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자품(弟子品)


  그 때 장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몸져 누워 있는데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큰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실까?'
 
  부처님께서는 유마힐의 그러한 마음을 아시고 곧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사리불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니, 저는 예전에 숲 속 나무 밑에서 좌선[宴坐, phatisa layana]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사리불이여, 반드시 이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좌선이란 것은 몸과 마음의 (작용이) 삼계(三界)에 드러나지 않는 것입 니다. 멸정(滅定)을 일으키지 않고서도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내는 것, 이것이 좌선입니다. 진리의 법[道法]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세속의 일상 생활[凡夫事]을 나타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으로 닫혀 있(어서 고요함만을 탐닉하)지 않고 밖을 향하(여 혼란하)지 않는 것이 좌선입니다. 온갖 견해에도 요동하지 않으면서도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고서도 열반에 드는 것이 좌선입니다. 만약 이같이 앉을 수 있는 자라면 부처님께서는 인가하실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저는 이러한 말을 듣고서도 말문이 막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에게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목건련(大目犍連, Mahmaudgalyyan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서 문병을 하라."
  목련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에게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저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저도 비야리 대성으로 들어가 거리에서 많은 거사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있었는데, 그 때 유마힐이 다시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대목련이여, 백의거사(白衣居士)를 위해서 설하는 설법은 그대가 설하듯이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설법이라고 하는 것은 마땅히 여법(如法)17)하 게 설해야 합니다.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번뇌[垢]를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자아의 존재[有我]가 없으니, 나[我]의 번뇌[垢]를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수명(壽命)이 없으니, 생사를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인(人)이 없으니, 과거의 생과 미래의 생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18)
  법은 항상 고요하니[寂然], 모든 상(相)19)을 없애 버렸기 때문이며, 법은 상을 떠나 있으니, 인식의 대상[所緣]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이름이 없으니, 언어(로 미칠 수 있는 길이) 끊겼기 때문이며, 법은 [說]이 없는 것이니, 크고 작은 생각[覺觀]20)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법은 모양이 없으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법은 부질없는 말[虛論]이 없으니,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내 것[我所]이 없으니, 내 것, 네 것을 다 떠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분별이 없으니, 식별(識別)하는 작용[識]21)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비교할 수가 없으니, 상대(相對)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근본적인 원인[因]에 속한 것이 아니니, 간접적인 원인[緣]에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존재에 골고루 나타나 있으므로 법성(法性),22)과 같기 때문입니다. 법은 여여(如如)함을 따르니, 다른 것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실제(實際)에 머무르니, 어떠한 환경[邊]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동요함이 없으니, 6경[塵]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오고 감[去來]이 없으니, 시간[常] 속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공(空)을 따르고 무상(無相)을 따르고, 작위함이 없어야[無作] 하니, 법은 아름다움과 더러움의 (차별을) 떠났으며, 법은 더하거나 덜함이 없으니, 법은 생멸(生滅)이 없기 때문이며, 법은 돌아가야 할 바도 없으니, 법은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心]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며,23) 법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니, 법은 상주(常住)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24) 법은 일체의 분별하는 관찰(觀察)과 소행에서 떠났습니다. 대목련이여, 법상(法相)은 이와 같은데, 어찌 설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법을 설하는 것은 설함도 없고, 가리킴도 없으며, 그 법을 듣는 것도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幻士]가 마술로 만든 인형[幻人]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땅히 이러한 생각을 갖고서 법을 설하여야 합니다. 마땅히 중생의 능력[根]에 예리하고 무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만 하며, 중생을 보고 지견(知見)이 어떠한 것에도 걸림이 없어야 하고, 커다란 자비심으로 대승(大乘)을 찬탄하며,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염원하여 3보(寶)가 끊어지지 않도록 한 다음에 설법해야 합니다.'
