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방청로(方淸老)에게 드리는 글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셨을 때 한 물건인들 가지고 오셨겠습니까. 양나라, 위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소림에서 면벽하였으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고 유독 혜가조사(慧可祖師)만이 부지런하게도 눈 위에 서서 팔을 끊자, 비로소 조금이나마 자비를 베풀어 이로 인해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가령 말이 없었다 한다면 무엇으로 깨달아 들어갔으며, 말이 있었다 한다면 그에게 무엇을 말했겠습니까? 그러므로 바로 그 사람이라야만 비로소 완전히 깨쳐서 번뇌가 없으리라는 점을 알겠습니다. 그 때문에 이 문에 들어오는 사람은 반드시 근기가 날쌔고 영리해야만 합니다. 종전의 지견과 알음알이를 빨리 버리고 가슴 속을 허허로이 말끔히 비워서 털끝만큼도 남기지 않고 환하게 비추고 엉킨 듯 텅 비어 있어야만 합니다. 언어와 생각의 길이 끊어져 본원에 곧장 계합하고, 아무 것도 아무 한계도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래부터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얻을 것조차 없는 오묘한 이치를 스스로 얻어야만 비로소 신심과 견해가 사무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량없고 끈이 없어 헤아리기 어려운 대기대용이 있게 됩니다. 혹시 약간이라도 주관과 객관을 남겨 두어 경계와 인연에 떨어지면 졸지에 상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고덕은 단박에 쉬어라, 쉬어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하면 마치 나는 매가 구름을 헤치고 태양을 찌르듯, 또 바람을 휘몰아쳐서 푸른 허공을 등지고 날쌔게 치솟듯 그대로 솟아올라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으니, 혹 주저하면 빗나갑니다. 이것으로 교 밖에 따로 전한다는 것을 미루어 알 만합니다. 그러니 여기에 뜻을 두었다면 놓아 버리십시오. 그 자체를 단박에 알아차려 일체가 있는 그대로 완전하면, 초조인 달마스님도 일찍이 온 적이 없고 자기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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