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누출밀 중훈에게 답함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 후에 날마다 연(緣)을 만나는 곳에 바깥 경계에 빼앗김을 당하지 않습니까? 책상에 쌓인 글을 봄을 물리쳐 둡니까? 사물과 서로 마주칠 때에 화두를 굴립니까? 고요한 곳에 있을 때에 망상은 하지 않습니까? 이 일을 몸소 궁구하되 잡념은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 망령되이 과거법(過去法)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미래의 일에도 탐착하지 않으며 현재에도 머무르는 바 없으면 삼세가 다 공적(空寂)함을 깨달을 것이라고 하셨으니 과거의 일에 혹 좋고 나빴던 것을 마땅히 생각하지 말아야 하니 생각하면 도에 장애가 될 것입니다.

  미래의 일을 마땅히 헤아리지 말지니 헤아리면 날뛰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일이 앞에 닥쳤거든 혹 역순(逆順)의 경계에 마땅히 뜻을 두지 말아야 하니 뜻을 두면 마음이 어지럽게 됩니다. 다만 모든 때에 임하여 인연을 따라 응(應)하면 자연히 이러한 도리에 계합할 것입니다.

  역(逆)경계는 쉽게 칠 수 있으나 순(順)경계는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나의 뜻에 거슬리는 것은 다만 참을 인(忍) 한 자(字)로 녹여 조금 살피면 곧 지나가나 순(順)경계는 바로 당신이 회피할 곳이 없음이 마치 자석이 철과 서로 만날 때에 서로가 알지 못하는 사이 한 곳에 붙어버리는 것과 같으니 무정(無情)의 물건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온 몸이 현행(現行)하는 무명 속에 있어 살림살이로 삼는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경계를 만나면 만약 지혜가 없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것(경계)이 그물 속으로 끌어들임을 당할 것이니 다시 이 속에서 벗어날 길을 구하고자함이 또한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선성(先聖)께서 이르시되 “세간에 들어가 세간을 벗어남과 다름이 없게하라.”고 하심이 곧 이러한 도리입니다.

  근세에 한 종류가 있어 수행함에 방편을 잃은 자가 종종 현행무명(現行無明)을 알아 세간에 들어가는 것으로 삼고 곧 출세간법을 가지고 억지로 차배(差排)하여 세간을 벗어남과 다름이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찌 불쌍하지 않습니까! 오직 숙세에 서원(誓願)이 있는 자는 바로 알아버려 주인이 되어 다른 것에 이끌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유마(維摩)거사는 “부처님께서는 증상만인(增上慢人)을 위하여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고 해탈하라고 설하셨다. 만약 증상만인이 아닌 자에게는 부처님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성품이 곧 해탈이라고 하셨다.”고 이르셨으니 만약 이 허물을 면(免)하면 역순경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양이 없어 비로소 증상만인이라는 이름을 벗어나게 되니 이러하여야 비로소 세간에 들어간 것이니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은 모두 내가 평소에 겪어 지나온 것이며 지금 일상에 또한 이와 같이 수행합니다.

  원컨대 그대는 기력(氣力)이 강건할 때에 또한 이 삼매에 드십시오.

  이외에 때때로 조주(趙州)의 <무(無)>자를 들어 오래 오래하다 보면 순일하고 익어서 자연히 무심해져 무명(無明)을 쳐부술 것이니 곧 깨닫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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