  유마힐이 이와 같이 법을 설하였을 때, 8백 명의 거사들이 한결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이러한 말재주[辯才]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을 하기에 적당치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가섭(大迦葉, Mahkyap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저는 옛날 가난한 마을에서 걸식을 하였는데, 그 때 유마힐이 저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대가섭이여, 자비심을 가지면서도 널리 펴지 못하고, 이같이 부잣집을 내버려두고 가난한 사람만 쫓아가 걸식을 하니, 가섭이여, 평등한 법에 머물러 마땅히 차례대로 걸식해야 합니다. 먹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걸식을 해야 하며, (5온에 의해 임시적으로) 뭉쳐진 (육신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기
위함이니, 마땅히 주먹밥[揣食]을 먹어야 하며, (생사의 과보를) 받지 않기 위한 까닭으로 마땅히 그 음식을 받아야 하며, (이 몸은)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라는 생각으로 마을에 들어가야 합니다.
  형상[色]을 보아도 장님과 같이 보아야 하며, 소리를 들을 때는 메아리를 듣는 것과 같이 하며, 향내음을 맡아도 바람과 같이 맡고, 먹고도 맛을 분별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온갖 감촉을 느낄 때에도 지혜를 증득하듯이 해야 합니다. 또 존재하는 모든 것[諸法]을 환상(幻相)같이 알며, 법에는 자성(自性)과 타성(他性)도 없으므로 그 자체로는 생기지 않으므로 지금도 멸(滅)하는 일이 없습니다.
  가섭이여, 능히 여덟 가지 사도(邪道 : 8正道에 반대되는 것)를 버리지 않고서도 8해탈(解脫)에 들어가고, 사악한 모습을 지닌 채 정법(正法)에 들어가며, 한 끼의 밥으로도 모든 중생에게 베풀며, 모든 부처와 온갖 성현에게 공양한 다음에야 먹을 만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먹는 사람은 번뇌가 있기 때문이 아니고, 번뇌가 없기 때문도 아니며, 또 선정의 삼매에 들어서도 아니고, 선정에서 나와서도 아니며, 이 미혹한 세간에 머물러서도 아니고, 열반(涅槃)에 머물러서도 아닙니다.
  그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큰 복도 없고 작은 복도 없으며,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 이같이 (손익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것이야말로 바르게 불도(佛道)에 들어가는 것이며, 성문(聲聞)의 길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섭이여, 이같이 먹는다면 남의 보시를 헛되이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저는 이같이 설하는 말을 듣고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 생각하고는 모든 보살들에 대해서 깊이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며, 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재가에 있으면서 변재와 지혜가 이럴 수가 있는데, 그 누가 이를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저는 이 때부터 다시는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의 수행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가 문병을 하기에 적당치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須菩提,
Subhti)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수보리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저는 옛날 그의 집에 들어가 걸식하였는데, 그 때 유마힐은 저의 발우를 들고 밥을 가득 채워 주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먹는 것에서 평등할 수가 있으면 모든 법(法)에서도 평등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법에서 평등할 수가 있으면 먹는 것에도 평등합니다. 이같이 걸식(乞食)을 하고 다닐 수가 있으면 주어진 것을 먹어도 될 것입니다.
  수보리여, 만약 탐욕[淫]25)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끊어 버리지 않고서도 그것들과 함께 하는 것도 아니며, 내 몸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서도 일상(一相)을 따를 수가 있으며, 어리석음과 탐욕을 없애 버리지 않고서도 지혜와 해탈을 일으킨다면, 5역죄(逆罪)를 범하는 모습으로도 해탈을 얻고, 해탈된 것도 결박된 것도 아니면, 4성제[四諦]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도 4성제를 보지 않는 것도 아니라면, 범부(凡夫)도 아니면서도 범부의 법을 떠난 것도 아니라면, 성인도 아니면서 성인(聖人) 아닌 것도 아니라면, 비록 일체법(一切法)을 성취(成就)했으면서도 제법의 상(相)에서 떠났다면 먹어도 될 것입니다.
  수보리여, 만약 부처를 만나지도 못하고 가르침도 못 듣고, 저 육사외도(六師外道)인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Prana kyapa)·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梨子, Maskarin Golputra)·산자야비라지자(刪闍夜毘羅, Sa jayin Vairatiputra)·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 Ajita Keakambala)·가라구태가전연(迦羅鳩駄迦旃延, Kakuda Kty- yana)·니건타야제자(尼犍陀若提子, Nirgrantha Jtiputra) 등을 그대의 스승으로 삼아 그를 따라서 출가하고, 그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역시 그대가 따라서 떨어진다면 이 밥을 먹어도 될 것입니다.

