, 칼수풀 위에도 또한 마땅히 나아갈 수 있는데 하물며 눈앞의 사소한 역순경계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대와 이 도리가 서로 계합한 까닭에 생각을 남기지 않고 다 토로(吐露)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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