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장중우 선교(張仲友宣敎)에게 드리는 글


  이 큰 인연을 탐구하려면 영리한 근기와 최상의 지혜라야만 마침내 약간은 힘을 덜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일을 하려면 항시 자기의 견해를 고요히 하고 가슴 속을 텅 비워 광채를 돌이켜 간파해 내서, 안과 밖이 텅 비어 고요하며 담연하고 분명하게 관조해서 한 생각도 나지 않는 곳에 도달해야 합니다.

  연원을 철저하게 꿰뚫고 문득 스스로 깨치면 자체가 허공과 같아 이루다 헤아릴 수 없으며, 고금에 뻗쳐 만상도 가두지 못하고 범부나 성인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씻은 듯 적나라하여 이를 ‘본래면목’ 또는 ‘본지풍광’이라고 합니다.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으니 미래가 다하도록 다시 무슨 걸리고 막힐 생사가 있겠습니까.

  소소한 득실과 시비, 영고성쇄, 고요함과 혼란함에 이르러서도 대뜸 끊어 꽉 쥐고 주인 노릇하여 오래도록 길러갑니다.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으니, 그저 부디 조심해야 할 것은 알음알이를 일으켜서 깨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피아(彼我)에 떨어져 반드시 사랑과 증오의 마음이 생겨 씻은 듯 벗어버리지 못합니다. 이 무심한 경계, 즉 사념 없는 진실한 종지는 요컨대 매섭고 영리한 사람만이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사람들로 하여금 견성성불하게 하였을 뿐입니다.

  이미 분명하게 이 마음을 믿고 들어가 확실히 도달하면 모든 인연을 놓아버려 항상 마음을 텅 비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태(聖胎)를 길러 진정한 수행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정녕 깨달은 바가 없다면 경계와 외연을 만났을 때 언제든지 어지러워 모든 사물에 쉽게 휘둘려 생사의 속박 속에 오래도록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덧없음만을 생각하여 생사문제를 큰 일로 삼아야만 합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가운데서 움직일 때에는 그 움직일 때를 살펴보고, 가만히 있을 때에는 가만히 있을 때를 살피며, 옷 입을 때는 옷 입을 때를 살피고, 밥 먹을 때는 밥 먹을 때를 살펴서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 대사인연을 깊게 믿으면 공겁(空劫) 저편으로부터 부모가 낳아주시기 이전까지가 그 자리에서 뚜렷하게 밝아집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매일 살아가는 가운데 있을 뿐이니, 언제 한번이라도 모자라거나 부족했던 적이 있겠습니까. 한 곳만 꿰뚫으면 어느 곳 하나도 빠뜨림없이 투철하여, 이른바 “곳곳마다 참되고 티끌마다 본래인이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말을 할 때는 소리가 나타나지 않고 그 자체 당당하나 몸이 없습니다. 그러니 한 티끌을 잠깐 들자마자 대지 전체가 딸려옵니다. 온 법계가 모두 나이니 다시 어는 곳에는 눈, 귀, 코, 혀, 몸, 의식을 붙이겠습니까.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은 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물이 물로 들어가듯 금에다 금을 올리듯 하여, 참으로 여여(如如)한 실제의 큰 해탈문입니다.

  옛날 우적상공(于?相公), 배휴상국(裴休相國) 본조(本朝)의 내한 양억, 태위 이준명(太尉李遵明) 등은 모두 빼어난 근기와 지혜를 받고 태어나 방외(方外)의 노숙(老宿)과 함께 오랫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참구하여, 모두들 깨달은 바가 있어 빠짐없이 현인달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한 세상에서만 훈습한 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공(于公)은 자옥(紫玉)스님을 뵙고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자옥스님이 그를 불러 그가 네 하고 대답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일 뿐이다”고. 배공(裴公)이 황벽(黃蘗)스님에게 고승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황벽스님은 “따로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양대년(楊大年)은 광혜(廣慧)스님에게 공부해서 깨치고는 게송을 지었습니다.

팔각의 맷돌 판은 허공 속을 달리니
금빛 털 사자를 개라 부르는도다
몸을 뒤집어 북두성에 감추려거든
모름지기 남극성 뒤에다 합장하게나.

八角磨盤空裏走 金毛師子喚作狗
擬欲?身北斗藏 應須合掌南辰後

  이도위(李都尉)는 석문(石門)스님을 뵙고 크게 깨닫더니 게송을 지었습니다.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무쇠 같은 놈이라야 하나니
착수하는 마음에서 바로 결단내라
위없는 보리에 대뜸 나아가려거든
일체의 시비를 관여하지 말라.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이상의 네 공(公)들이 말한 것에 어찌 다름이 있겠습니까. 마음자리를 밝혀 그대로 근본을 뚫었을 뿐입니다. 이미 진실을 살피고 나면 작용하는 대로 따를 뿐 그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오조(五組)스님께서는 항상 물으셨습니다.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이 세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필경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느냐?”라고, 산승은 평상시에 참당하는 대중들에게 아래와 같이 법문을 합니다. 즉 방거사가 마조대사에게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마조대사는 “그대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시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마침내 마음의 귀결점을 참구해 낸다면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신다’한 것을 알아차리겠지만, 다른 견해를 내어 한 생각이라도 의심을 냈다 하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요컨대 모름지기 모든 인연을 놓아버리고 잡다한 지해(知解)를 깨끗이 없애 헤아림이 없는 자리에 도달하여 홀연히 깨달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창고를 열어 자기 집안의 재물을 꺼내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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