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원상인(圓上人)에 주는 글


  예로부터 뜻이 있는 사람은 머리를 깎고 나면 즉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도를 찾아갔었다. 실로 천재일우로 태어난 한 몸을 사바세계에서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각고의 의지로 마음을 쉬고 진정으로 이마에 종안(宗眼)을 갖춘 선지식을 선택하여 짐보따리를 풀어놓고 그를 의지해 끝을 보았다. 그들의 행적을 관찰해 보건대, 진정 용상(龍象)대덕들이었다.

  지금 이미 큰 인연에 나아가겠다는 뜻을 품었으니, 반드시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한결같이 견고하고 확실하게 해야만 한다. 먹고 자는 것을 잊고 괴로움을 꺼려하지 말고 인고하여야 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몸소 참구하다 보면 저절로 믿어 들어갈 곳이 있게 한다. 그런데 하물며 이 하나의 인연은 자기의 분상에 원래부터 원만히 이루어져 일찍이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고 불조와 전혀 다름이 없음에랴!

  다만 지견을 일으켜 억지로 마디와 조목을 내고 망정으로 헛된 거짓을 집착하였기 때문에 단박에 실답게 깨치지 못할 뿐이다. 만약 숙세에 심은 근기와 성품이 민첩하고 영리하여 한 생각도 내지 않으면 단박에 25유(二十五有)를 초월하여, 자기에게 본래 있는 여여하고도 오묘한 성품을 원만하게 깨닫고 다시는 털끝만큼도 주관과 객관, 나와 남을 나누지 않는다. 툭 트여 성인과 범부가 평등하고 나와 남이 여여하게 되어서, 부처가 다시는 부처를 찾지 않으며, 마음에서 애초부터 마음을 구하지 않는다. 부처와 마음이 둘이 아니어서 이르는 곳마다 있는 그대로 이루어져서, 하루 종일 다시는 헛된 거짓에 떨어지지 않고 단박에 자기에게 원래 있었던 실제의 경지를 밟는다.

  자기의 창고를 열고 자기의 재물을 마음대로 운반해 내어, 처소에 따라 기틀(機)을 발휘하여 종지와 격식을 모두 초월하고, 활발하게 진실을 꿰뚫는다. 비록 덕산, 임제, 운문, 현사스님 등이 헤아리기 어려운 오묘한 기틀을 베푸는 것을 만난다 해도 한 수를 쓸 것조차도 없게 된다. 이를 두고 이른바 “많은 헛것이 적은 알참만 못하다”하는 것이다.

  그저 맹렬했던 처음의 발심을 변치 말고 계속 이어지게 해서 철저한 곳에 도달하면 자기의 도업(道業)이 완성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향상의 대기대용을 알아서 편안하고 즐거워야 비로소 멈출 수 있다. 절대로 적은 것으로 마치지 말고, 부디 오fot동안 전전긍긍하다 보면 자연히 체득하게 되리니, 어찌 해탈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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