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뇌공달 교수(雷公達敎授)를 전송하면서


  석가세존이 계신 영산회상에는 백만 억의 현성(賢聖)이 모여들어 용상(龍象)들이 숲처럼 많았으니, 모두 그 어떤 무리들보다 뛰어난 큰 근기들이었습니다. 바람을 맞이하는 대로 투합계오하여 산 너머 바다 건너에서도 알아차릴 정도였으니, 어찌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정도였겠습니까. 털끝에 붙은 먼지만 슬쩍 건드려도 지극히 은밀하고도 그윽한 곳까지를 훤하게 보았습니다. 당연히 밝혀 주지 않아도 털끝만큼도 빠뜨리지 않고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꽃 한 송이를 들자 유독 금색두타(金色頭陀 : 가섭존자)만이 미소를 지음에 이르러서는, 노란 얼굴의 늙은이 석가는 이에 마음을 열고 손을 펴서 조금도 덮어 숨기지 않고 바로 말하였습니다.

  “나에게 있는 정법의 눈과 열반의 마음을 맡기노니, 잘 간직하도록 하라.”

  그 뒤로 과연 28세(世) 조사에게 각각 정확하게 전수되고, 바로 초조(달마)에게 열어 증명해 보임에 당하여, 지금까지 유통돼오면서 진실한 풍규(風規)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문수, 보현, 미륵, 금강장, 관세음보살들도 모두 팔짱을 끼고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 지극한 뜻을 시험 삼아 잡아내 보건대, 주고받는 찰나를 맞이해서, 어찌 신중히 허가하지 않아서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비록 눈으로 눈을 비추고 성스러움으로 성스러움을 잇는다고는 하나, 깃으로 날고 걸음걸이로 내닫는 그 체재는 샛길을 끊어버리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다만 향상의 하나[一着子]를 홑으로 제창하여 할 뿐인데, 이야말로 모든 성인들이 전수하지 못한 오묘함이며, 모든 중생들이 우러르는 종지로서, 틀을 벗어나고 식정을 초월하여 범부도 성인도 벗어나서 천지에 빛나고 고금에 광채를 드날립니다. 그러므로 2천년을 지나면서도 그대로 눈으로 본 듯합니다.

  아난이 그 까닭을 묻기를 “금란가사 외에 따로 어떤 법을 보여 주셨습니까?”라고 하자, 가섭은 문득 아난을 불러 그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가 즉시 말하였습니다. “문 앞에 찰간대를 넘어뜨려 버려라.” 이것이 지난날의 염화미소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같다면 면면히 이어져서 처음부터 두 갈래가 없습니다.

  이는 『전등록(傳燈錄)』과 『보림전(寶林傳)』에 실린 바로서, 물이 물로 들어가고 금이 금박이 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달마스님이 부르짖기를 “사람의 마음은 곧바로 가리켜 교(敎) 밖에 따로 전한다”고 했으니 고인을 욕되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위산스님이 말하기를 “이 종지는 그 오묘함을 얻기 어려우니 부디 자세하게 마음을 써야만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정인(正因)을 단박에 깨달으면 대뜸 6진과 계급의 구덩이를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봉두난발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펴보면 반푼의 가치도 못됩니다만 홀연히 사무치게 뒤집어 한량없는 생의 업식종자(業識種子)를 물리치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손가는 대로 집어내 보이면, 있음[有]을 모르는 자는 마치 오리가 우레소리를 듣듯 눈만 껌벅일 뿐입니다.

  그런 뒤로는 문빗장에서 문득 천군만중(千群萬衆)을 거느립니다. 진실로 그것을 갖추기만 하면 종종 큰 도를 갖춘 종사들이 번번이 모두 이렇습니다. 고귀한 세도에 처하여 재상과 대신을 지낸 경우에 이르러서는, 배상국(裵相國), 진조상서(陳操尙書), 백낙천(白樂天), 왕상시(王常侍)와 본조(本朝 : 宋代) 문공 양대년(文公楊大年), 부마이도위(駙馬李都尉)같은 이는 주위사람을 놀라게 하고 성인에 필적하였으니, 믿음이 사무치고 견해가 투철하여 다함없는 복을 누렸습니다. 모두가 특출한 지모와 빼어난 견해를 타고나서, 세간에 물들지 않고 출세간의 길목을 장악코자 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입니다.

  이 산승은 천성적으로 모자라고 우매하나 우연히 분별하여 선철(先哲)의 조예를 부여잡아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을 능가하는 재주는 없으나 다만 오래도록 절개를 지킬 따름입니다. 믿음이 미약한 탓으로 잘 가르쳐 내보이지 못하면서, 사람을 위한답시고 40여 년이 흘러가버렸습니다.

  매번 걸출한 영재를 만날 때마다 언제든지 속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어 늘어놓았습니다. 마음이 향하는 바대로 기연에 내맡겨 오로지 그런 가운데 한 구절, 한 마디 말을 튕겨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성인들의 정수리 위에서 대자재 해탈의 역량과 작용을 밝혀 얻는데 전력할 따름입니다.

  과연 온 세상의 뭇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여 이들을 들어다가 함이 없고 하릴없는, 안락하고 온밀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만 한다면, 석가모니, 금색두타로부터 아래로는 6대 조사, 당송(唐宋)의 크게 깨친 장군, 재상들에 이르기까지와 어찌 차이가 있겠습니까.

  근원이 깊으면 물줄기가 멀리 가고 뿌리가 단단하면 꼭지가 견고합니다. 헛되이 인정하지 않아야만 이것이 진실하게 깨달은 영웅호걸의 신령스런 해탈대인인 것입니다.
,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