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부추밀 계신에게 답함(2)


  나날이 이 일대사인연으로 생각을 삼아 용맹정진하여 순일하여 잡된 것이 없음을 가만히 알고 기뻐서 뜀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가운데 왕성히 활동하는 때에 반드시 상응합니까?

  잠자고 깸의 두 가지 경계에 한결같습니까?

  이와 같지 못할진대 절대로 공에 빠지고 고요함에 나아가지 말지니, 고인께서 캄캄한 산 아래 귀신 집의 살림살이라고 불렀습니다.

  미래가 다하도록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온 편지를 접하고는 그대가 필시 고요한 삼매에 탐착했으리라고 혼자 염려했더니 직강공(直閣公)에게 묻고서 곧 과연 헤아린 바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무릇 세간을 두루 겪고 여유가 있는 선비가 오랫동안 세간이 잡다한 일 가운데 있다가 홀연히 다른 사람이 고요한 곳에서 공부를 지으라고 가르쳐 줌을 얻고서 잠깐 가슴속이 일없게 되면(번뇌가 없으면) 곧 고요히 앉는 것으로 구경의 안락을 삼으니 전혀 돌로써 풀을 눌러놓는 것과 같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잠깐 소식(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이 끊어 졌음을 느끼지만 뿌리는 오히려 있음을 어찌하리요? 어찌 적멸(寂滅)을 증득해 뚫을 기약이 있겠습니까?

  참되고 바른 적멸이 앞에 나타남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모름지기 치연(熾然: 왕성한 모양)하게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졌다하는 가운데 곧장 한번 뛰어 벗어나되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고 곧바로 긴 강을 저어서 소락(?酪)을 만들며 대지(大地)를 바꾸어 황금을 만들며 근기를 대하고 주고 빼앗고 죽이고 살림을 자유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도 이익되게 함에, 베푸는 것마다 옳지 아니함이 없으리니 옛 성인들께서 무진장다라니문(無盡藏陀羅尼門)이며 무진장신통유희문(無盡藏神通遊戱門)이며 무진장여의해탈문(無盡藏如意解脫門)이라 하시니 어찌 참된 대장부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시켜서 그러함이 아니라 다 우리들의 마음이 이미 정해진 분수이니 원컨대 그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반드시 이것에다 목표를 정하십시오.

  확철대오(廓徹大悟)하면 가슴속이 밝음이 마치 백 천가지 해와 달과 같아서 시방세계를 한 생각에 밝게 알되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없을 것이니 비로소 구경과 더불어 상응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과연 이와 같다면 어찌 다만 나고 죽음에 대해서만 힘을 얻겠습니까? 다른 날에 다시 균축(鈞軸)을 잡아서(재상의 자리에 올라) 임금을 요순(堯舜)보다 더 위에 이르게끔 하는 것이 마치 손바닥 가리킴과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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