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선사 수행한담 (약력)

  “의심이 없으면 깨달을 길 없습니다”

  ‘나’라는 허세 버리고 오매불망 일념에 참선으로 마음 밝혀 만법의 주인되세요. 어느 누구나 심안 열리면 모든 불조가 설한 법문이 한 꼬챙이에 다 꿰이는 법. 바른 법문 듣고 화두 놓지않으면 부엌 안방 사무실 만원버스 어디든지 일등선방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는 깊고 깊어서 아는 자가 아니면 중생의 안목을 점검할 수 없고 바른 지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스승없이 깨달은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라고 못박아 놓았습니다. 광변무변한 진리의 세계를 혼자 수도해서 알았다고 하는 것은 망념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일상 중에 정진해서 깨달은 자는 응당 밝은 선지식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저 또한 출가 이후 큰 스님들로부터 공부를 점검받았습니다.

  저는 1954년 정월, 21살 되던 해 출가를 했습니다. 동네에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던 해관암을 우연히 갔다가 설석우 선사를 친견한 것이 인연이 됐습니다.
  석우 선사는 나를 보시더니 내 나이와 기타 이것저것을 물으신 후 ‘세상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그대가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값진 생활이 무엇인가를 여쭈었더니 ‘범부가 위대한 부처되는 법이 있네.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게 아니겠어요. 그래 그길로 스님들의 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후 환희심을 느껴 출가를 했습니다.
 
  출가 이후에는 큰스님 시봉에다 공양주 소임 그리고 나무를 하고 채소를 가꾸는 등 해야 할 일들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없이 보냈습니다. 그렇게 6, 7개월이 지났을 겁니다. 하안거 해제일에 선방에 다니며 10여 년간 수행해 오던 선객(禪客)들이 해제하고서 석우 선사께 인사드리러 왔다가 마침 너댓 분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석우 선사께서는, “오늘 내가 자네들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 보게. 옛날 중국의 삼한 시절에는 글자 운자(韻字) 하나를 잘 놓음으로 인해서 과거에 급제하던 때가 있었네. 이것은 그 당시 시험에 나왔던 문제인데, ‘일출동방대소(日出東方大笑) 즉, 해가 동쪽에 떠올라 크게 웃는 모습이 어떠하더라.’하는 이 글귀에 운자 하나를 놓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당시에 어떤 사람은 나 ‘아(我)’ 자를 놓아서 재상에 등용되었는데, 자네들은 어떤 자를 놓아보겠는가?”라고 덧붙이셨어요.
  근데 선객들 중에는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선사께서는 신출내기 행자였던 저를 지목하시더니 ‘한마디 일러보라’ 하시지 않겠습니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대뜸 “없을 무(無)자를 놓겠습니다”했죠.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올라 밝은 빛으로 온 세상을 비추지만, 비추는 그 모습에는 호리(豪釐)의 상(相)도 없다는 뜻으로 ‘무(無)’ 자를 놓았던 것이지요. 그러자 선사께서는 ‘행자가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다’며 아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큰 스님께 지도를 받으며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고, 그 덕분에 경허 -혜월-운봉-향곡스님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선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향곡 선사께 법을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 인연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내가 막 중이 된 뒤 석우 선사 밑에서 4년간 공부를 한 후 선산 도리사에서 공부를 하던 중 ‘망지견(妄知見)’이 나서 월내 관음사 향곡 선사를 찾아가 법을 물었습니다. 그게 인연이 시작된 셈입니다. 당시 내가 법을 물으니까 스님이 모두 아니라고 그러셔요. 그래서 다시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가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거기서 겨울 안거를 하던 어느 날 그날은 유난히 날이 따뜻했었는데 문득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지 뭡니까.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해서는 안되겠다. 백지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향곡 선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향곡 선사께 사생결단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사께서 화두 ‘향엄상수화’를 주셨습니다. ‘향엄상수화’는 한 사나이가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입으로 가지를 문 채 매달려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달마대사가 중국에 온 뜻을 물으니, 대답을 하면 떨어져 죽을 것이고 대답을 안하면 모르는게 되니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의 화두입니다.
  이 화두를 2년간 참구하여 결국 해결을 했습니다. 그래서 향곡선사의 수승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967년 하안거 해제 법회때 묘관음사 법당에서 향곡선사와 법거량이 있었습 니다. 향곡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여 묵좌(默坐)하시고 계시는데 제가 여쭈 었습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는 팔십일이니라.”
  이에 제가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하니, 선사께서
  “육육은 삼십육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 제가 선사께 예배드리고 물러가자, 선사께서 아무말 없이 자리에서 내려오셔서는 조실방으로 가셨습니다.
  다음날 제가 다시 여쭈었습니다.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입니까?”
  선사께서 이르기를,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하였습니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선사께서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고 또 물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하고 답하자 선사께서
  “옳고, 옳다”며 하셨던 그 때가 눈에 선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인가를 하는 법인데, 요즘은 은밀히 밀실 속에 아무도 모르게 ‘제자에게 인가를 했다’하는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도인이다”하며 횡설수설로 사람의 눈을 멀게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백만인천 대중 앞에서 우담바라 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존자가 빙긋이 웃어 보이니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槃妙心)을 가섭존자에게 전한다’고 백일하에 드러내 보이셨는 얘기는 다 잘 아시죠.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무사자오(無師自悟)는 외도라며 스승없이 깨달은 자는 다 사견에 떨어져 있으니, 지도받는 데 삼가고 또 삼가라 하셨습니다.
  그런 것 보면 저는 발심할 때 좋은 스승(석우스님)을 만나 신심을 길렀고, 마음공부할 때 밝은 스승(향곡스님)을 만나 철방망이를 맞았으니, 수행에 빈틈이 있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습기가 근접할 수 없는 그런 수행생활을 해온 셈입니다. 아마도 절집 좋은 인연은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 선근공덕을 타고난 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심안(心眼)이 열리면 모든 불조가 설한 법문이 한 꼬챙이에 다 꿰이는 법입니다. 모든 부처님도 성품을 봐서 부처를 이루었고, 모든 도인도 성품을 봐서 도인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화두를 가지고 생활 속에 오매불망 일념으로 지속해 보세요. 화두가 일매삼매 중에 타파만 되면 부처님이나 모든 도인과 더불어 동일한 눈이 열립니다.
 