  수보리여, 그대가 만일 온갖 사견을 받아들여서 피안에 이르지 못하고, 8난(難)에 머물면서 장애가 없는 경계를 얻지 못하며, 번뇌와 함께 있으면서 청정한 법을 떠나고, 그대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으면서도 모든 중생도 역시 그러한 삼매를 얻는다면, 그대에게 보시하는 자에게 그대가 복전(福田)이 되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공양을 올리는 자가 3악도(惡道)에 떨어져 많은 악마와 더불어 손을 잡아 온갖 번뇌[勞]의 벗이 되고, 그대는 온갖 악마와 모든 번뇌[塵勞]와 똑같이 하나가 되고, 모든 중생에게 원한을 품고, 모든 부처를 비방하며 정법[法]을 훼손하고, 승가[衆數]에 동참하지 않고 마침내 깨달음[滅度]을 얻지 않는다면 그 때 밥을 먹어도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저는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몰라서 곧 발우를 내려놓고 그 집을 나오려 했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수보리여, 두려워하지 말고 발우를 드시오.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여래께서 만드신 꼭두각시[化人]가 만약 이러한 일로 나무랐다면 그래도 두려워하겠소?'
  저는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일체제법(一切諸法)은 꼭두각시의 모습[幻化相]과 같으니, 그대는 지금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言說]도 이 꼭두각시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에 이르러서는 문자(文字)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문자(文字)는 자성(自性,
svabhva)을 여의었기 때문(에 실상이 空한 것)이니, 문자(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 곧 해탈입니다. 해탈의 모습이란 것은 곧 제법인 것입니다.'
  유마힐이 이러한 법을 설하고 있을 때, 2백의 천자(天子)들은 진리를 바르게 보는 눈[法眼]이 맑아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을 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루나(富樓那,
Pramaitryanputr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가서 유마힐을 문병하도록 하라."
  부루나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커다란 숲 속의 한 나무 아래에서 새로 출가한[新學]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부루나여, 먼저 선정에 들어[入定] 이들의 마음을 살핀 다음에 설법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러운 음식을 보배로운 발우[寶器]에 담지 마십시오. 마땅히 이들 비구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귀한) 유리(琉璃,
vairya)를 (한낱) 수정(水精, kcakamai)과 같게 보지 마십시오. 그대는 중생의 근기[根源]도 알지 못하고, 소승(小乘)의 가르침으로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자신들은 부스럼이 없는데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 큰 길[大道]을 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작은 오솔길을 가르쳐 주지 마십시오. 큰 바닷물을 가져다 소 발자국에 넣으려 하지 마십시오. 햇빛을 저 반딧불과 함께 비교하지 마십시오.
  부루나여, 이들 비구는 대승의 마음을 일으킨 지 오래지만, 도중에 이 발보리심(發菩提心)을 잊은 것인데, 어떻게 소승의 가르침으로써 이를 가르쳐 이끌고자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소승(小乘)은 지혜가 미천함이 마치 장님과 같아 모든 중생의 근기의 예리하고 우둔한 것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유마힐은, 곧 삼매에 들어 이 비구들이 스스로의 과거[宿命]를 알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찍이 (전생에) 5백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온갖 선근(善根,
kualamla) 공덕을 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로 회향(廻向)하고, 즉시 곧바로[豁然]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여러 비구들은 유마힐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였습니다. 그 때 유마힐은 그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다시는 물러서지 않도록 설법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생각하기를, '성문은 중생의 근기를 정확히 살피지 않고서 설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Mahktyyan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가전연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간략히 가르침의 요점을 설하셨을 때, 저는 곧 이어서 그 뜻을 자세하게 설하였습니다. 저는 '무상의 뜻이며, 괴로움의 뜻이며, 공의 뜻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체는 없다[無我]는 뜻이며, 적멸(寂滅)의 뜻26)이라고 말하였는데,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가전연이여, 생멸(生滅)하는 마음으로 (제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實相]을 설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전연, 제법은 끝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무상의 뜻이요, 5온[五受陰]은 (空)하여 생기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 이것이 괴로움의 뜻입니다. 제법이 구경에 가서도 존재[所有]하지 않으니, 이것이 의 뜻이며, (我)와 무아(無我)에 있어서 둘이 아닌[不二], 이것이 무아의 뜻이며, (존재하는) 법(法)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 곧 멸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적멸(寂滅)의 뜻입니다.'
