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장선기 학사(張宣機 學士)에게 드리는 글


  옛부터 크게 통달한 사람은 밀전(密傳)만을 외길로 제창하였으니, 홀로 벗어난 최상의 이 한 가지[一著子]가 그 지극한 요점입니다. 오직 근기가 빼어난 상지(上智)가 기연에 투합하여 단박에 알아차리기만을 힘썼을 뿐, 어느 틈에 향상(向上)ㆍ향하(向下)ㆍ이성(理性)ㆍ현묘(玄妙)ㆍ정위(正位)와 편위(偏位)ㆍ빈주(賓主) 따위의 수많은 언어작용이 있었겠습니까. 알음알이를 잠깐이라도 내기만 하면 그대로 얽매여 다시는 조금도 자유로울 분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본분작가는 결코 남의 낚시 끝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의 올가미에 떨어지지 않고, 오직 스스로 환하게 비추어 가슴 속에 털끝만큼도 남겨두지 않고 초연히 고고합니다. 만법과 짝하지도 않으며, 모든 성인과 자리를 함께 하지도 않은 채 밝고 청정함을 완전히 노출하여 담담히 텅 비어 맑을 뿐입니다. 나아가 인연따라 방편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나는 칼 바퀴 같고 맹렬한 불무더기 같은데 어떻게 가까이 하겠습니까. 어묵(語?)ㆍ유무(有無)ㆍ동정(動靜)ㆍ피아(彼我)를 한꺼번에 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견고한 관문에 도달하니, 요긴한 나루터를 차지하여 범부도 성인도 통하지 못한다”라고 했는데, 부득이하여 ‘일구(一句)’, ‘정위(正位)’, ‘정문(頂門)’, ‘금강왕(金剛王)’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한 의도를 알면 틀림없이 꿰뚫어 통하여, 망정과 의상(意想)과 견해(見解)의 수승한 지혜가 자연히 녹아버리고 하루종일 넓고 너그러이 완전한 자유로움을 얻습니다. 이로써 자기자신을 수행하고 나라를 다스리면 은택이 백성들에게 미쳐 지위와 덕망이 더욱 융성할 것입니다. 마음 씀씀이는 더더욱 정대하여 그 공로에 머물려 들지 않고 그 덕을 지니려 하지 않습니다.

  만 세(世)가 한 때이고 만 년도 한 생각일 뿐이며, 시방(十方)도 오히려 눈 깜짝하는 사이며 조화도 손아귀에 있습니다. 다만 사물을 자유롭게 운용할 뿐이어서 하늘과 땅을 뒤바꾸며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대천세계를 세상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어찌 어렵다 하겠습니까.

  이미 깊이 살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덜고 연마하여 더더욱 역량을 갖추어, 정신을 수고롭게 하지 말고 태연히 안정되도록 하소서. 어찌 금생에서만 하고 말 것이겠습니까? 앞으로 오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음이 없겠습니다. 같은 길을 가고 같은 깨달음을 증득한 사람을 만나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말하지 않아도 계합할 것이나. 이를 버리고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전하는 말에 “여래께서 가지신 밀어는 가섭이 감추지 않았다”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비밀이 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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