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랑중 사표에게 답함


  사대부가 이 도를 배움에 총명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너무 총명함을 근심하며 지견(知見)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지견이 너무 많음을 근심하십시오.

  항상 식(識)이 먼저 한걸음 앞서 행하여 본분의 쾌활자재(快活自在)한 소식을 어둡게 하나니 삿된 견해의 좀 나은 자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알아서 자기 몸으로 삼으며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경계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삼으며 하열(下劣)한 자는 8식을 굴리고, 들어가는 문의 입구를 가지고 두 입술을 나불거려 현묘한 것을 이야기하며 심한 자는 발광(發狂)하여 글을 써서 혼란스럽게 이러쿵저러쿵하며 더욱 하열한 자는 묵묵히 비추어 말을 하지 않음과 고요한 것으로 귀신의 굴속에 떨어져 있으면서 구경안락(究竟安樂)을 구하니 그 나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충밀(冲
密)등이 돌아옴에 편지를 받아서 읽고 기쁘고 안심이 됨은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또 세간의 이치를 늘어놓아 서로 문답하지 않고 다만 그대가 도를 향한 용맹한 뜻으로 곧 갈등선(葛藤禪)에 들어갔으니 덕산(德山)과 임제(臨濟)가 다름이 없고, 법안(法眼)과 조동(曺洞)이 다름이 없건만 다만 배우는 자가 광대하고 확고한 뜻이 없고 스승도 또한 광대하고 융통한(두루 통달한) 법문이 없기에 들어가는 것이 차별이 있으나 구경(究竟)에 귀착하는 곳은 전혀 이와 같은 차별이 없습니다.

  편지에 내가 편지를 통해 지름길을 지시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니 다만 이렇게 지름길을 구하는 한 생각이 이미 아교단지(膠盆)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격이니 다시 (내가) 눈 위에 서리를 더하는 것은 옳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나 물음에 답이 없을 수 없으니 청컨대 그대는 평소에 경전을 보고 화두를 드는 것으로부터 혹 사람들이 들어 깨우치고 가리켜 보임으로 인해 재미와 환희를 얻는 곳을 모두 놓아버리고 전과 같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함이 마치 세 살 먹은 아이와 같이 성식(性識)이 있으나 행해지지 않게 하여 다시 지름길을 구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서 들어 보십시오 계속 들다가 보면 점점 단서가 없음을 느껴 마음이 점점 편안하지 않을 때에 놓아 느슨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 속이 천성(千聖)의 머리를 끊는 곳입니다.

  종종 도를 배우는 사람이 대개 여기에서 물러나니, 그대가 만약 믿는다면 오직 지름길을 구하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서 들어 보십시오.

  들다가 보면 문득 잠자다가 꿈을 깬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평소에 수행해서 힘을 얻은 공부이니 그대가 확고한 뜻이 있음을 알기에 진흙을 끌고 물을 묻혀 한바탕의 허물을 적어봅니다.

  이외에 다시 지시할만한 것이 없으니 만약 지시할 것이 있다면 지름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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