  이러한 법을 들었을 때, 여러 비구들이 마음속 깊이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나율(阿那律, Aniruddh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라."
  아나율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제가 어느 곳을 경행(經行)하였는데, 그 때 엄정(嚴淨)이라는 범왕(梵王)이 1만을 헤아리는 범천(梵天)과 함께 밝은 빛을 발하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저의 발에 머리를 대고 예배한 다음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나율이여, 그대는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는데 어느 정도까지 볼 수가 있습니까?'
  저는 곧 대답하였습니다.
  '대범천이여, 저는 이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를 포함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菴摩勒, Amra)의 열매를 보듯이 봅니다.'
  그 때 유마힐이 저에게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나율이여, 천안으로 보는 것은 작용[作相]27)입니까, 무작용[無作相]입니까? 만약 작용일 것 같으면, 그 때 그것은 외도들의 5통(通)28)과 같을 것이고, 만약 무작용이라면, 무위(無爲)29)이니 본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범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말이라 하고 유마힐에게 예배하고는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참다운 천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유마힐은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신 세존만이 참다운 천안을 지니고 계셔서 항상 삼매에 드셔서 모든 부처의 나라를 빠짐없이 2상(相)30)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이 말을 들은 엄정대범왕(嚴淨大梵天)과 그 권속 5백의 범천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유마힐의 발에 예배한 다음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우바리(優波離, Upli)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라."
  우바리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에게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두 사람의 비구가 계율을 범하고 부끄러움에 못 이겨 감히 부처님께 여쭙지도 못하고 저를 찾아와 말하였습니다.

  '우바리 존자여, 저희들은 계율을 범하였습니다.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여 감히 부처님께 나아가 여쭙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부디 저희들의 의심과 뉘우침을 풀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허물을 면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법대로[如法]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바리여, 이 두 사람의 비구에게 죄를 더 무겁게 키우지 마십시오. 곧장 그 죄를 없애서 두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게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저 죄라는 본성은 (그들 자신의) 안에 있지 않고, 밖에도 없고, 또 그 중간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과 같이 마음이 더러우므로 중생도 더럽고, 마음이 깨끗하므로 중생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또 이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그러하듯이 죄도 또한 그와 같고, 제법도 그와 같으며,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如如,
tathat]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바리여, 마음의 본래 모습[心相]으로 해탈을 얻었을 때, 그 때에도 (그 마음은) 더러움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없습니다.'
  그러자 유마힐은 말하였습니다.
  '일체 중생의 마음의 본래의 모습의 더럽지 않음[無垢]도 이와 같습니다. 우바리여, 망상(妄想)이 더러움[垢]이요, 망상이 없는 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그릇된 생각[顚倒]이 더러운 것이지만 그릇된 생각이 없으면 곧 깨끗한 것입니다. 취아(取我)31)가 더러운 것이지만, 취아라 생각하지 않으면 깨끗한 것입니다. 우바리여, 일체법이 생멸(生滅)하며 머무르지 않는 것[不住]이 허깨비[幻]나 번갯불과 같으며, 제법은 서로 기다리는 일이 없어[不相待]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제법은 모두 망견(妄見)이며 꿈과 아지랑이 같고, 물 위에 뜬 달,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이 망상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이와 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라 이름할 수 있으며, 이 같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잘 깨달은 사람[善解]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의 비구가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높은 지혜를 가진 분이군요. 이는 우바리 존자가 감히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계율을 잘 지킨다 해도 이렇게 설하지는 못합니다.'
  저도 대답하였습니다.
