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향시랑 백공에게 답함


  편지를 받으니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과 꿈과 깸이 하나인가? 라고 물었는데 하나의 인연입니다.

  부처님께서 “너는 끄달리는 마음으로 법을 들으니 이 법도 또한 마음에 끄달린다.”라고 하시고 “지인(至人)은 꿈이 없다.” 고 이르시니 ‘있다, 없다’의 무(無)가 아닙니다.

  꿈과 깸이 하나임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로써 보건대 부처님께서 금고(金鼓)를 꿈꾸심과 고종(高宗)이 꿈에 열(說)을 얻은 것과 공자(孔子)가 두 기둥에 잔을 바치는 것을 꿈꾼 것을 또한 꿈과 꿈 아니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다시 세간(世間)을 보건대 꿈속의 일과 같다고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으니 오직 꿈은 곧 전부 망상이거늘 중생이 전도되어 일상의 눈앞의 경계를 진실이라고 여기고 전체가 꿈인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다시 허망한 분별을 내어 망상심으로 생각을 얽어매어 신식(神識)이 어지럽게 날리는 것을 정말로 꿈이라고 여기니 바로 꿈속에서 꿈을 말하는 것이며, 전도된 가운데 전도됨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대자비심과 노파심이 간절하시어 다 일체법계 모든 존재하는 국토의 있는바 미진 속에 두루 들어가시어 낱낱 티끌 가운데 꿈으로써 자재(自在)하게 법문하시어 세계해(世界海)의 미진수(微塵數) 중생이 사정취(邪定聚)에 머물러 있는 것을 개오(開悟)시켜 정정취(正定聚)에 들게 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전도된 중생이 눈앞에 있는 경계를 가지고 존재하는 세계로 삼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꿈과 꿈 아님이 모두가 환(幻)임을 깨닫게 한다면 모든 꿈이 실(實)이며 모든 실(實)이 꿈이어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음을 널리 보이신 것입니다.

  지인(至人)이 꿈이 없다는 뜻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보내 온 편지의 물음을 보니 곧 내가 36세에 의심하던 바입니다.

  그것을 읽고 나도 모르게 가려운 곳을 긁었습니다.

  또한 일찍이 이것을 원오(圓悟)선사께 여쭈었더니 다만 손으로 가리키며 멈추고 멈추어 망상을 쉬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말씀드리기를 제 경우는 잠자지 않을 때는 부처님이 찬탄하신 것을 의지하여 행하고 부처님이 꾸짖는 것은 감히 어기지 않으며 예전처럼 스승을 의지함과 스스로 공부를 지어 자질구레하게 얻은 것도 깨어있을 때는 모두 수용하다가 침상에 올라 반쯤 깨었을 때 이미 주인이 되지 못하여 꿈에 금과 보배를 보면 기쁨이 끝이 없고 꿈에 다른 사람이 칼과 몽둥이로 나를 핍박하거나 모든 나쁜 경계를 만나면 꿈속에서 두려워하고 겁에 질리니 스스로 생각컨대 이 몸은 오히려 있어도 오직 잠잘 때에 이미 주인이 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대(四大)가 흩어지고 여러 고통이 번성하면 어떻게 뒤바뀜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이르면 바야흐로 허둥지둥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원오(圓悟)선사께서 또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허다한 망상이 끊어질 때 네 스스로 오매(寤寐)가 항상 하나인 곳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듣고는 또한 그것을 믿지 않아 매번 내 스스로 돌아보니 깸과 잠듦이 분명히 둘인데 어떻게 감히 크게 입을 열어 선을 말하리요?

  오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오매(寤寐)가 항상 하나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나의 이 병(病)을 마땅히 없애지 않을 것이며 부처님의 말씀이 과연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면 곧 내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후에 오조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이 몸을 나투신 곳에 훈훈한 바람이 남쪽으로부터 불어온다고 법문하심을 들음으로 인해 홀연히 가슴에 뭉친 물건을 없애버리고 비로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심이 참된 말씀이며 여여(如如)한 말씀이며 속이는 말씀이 아니며 허망한 말씀이 아니며 사람을 속이지 않는 진실한 대자비심(大慈悲心)임을 알았습니다.

  몸을 가루를 내어 목숨이 다하더라도 보답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걸린 물건을 이미 제거하고 비로소 꿈꿀 때가 곧 깰 때며 깰 때가 곧 꿈꿀 때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오매(寤寐)가 항상 하나라는 것을 비로소 스스로 알았으니 이러한 도리는 다른 사람에게 잡아내어 보여줄 수가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꿈속의 경계와 같은 것은 취할 수도 없으며 버릴 수도 없습니다.

  받아보니 나에게 묻되 깨닫기 이전과 이미 깨달은 후에는 다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나도 모르게 사실에 의지하여 대답하겠습니다.

  자세하게 온 편지를 읽으니 글자마다 지극한 정성이어서 선(禪)을 묻지도 않으며 또한 힐문(詰問)을 당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옛날에 의심하던 것으로 말해줌을 면치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거사는 시험 삼아 방(龐)거사가 말씀하신 모든 있는 것을 비우고 절대로 모든 없는 것을 채우지 말라는 것을 마음껏 들어 보십시오.

  먼저 눈앞의 일상적인 경계로써 꿈이라고 이해한 후에 다시 꿈속의 것을 가지고 눈앞에 옮겨오면 부처님께서 꿈꾸신 금고(金鼓) 고종(高宗)이 열(說)을 얻은 꿈과 孔子가 두 기둥 사이에 잔을 올리는 것을 꿈꾼 것은 결코 꿈이 아닐 것입니다.
,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