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자선인(自禪人)에게 주는 글


  처음 발심한 사람이 용맹스런 마음으로 밥 먹고 잠자는 것마저 잊은 채 오로지 확실한 데에만 전념하는 것은 가히 훌륭한 일이다. 더구나 한창 나이에 고향의 포근함을 그리워하지 않고 청정고아한 대중을 따라서 이 하나의 큰 인연을 몸소 닦는 경우야 실로 숙세에 심은 큰 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매일 삼가고 애써서 단박에 씻은 듯 벗어나 자유로이 법도를 실천하며 따라야 한다.

  이미 도를 닦겠다는 마음을 먹고 대중을 대신하여 발우를 지녔다면 좋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없다. 모름지기 외진 곳에 거처한다 해도 빽빽이 많은 사람의 속에 있는 것처럼 해야 하니 이른바 “스스로 총림을 짓는다”한 것이다. 소매에 소개장을 넣고 신도집에 명함을 내밀며 사람을 만나 예를 차리는 등 매일 작용하는 가운데서 스스로 참구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경계와 인연이 모조리 자기가 깨달아 들어가는 길이 되리라. 한 티끌 속에서 투철히 벗어나면 온 세계가 모두 큰 보배창고가 되리라. 이 깊은 무더기를 발현하면 8만의 티끌 번뇌가 모두 8만의 바라밀이 된다. 외물을 움직여 자기에게로 귀결시키고 가는 곳마다 마음을 알아서 공부하는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고덕은 말하기를 “산승이 그대를 위해 방편을 틔워주는 것은 도리어 한계가 있으니 저 산하대지와 일체 음성 및 자기의 마음이 일어나는 자리가 그대로 문수, 보현, 관세음의 오묘한 방편인 것만 못하다”고 했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보수(寶壽)스님이 화주를 나갔다가 시장에서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곁에 있는 사람이 화해를 권하면서 “너는 이처럼 면목이 없느냐”하는 것을 듣고서 단박에 통 밑이 빠진 듯했던 것을. 그는 그 뒤로 세상에 나와 풍우의 조화를 부리듯 하였던 것이다. 다만 처음 발심했던 마음처럼 한결같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의 칠통팔달한 자재력을 가지고 의심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스스로 불조를 초월하고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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