  그러면 활구 참선의 근본은 무엇일까요. 의심이 깨닫는 생명력입니다. 의심이 생명력인고로 바른 공부를 지어갈 것 같으면 한 생에 바로 부처님의 지혜의 눈을 갖추게 되는 법입니다.
옛날 도인 스님네들이 말씀하시기를 의심이 크면 클수록 깨달음이 크다했습니다. 어떤 것이 활구참선이겠습니까. 일천성인(一天聖人)의 머리 위에 일구(일구)를 투과해야 활구가 됩니다. 일천 성인의 머리 위에 일구를 뚫어 지나가지 못할 것 같으면 활구세계를 모릅니다. 그러니 이러한 법문을 듣고 생활 속에 활구참선을 해야합니다.
  ‘부처님이 설한 만 가지 진리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이를 오매불망 의심하고 생각하고, 한 생각이 쭉 시냇물과 같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흘러가는 여기에 서서히 모든 마음 속 갈등이 다 없어집니다. 미워하고 좋아하고, ‘나’라는 허세 등 이러한 것이 없어지는 동시에 깊이 한 걸음 더 들어갈 것 같으면 보는 것, 듣는 것 다 잊어버리고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는 일념에서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가 타파되는 법입니다.
이것이 활구참선법이요, 활구 깨닫는 열쇠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바르게 지어갈 것 같으면 1백명 중에 99명은 다 견성도인이 됩니다. ‘생활 속 참수행’에 좀더 말씀드릴까요.

가지가지의 마음이 나면 만 가지의 진리의 법이 현전(現前)하고
가지가지의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가지의 진리 법이 없음이라.

  마음은 만 가지 진리법의 주인입니다. 이 마음을 깨달아 알 것 같으면 만법(萬法)에 임의자재(任意自在)할 수 있지만, 깨닫지 못할 때에는 온갖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인해 번뇌가 쉴 날이 없습니다. 우리가 참선수행을 하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이 마음을 밝혀서 만법의 당당한 주인이 되자는데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위산(위山) 선사께서 상당하시어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사람사람마다 각자 모양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항시 면전(面前)에 출입자재(出入自在)하는데,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이를 보느냐?”
  대중 가운데 한 청신녀가 이 법문을 듣고서, ‘사람마다 모양없는 참사람이 있어서 일상생활 가운데 쓰고 있다는데, 나는 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고?’하는 분심(憤心)이 일어 오매불망(寤寐不忘) 의심하고 참구했다고 합니다.
  이 보살은 세간살이 형편이 너무 어려워 시골 장터에서 빵을 구워 팔아서 생활을 꾸리며 살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일구월심으로 화두일념을 지어갔던것 입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간절하게 골수에 사무치도록 공부한 결과, 하루는 빵을 굽는 도중에 홀연히 화두 관문이 타파되어 모양없는 참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빵소쿠리를 팽개쳐 버리고 위산 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벌써 간파하시고 물으셨습니다.

  “어떤 것이 모양 없는 참사람이냐?”
  그러자 보살이 송(頌)으로 답하기를,

머리는 셋이요, 팔은 여섯 가진 대장사가(三頭六譬大力將)
한 주먹으로 태화산을 쳐부숨에(一擧擊破泰和山)
천겹 만겹의 태화산이 두 동강이 나니(分破和山千萬重)
만 년이나 흐르는 물은 봄을 알지 못하더라.(萬年流水不知春)

  이렇게 깨달은 경지를 송(頌)하자, 위산 선사께서 들으시고는 “그대가 바로 알았느니라”하고 인가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 청신녀가 바로 유도바 보살입니다.
  이렇듯 시끌벅적한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는 여인네가 화두 관문을 뚫어 일대사(一大事)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 참선공부하는 것이 오로지 마음으로 지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승속, 남녀, 어떠한 경계, 그 어떠한 형상과도 무관한 것이 이 참선법입니다. 그리고 참선방(參禪房)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바른 법문을 듣고 바른 지도를 받아서 걸음걸음 화두를 놓지 않으면, 부엌이나 안방이나 사무실이나 만원 버스 등, 가는 곳마다 다 일등 선방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법을 익히지 않고, 앉아 있을 때는 화두가 있는 듯하다가 서면 달아나고 걸어가면 없어져 버리는, 그러한 공부를 짓는다면 백생(百生)을 하더라도 진리의 눈이 열릴 수가 없는 법입니다.
  만약 시회대중이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각자의 화두를 오장육부에 사무치도록 지어간다면, 시절인연을 만나 확연히 열리니, 여러분도 다시 한번 대신심(大信心)과 분심(憤心)을 내어 보십시오.

  진제스님<해운정사 조실> 약력
·1934년 경남 남해 출생
·1954년 석우스님을 은사로 득도 출가.
·1967년 향곡선사로부터 인가 받음.
·1971년 부산 해운정사 창건
·1991년 선학원 이사장, 선학원 중앙 조실 역임.
·1994년~현재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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