  '여래를 제외하고는 어떤 성문이나 보살도 이 유마힐의 걸림없는 훌륭한 말솜씨[樂說之辯]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그 지혜가 밝고 (사물의 이치에) 통달함이 이와 같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의 비구는 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고 발원(發願)하고, 일체 중생이 모두 이러한 말솜씨를 얻을 수 있게 하리라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31) tmasamropa로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라후라(羅羅,
Rhul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라후라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비야리성의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를 찾아와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라후라여, 당신은 부처님의 아들로서 전륜왕(轉輪王)의 지위를 버리고 깨달음을 위하여 출가하셨으니, 그 출가에는 어떠한 이익이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법하게 출가의 공덕과 이익에 대해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때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라후라여, 출가의 공덕이나 이익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이익도 공덕도 없는 것이 출가이기 때문입니다. 유위법(有爲法)이라면 이익이나 공덕이 있다 할 수 있겠지만, 출가는 무위법(無爲法)을 구하는 것으로서 무위법에는 이익이나 공덕이 없습니다. 라후라여, 출가에는 깨달음[彼]도 미혹[此]도 없고 그 중간도 없습니다. 62견(見)32)을 멀리 떠나 열반(涅槃)에 처하는 것이니 지혜로운 이가 누리는 것이며, 성인이 닦는 길인 것입니다.
  온갖 마군을 항복시켜 5도(道)33)를 넘어서 5안(眼)을 맑게 하고, 5력(力)을 얻었고, 5근(根)을 바르게 세워 그 어떤 것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온갖 잡다한 악을 떠나고 모든 외도들을 꺾었으며, 가명(假名)34)에 집착하지 않으며, 애욕의 진흙탕을 벗어나 온갖 속박을 벗어났으며,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고, 집착하는 마음[所受]도 없고, 마음의 혼란이 없고, 안으로 늘 기쁨을 간직하고 중생들의 마음을 지켜 주며, 선정(禪定)을 따르며 온갖 잘못을 다 떠나 버립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이것이 참다운 출가인 것입니다.
  이 때 유마힐은 장자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정법(正法)을 받아들여 함께 출가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기회를 만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아들들은 말하였습니다.
  '거사(居士)님, 저희들이 듣기에는 부모님의 허락이 없으면 출가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만…….'
  그러자 유마힐이 말하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그대들이 지금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곧 출가이며, 구족(具足)35)입니다. 그 때 서른두 명의 장자의 아들들은 한결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서른두 명의 장자의 아들들은 한결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 nanda)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서 문병을 하도록 하라."
  아난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세존께서 몸이 조금 불편하시던 때에 저는 우유를 잡수시면 좋으리라 생각하고, 발우를 들고 큰 바라문의 집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 유마힐이 와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난이여, 무슨 일로 이런 이른 아침에 발우를 들고 여기에서 있습니까?'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몸이 좀 불편하셔서 우유를 잡수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이곳에 왔습니다.'
  유마힐은 말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아난이여.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래의 몸은 금강석과 같은 몸으로, 모든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빠짐없이 몸에 지니고 계시는데, 어떤 병이 있겠으며, 어떤 괴로움이 있겠습니까? 잠자코 돌아가십시오. 아난이여, 부처님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그같이 설익은 말[麤言]을 누구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뛰어난 위엄과 덕을 갖춘 제천(諸天)과 다른 곳의 불국토에서 온 보살들도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난이여, 전륜성왕은 약간의 복덕으로도 병에 걸리지 않는데, 하물며 어떻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덕을 모두 모아 몸에 지니시고, 모든 것을 이기신 분[勝者]인 부처님께서 어찌 병을 앓겠습니까? 아난이여, 우리들이 이 같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시오. 만약 외도인 바라문[梵志]이 이 말을 들었다면 반드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없는 주제에 남의 병을 고칠 수 있다니.)
  그대는 빨리 돌아가서 남이 듣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난이여, 모든 여래의 몸은 진리 그 자체[法身]이지, 미혹의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몸이 아니며,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世尊]으로서 삼계에서 벗어나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부처님의 몸에는 번뇌가 없고[無漏], 어떠한 번뇌도 이미 사라져 없으며, 부처님의 몸은 무위(無爲)이니 세상의 온갖 도리[諸數]에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한 몸에 어떻게 병이나 고뇌가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 참으로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을 가까이 모셨으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잘못 알아듣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공중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아난이여, 거사의 말과 같다. 다만 부처님은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나타내셨기에 실제로 이 가르침을 드러내심으로써 중생을 해탈하게 하기 위해서 행하고 계실 뿐이다. 아난이여,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유를 가지고 돌아가라.'
  세존이시여, 유마힐의 지혜와 변재(辯才)는 이같이 뛰어납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가 문병을 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5백의 제자들은 각각 부처님께 그들이 전에 경험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유마힐이 했던 말을 칭찬하여 모두 말하였다.
  "저희들은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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