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양주(楊洲)의 승정(僧正) 정혜대사(淨慧大師)에게 드리는 글


이 일은 작가 선지식을 의지해서만 통할 수 있나니
천리를 논할 것 없이 가풍이 저절로 같도다
명성을 들은 지 10년인데 이제야 서로 만나
금강권, 율극봉을 꺼내 보이는 도다.
箇事唯憑作者通 不論千里自同風
聞名十載今相遇 拈起金剛栗棘蓬

  양주(楊洲)땅의 전승정(前僧正)이었던 정혜대사종공(淨慧大師宗公)께서 일부러 강을 건너 종부(鍾阜) 땅을 거쳐 찾아오심은 자기의 큰 인연을 위한 정성의 표시이며, 오로지 소참(小參)을 청하므로 이 게송을 설하여 대사의 성의에 보답코자 합니다.

  정혜대사는 평생 매우 청정히 수행하였으니 이는 숙세에 심은 복연(福緣)으로, 마치 부처님이 세상에 생존해 계실 때 수보리의 방 안이 보배로 가득했던 것과도 같습니다. 근성이 명민하여 집착이 전혀 없고 득실을 알아, 모든 사물이 뜻밖에 닥쳐오더라도 마음을 다잡아 오직 이 하나 참구하기만 힘썼을 뿐입니다. 잠깐밖에는 만나보지 못했으나 매우 확고부동하게 애를 써서 기대에 부응하므로 그대를 위해 그 뜻을 펴 보이는 바입니다.

  조사와 모든 부처님이 외길로 전하고 밝혀 보이신 것은 사람마다 제 발 아래 본래 있는 성품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인, 범부의 기세계(器世界)와 6근, 6진인 정보(正報)는 오랜 겁도록 끊어진 적이 없었으나 각자 사람마다 망상으로 티끌경계를 반연하여 장애에 가리웠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의 큰 역량을 발현해 용맹하게 닦아 지녀서 한 생각도 내지 않고 앞뒤가 끊기게 되면, 단박에 이 마음을 분명하게 믿고 이 자체를 분명하게 보아서 허공같이 넓고 태양처럼 밝아집니다. 주관, 객관이 나뉘지 않고 한량을 짓지도 않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단박에 철저하게 깨치면 마음 그대로 부처임을 꿰뚫을 수 있습니다. 따로 부처라 할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라 할 부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적나라하게 텅 비고 오묘하고 분명하게 통하여 절대로 의지하거나 기댐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한량없는 보배창고를 열면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자기 재물인 것과도 같습니다. 매일매일 쓰더라도 온천지 어디에도 감출 수 없이 완전히 쉬어버린 무념무심의 경계로 들어가니 이른바“한 구절에 요연히 백억 법문을 뛰어 넘는다”한 것입니다. 밥숟갈 드는 사이의 천만 가지 일과 천 마디 만 마디 구절들이 어찌 다시 차별이 있겠습니까. 이제 힘을 덜려 한다면 망상의 외연과 의심의 망정을 쉬어 깨끗이 다한 곳이 바로 자기가 생사를 투철히 벗어난 곳임을 아십시오. 그저 이것이 바로 금강권, 율극봉이니, 반드시 이 자리에서 알아차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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