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월선인(月禪人)에게 주는 글


  옛날 조산(曹山本寂)스님이 오본(悟本洞山)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자 오본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

  그러자 조산스님이 대답하였다.
  “변함이 없는 곳으로 가렵니다.”
  “변함이 없는 곳에 어찌 감이 있겠느냐?”
  “가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본스님은 그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그의 깨우침이 빈틈없이 면밀하여 큰 안락을 얻어 통하지 않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관 작용의 길[機路]이 말숙히 깨끗하면 모든 사람이 가두어도 머물지 않으며, 말을 하게 되더라도 단도직입적이어서 전혀 장애와 걸림이 없었다.

  만일 가슴에 조금이라도 알음알이가 있어 곳곳에서 집착한다면 어떻게 말끝에서 단박에 이처럼 끊을 수 있었으랴. 이 의도를 잘 체득하면 참으로 변함이 없어져서 천행만겁이 지나도 다만 여여(如如)할 뿐이다.

  두서없이 어지러워도 낱낱이 분명하여 아무 변함이 없으니, 어찌 끝없는 허공 같은 완전한 선정을 얻지 않겠는가. 그 때문에 말하기를 “오묘한 자체는 본래 처소가 없으니 온몸인들 어찌 자취가 있으랴” 하였다. 그러니 “가더라도 변함이 없다”한 뜻이 분명하리라.

  석가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해 이 일을 보임(保任)하오니 끝내 헛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이야말로 불지견(佛知見)의 연원을 사무치면 모두가 실제 아님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참된 경지를 밟게 되면 모든 행동거지가 다 헛된 데 떨어지지 않는다. 낱낱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금을 초월하여 그 형상을 찾으려 해도 터럭만큼도 찾지 못한다. 그 진실 합당함의 극치는 밥 먹고 옷 입는 4위의(四威儀) 가운데 완전한 모습 그대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그것을 지극한 보배를 얻은 듯 정중히 보임해야 한다. 그것을 보호하고 기르면 큰 역량을 얻어, 이로써 세상을 제도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감당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된다. 바야흐로 부처의 아들이 되어 석가 부처님이 애써 말씀하신 것을 저버리지 않으리니, 이것을 ‘은혜를 알면 은혜를 갚을 줄 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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