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인서기(仁書記)에게 주는 글


  설봉스님은 마치 금시조(金翅鳥)가 바다를 가르고 용을 나꿔채듯 학인을 지도했으니, 이런 경우가 어찌 설봉스님뿐이었으랴. 예로부터 크게 도를 갖춘 인재로서 날카로움과 관조를 동시에 지니고, 노련한 작가선지식의 솜씨를 간직한 자라면 모두 이러하였다. 이는 아마도 단도직입하지 못하면 힘을 다하지 않고 은산철벽처럼 초준(?峻)한가 하면, 곧 완둔(頑鈍)한 공부를 지어갔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이 ‘방’과 ‘할’을 행하면서 독한 솜씨를 썼던 것은 바로 큰 마음, 큰 그릇, 큰 근기들이 향상을 알아차리게 하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그림자와 입에서 나오는 성색만이 전부라고 인식하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그 때문에 ‘향상의 한 길은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만약 영리한 놈이라면 듣자마자 들어 보이고 바로 투철히 깨달아 결코 남의 격식이나 지키면서 남의 죽은 말을 취하지 않는다, 자, 방, 할을 행했던 귀결점은 어느 곳에 있느냐? 용을 나꿔챈 뜻을 밝히지 못하면 다시 분분해진다. 대장부는 자기의 신령함조차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주장[露布]을 갖다가 자기 마음으로 삼으랴!

  결코 다른 사람에게 속지 말고 헌걸차게 우뚝 서서 이제껏 의지하고 기댔던 것을 끊어, 현묘한 이치와 계략하던 행동을 떨쳐버리고 본분의 일을 체득해야 한다. 이미 체득하여 본분의 자리에 이르고 나면 그저 팔을 베고 누워 있다 해도 완전히 쾌활한 사람이다. 말끔히 다 없어져서 그윽하지 못한다면 아득히 이처럼 가리니, 겨우 머리를 돌려 당처를 보아 붙들었다 하더라도 털끝만큼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영영 빗나가 전혀 관계할 바가 없으리라. 듣지도 못하였느냐. “알고 보니 황벽의 불법도 별 것 아니었군”이라고 했던 임제스님의 말씀을. 참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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