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장시랑 자소에게 답함


  그대가 스스로 조금 깨달은 것을 가지고 지극한 이치로 삼고 겨우 이치의 길을 보고 경험하고는 노파선(入泥入水)으로 사람을 위하는 것은 곧 없애 그것으로 하여금 종적(?迹)을 없애고자 하며 내가 모은바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보고 곧 이르되 임제(臨濟)선사 밑에 무수한 암주(庵主)들은 기봉(機鋒)이 좋은데 어찌 기록하지 않고 충국사(忠國師) 같은 이는 의리선(義理禪)을 말해 마을의 남녀들을 그르치게 하니 반드시 빼 버려야한다고 하니 그대가 도를 보고 이와 같이 이해하여 충국사가 노파선을 말하는 것은 기뻐하지 않고 깨끗하고 맑은 곳에 있으면서 다만 격석화섬전광(擊石火閃電光)의 한 수(수단)만 좋아하여 이 외에 조금도 다른 도리를 용납하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때문에 내가 힘을 다해 주장하는데 만약 법성(法性)이 관대하지 않고 물결이 광활하지 못하며 불법에 대한 지견(知見)이 없지 않고 생사의 뿌리(命根)가 끊어지지 않았다면 감히 이와 같이 몸을 땅에 붙이고 진흙과 물에 들어가 사람을 위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개 중생의 근기(根器)가 같지 않기 때문에 위로부터 모든 조사들이 각각 문을 세우고 베풀어 중생의 근기를 갖추어 근기에 따라 교화하셨으니 때문에 장사금대충(長沙岑大蟲)께서는 “내가 만약 한결같이 근본 가르침만 들어 말한다면 법당 앞에 반드시 풀이 한길(一丈)이나 자랄 것이니 사람을 고용해 절을 돌보게 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불문(佛門) 속에 떨어져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종사(宗師)라고 부름을 받는다면 마땅히 중생의 근기를 갖추어 설법해야 합니다.

  격석화섬전광(擊石火閃電光)의 수단은 이러한 근기라야(아주 뛰어난 근기라야) 비로소 알아차리니 근기가 맞지 않는 곳에 쓴다면 헛수고일 것입니다.

  내가 어찌 한번 방망이질함에 문득 깨달아 일곱 내지 여덟 겹을 구멍 냄이 성질 급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까닭으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모아 종문(宗門)의 종류를 나누지 않고 운문(雲門), 임제(臨濟), 조동(曺洞), 위앙(?仰), 법안(法眼)종을 상관하지 않고 오직 바른 지견이 있어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수록하였습니다.

  충국사(忠國師), 대주(大珠) 두 노장을 보니 선(禪)에 모든 바탕을 갖추었기 때문에 수록하여 으뜸의 근기를 가진 자를 구제하고자 합니다.

  그대의 편지에 이르되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고 하니 그대의 뜻으로 보면 정법안장에 모든 선문(禪門)을 제거하고 다만 그대와 같은 견해를 가진 자만 수록해야지 비로소 옳을 것이니 만약 이와 같다면 그대는 스스로 한 책을 모아 대근기(大根器)인 사람을 교화함을 어찌 하지 못하란 법이 있겠습니까? 마땅히 나로 하여금 그대의 뜻을 따라가게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충국사가 진흙과 물에 뛰어드는 노파선(老婆禪)을 설해 곧 후손(법을 잇는 사람)이 끊겼다고 한다면 암두(巖頭), 목주(睦州), 오구(烏臼), 분양무업(汾陽無業), 진주보화(鎭州普化), 정상좌(定上座), 운봉열(雲峰悅), 법창우(法昌遇)같은 모든 대노장들은 당연히 자손이 땅에 가득 차야하거늘 지금 또한 비어 크게 교화하는 자가 없으니 앞서 말한 모든 선사들이 어찌 진흙과 물에 들어가는 노파선을 설했습니까? 그러하니 나는 충국사를 (수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대는 빼더라도 처음부터 서로 무방(無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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