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승상인(勝上人)에게 주는 글


  큰 도는 바탕이 드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으나 작은 견해로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더욱 늦어진다. 만약 큰 도의 바탕이 드넓어 툭 트인 태허공과 같음을 통달하면, 가슴을 텅 비워 부딪히는 곳마다 모두가 진실이어서 일정한 한계에 매이지 않는데, 무슨 어려움과 쉬움이 있으랴. 그저 손가는 대로 집어내서 천지를 덮고 10허(十虛)를 그 속에서 길러내지만, 모양을 내지 않는다.

  만약 털끝만한 지견이라도 지어 알음알이에 걸리게 되면 지견에 떨어져 마침내 사무치지 못하고 도리어 여우처럼 의심만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 도는 날카로운 큰 근기가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에 힘 쓸 뿐이니, 벗은 듯 또렷하게 깨달으면 대뜸 쉬어서 다시는 한정된 지견을 짓지 않는다. 천차만별을 한 칼에 베어버리고 등한하게 승부를 세우지 않고 마치 바보나 천치처럼 한 걸음 물러나서 숨도록 힘쓸 뿐이다.

  호젓이 움직이고 홀로 비추어서 융통하게 합치하게 되면, 밀밀면면해서 부처님의 눈으로도 엿보지 못하는데, 더구나 마군 외도의 경우이겠느냐. 오래도록 길러 성취하면 자연히 마음에 사무치고 골수에 배는 공덕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6근, 6진에 맞고 거슬림, 삶과 죽음까지도 물어뜯어 끊어서 조금도 의심이 없으면, 이야말로 무심하고 함이 없고 일없는 대해탈의 경계인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 훌륭한 부류에 참여하기로 작정했으면 모름지기 간절하고 부지런히 힘써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고 확실하게 참구해야만 한다. 한 구절, 한 기틀, 한 경계 위에서 분명하게 깨달아 들어가 한량없는 작용과 공안들을 일시에 꿰뚫어버리면, 꺼내드는 족족 다시는 놓아주지 않고 그대로 끊어버리니, 어찌 통쾌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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