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위학사(魏學士)에게 드리는 글


  얼굴을 마주해서 드러낸 그때 벌써 부촉을 끝냈으니, 만약 영리한 근기가 한 마디 말끝에 깨닫는다 해도 벌써 낭패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종이에다 먹을 적셔 말에 끄달리고 설명을 한다면 점점 아득히 멀어집니다. 그러나 이 하나의 큰 인연은 사람마다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단 자기에게서 찾아야지 다른 데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 마음이 모습이 없고 텅 비고 한가로워 고요하고 은밀하되, 4대 6근을 항상 형상 짓고 그 빛은 뭇 물상을 삼키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음과 경계를 모두 고요히 하고 둘 다 잊어 지견과 알음알이를 끊고 그 자리에서 뚫어버리면 바로 부처의 마음이어서, 이 밖에 다시 어떤 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오직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교 밖에 따로 전한다” 또는 “바른 도장을 외길로 전하며 언어문자를 쓰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심은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여 바깥 사물을 인식하고 자기 견해를 인식하면서 정혼을 놀려 일정한 틀에 집착한다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집니다. 석상(石霜)스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쉬어라, 푹 쉬어라. 당장 입술에 곰팡이가 피도록, 한 가닥 흰 명주실처럼, 일념이 만 년이 되도록, 냉랭하고 싸늘하도록, 옛 사당 안의 향로처럼 되도록 하라.”

  이 말만 믿고 의지하여 수행하면서 몸과 마음을 흙과 나무와 돌덩이처럼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결에 변함없는 자리에 도달하여 호흡이 끊기고 속박이 끊어져서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마치 어둠에서 등불을 만난 듯, 가련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듯 갑자기 기쁨을 얻습니다. 4대 5온이 가볍고 편안하여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합니다. 몸과 마음이 훤히 트여 모든 모습이 마치 헛꽃[空華]과 같아서 결코 잡을 수 없음을 분명히 비춰보게 됩니다.

  이 본래면목이 본지풍광을 나타내고 한 가닥 청허(淸虛)함을 드러내니, 바로 이것이 자기가 신명을 놓아버리는, 편안하고 한가하며 함이 없는 쾌락의 경지입니다. 천만의 경론이 이를 설명했을 뿐이며 과거 미래의 성인이 작용하는 방편의 오묘한 문도 다만 이것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마치 열쇠를 가지고 보배 창고의 자물통을 여는 것과도 같습니다. 문만 열리고 나면 보이는 것마다 만나는 인연마다 천차만별한 것이기는 하나, 모두 자기 본분에 원래 있던 보배여서 손 가는 대로 집어내 마음대로 쓰게 됩니다. 이를 두고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서 미래세가 끝날 때까지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얻을 것이 없는 자리에서 얻고, 얻더라도 역시 얻는 것이 아니어야만 진실한 얻음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깨달음도 있고 얻음도 있게 되어 끝내는 사이비 반야[相似般若]에 떨어지니 그것은 구경[究竟]이 아닙니다. 우선 툭 트이게 이 근본을 통달하여 분명해지고 나서, 그런 뒤에 힘을 내서 작용하는 것이 바르고 좋은 수행입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실천하면서 한 법도 갖거나 버릴 것이 없으면 그 자리[當處]가 원융하여 곳곳이 삼매이며 티끌마다 조사입니다. 그러면서도 훌륭히 알았다는 마음을 간직하지 않고 나와 남이 없는, 평등하여 한 모습인 큰 도를 오로지 행합니다. 계율을 받들고 재계를 지녀 3업을 알뜰하게 닦아 티 없이 청정하여 말숙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6도만행에 낱낱이 원통하여 대기와 대용을 발현하고 더더욱 모든 사람들이 이를 믿고 이를 침구하며 이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해(解)와 행(行)이 상응해야 하며, 절대로 인과를 무시하여 너저분하게 마군의 삿된 견해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잠깐만이라도 이런 생각을 내면 곧 반야를 비방하는 것이어서, 마침내는 악한 과보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조께서 하신 말씀들을 “청정하고 분명한 가르침”이라 말하니 반드시 이 정인(正因)을 의지하고 나서야 현묘한 과위를 증득하게 됩니다.

  일생 동안 있는 힘을 다해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려 해야 합니다. 만약 한 생각 뚜렷하게 깨치기만 하면 생각 생각에 수행하되 닦음 없이 닦고 지음 없이 지음으로써 연마하여 갑니다. 모든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선악의 업보인연에 매이지 않아 완전한 해탈을 얻게 됩니다.

  백년 후 죽음에 이르러서는 홀연히 홀로 벗어나 앞길이 훤하고 겁겁생생토록 자기를 미혹하지 않으니, 이것이 백 번 천 번 타당한 것으로서 모두가 언어문자에 떨어지지 않는 현묘한 기봉과 경계의 극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응당 잠잠한 마음으로 참구하여 번뇌를 투철히 해결하고, 청정한 묘과(妙果)를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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