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각선인(覺禪人)에게 주는 글


  불조의 종승(宗乘)에서는 단도직입만을 힘쓸 뿐이다. 마치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너듯 굉장한 기세로 밑바닥까지 사무쳐야지 만약 조금이라도 주저했다가는 천 리 만 리 어긋나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옛부터 고덕들은 방, 할을 행하고 마치 전광석화와도 같이 방편과 경계에서 참구하였으니, 가풍의 규식을 약간이라도 노출했다 하면 벌써 진탕 속으로 이끌고 풀 구덩이 속에 떨어져버린다. 그런데 어찌 다시 심천, 득실, 편원(偏圓), 사리(事理)등의 알음알이를 따지랴. 흙 위에 진흙을 더한 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준수한 부류는 최상승의 도장을 차고 천 개의 해가 동시에 비춰서 어둠을 밝히는 것과도 같다. 문에 들어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눈을 들고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먼저 오장육부를 꿰뚫어 본 것이다. 대체로 본분종사의 솜씨는 애초에 조작이 없고, 그저 재빨리 스스로 알아차려서 훌쩍 일어나 대뜸 가버리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그래서 고금을 가두고 시방을 눌러 앉아서 만세천겁토록 실낱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만약 이처럼 단박에 초월하지 못한다면 우선 스스로 6근, 6진의 허망한 인연을 툭 털어버리고, 나아가 청정오묘하고 빼어나 도리로써 텅 빈 곳을 마주해야 한다.

  마치 통 밑이 빠진 듯 가슴이 깨끗하며, 의심의 망정이 다하고 훌륭하다는 생각도 모두 잊어서 자연히 근본이 환하게 밝아지면 옛사람들과 똑같이 증득하여 일찍이 간격이 없어진다. 바로 이것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며, 마음 깨닫는 법칙이다. 끝내 촉루식(觸?識)을 가지고 귀신을 보고 그림자와 광채를 인식하지 말아라. 소굴에 떨어지게 되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옛사람은“마음 그대로가 부처이다”라고 말했고, 또"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했으며, 또”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삼선근(三善根)“,”저울추를 톱으로 자른다“등등 천차만별이었다. 만약 이를 단박에 알아차린다면 어찌 두갈래가 있으랴. 때문에 한 번 알아버리면 일체를 알고 한 번 밝히면 일체를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밝히고 안 것까지도 모름지기 세 동강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릴없고 함이 없는 경지에 들어가 진실 합당한 곳을 밟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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