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양교수 언후에게 답함


  그대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强項) 도리어 불가사의한 유화(柔和)함이 있어 한마디 말에 깨달음에 이르니 이 일은 수승(殊勝)합니다.

  만약 간혹 관직에 있으면서 깨달은 몇 사람이 아니었다면 불법이 어찌 오늘날에 있겠습니까! 반야의 근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와 같을 수 없으니 장하고 장한 일입니다.

  편지를 보니 내년 봄과 여름 사이에 밑 없는 배를 젓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다함이 없는 공양을 베풀고 말함이 없는 말을 하여 다함도 없고 시작도 없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근거를 요달(了達)하고자 한다고 하니 다만 청컨대 와서 면목없는 놈(대혜스님)과 더불어 헤아려 보면 반드시 위에서 한 말을 그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받아보니 도호(道號)를 구한다고 하니 바로 서로 더럽히고자 한다면 쾌연거사(快然居士)라고 칭함이 옳을 것입니다.

  진정(眞淨)노인이 이르시되 “쾌연한(快然: 즐겁고 편안한) 대도(大道)가 오직 눈앞에 있으니 종횡(縱橫)의 십자(十字)에 헤아리며 머물러 즐긴다.”고 하시니 곧 이 뜻입니다.

  나는 다만 장사(長沙)에 있어 오래 머무를 생각이니 그대가 후일 과연 여기로 온다면 숲 속이 적막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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