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이연도인(怡然道人)께 드리는 글


  지난날 해주신 훌륭한 소참법문을 듣고 이 도를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근상지(利根上智)인 도인께서는 확연히 스스로 알아차려 지극히 청정한 본원을 가지고 영롱하게 비추신 바입니다. 투철하게 깨달아 문 밖을 나가지 않고서도 벌써 제방을 모두 경험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천박하고 고루한 저를 인정하여 살피시고 더욱 격려해 주셔서, 이미 같은 가풍으로 그윽히 계합하여 스스로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빠짐없이 늘어놓으신 한 구절, 한 마디, 한 기틀, 한 경계가 모두 견줄 수 없는 깊은 이치였습니다. 심성의 현묘함도 아니고 어묵에 빠짐도 아니고 설명이나 주장도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성색을 덮어 누르고 보신, 화신 부처님의 머리를 눌러 앉아 시비득실에 떨어지지 않고, 근원을 꿰뚫은 청정하고 바른 안목이었습니다. 비록 사념이 적멸하긴 하나, 밝은 지혜로 속박을 벗어나 초연히 정수리 위의 하나를 홀로 증득하니, 이 때에 어찌 가는 털끝 만큼의 도리인들 있겠습니까. 공겁(空劫)이전이나 위음왕불 이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이르러선 모든 하늘이 꽃을 바칠 길이 없고 외도가 가만히 엿볼 수가 없습니다. 씻은 듯이 말숙히 깨끗하니 이것이 바로 본지풍광이며 본래면목입니다. 그야말로 부처님도 볼 수 없어서 이른바 향상의 한 길은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이 가운데의 사람이어야 한 번 들어보여도 단박에 낙처를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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