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이의보(李宜父)에게 드리는 글


  이 도의 가장 중요한 첩경은‘한 마디 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부처님 입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모든 조사가 말한 것도 아닙니다. 가령 “마음이 곧 마음이 아니며, 부처가 곧 부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배에 칼 잃은 자리를 새기고 토끼를 잡으려고 나무둥지를 지키는 격으로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만일 묵묵히 이 말귀를 알아차린다면 어찌 입술 나불거린 데에 떨어지겠습니까만, 흙덩이를 좇는 부류들은 허망함을 좇아 헤아리면서 눈을 깜짝이고 움직이지만 꿈에서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옛분들의 체제와 수행에서 총명함을 짓거나 지견을 세우거나 또는 권실(權實)과 조용(照用)등의 경계를 논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해서 이윽고 구름 위에 누르고 앉아 별똥이 튀고 번개가 치듯 방과 할을 휘둘렀습니다. 준수한 사람은 겨우 듣기만 해도 귀결점을 알아버립니다. 그렇다면 필경에 이 ‘한마디 말’이란 즉 ‘백수자(栢樹子)’, ‘수미산’, ‘노친(露親)’, ‘할(?)’, ‘보(普)’, ‘착(錯)’, ‘구견(俱見)’, ‘지(知)’ 등이 아닐런지요. 또 ‘한쪽밖에 못보는 놈이네[擔板漢]’, ‘감파해 버렸다’, ‘차마시게’, ‘조심하게’, ‘노형은 아직 깨닫지 못했음을 내 장담하리다’, ‘푹 쉬게’, ‘법당에 참배하게’했던 것 등이 아닐는지요. 그러나 이는 모두 풀이나 나무에 붙은 도깨비 정령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조사는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으로 종지를 삼고 무문(無門)으로 법문을 삼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저울 눈금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곧바로 통 밑이 쑥 빠질 때가 되면 꿈에서 깨어나듯 확철대오하리니, 그런 뒤에야 ‘이 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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