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호상서(胡尙書)에게 본성 깨치기를 권선하는 글을 드립니다.


  사람마다 자기 의발 아래 텅 비어 신령하게 통하는 이 한덩이의 큰 빛이 있으니, 이를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 합니다. 중생도 부처도 본래 갖추었고 원융하여 끝이 없으며 자기의 마음속에서 4대5온의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애초부터 물듦이 없이 그 본성은 맑고도 고요하나, 다만 망상이 갑자기 일어나 그것을 가리고 장애하기 때문에 6근과 6진에 묶이게 됩니다. 6근과 6진이 서로 짝이 되어 찰싹 들러붙어 집착이 생기면, 일체의 경계를 취하여 일생 허망한 생각을 내고 생사의 번뇌 속에 빠져들어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과 조사께서 이 참된 근원을 깨닫고 훤하게 근본을 통달하여, 생사에 빠진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 세상에 나오심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오셔서 교(敎) 밖에 따로 전하였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큰 근기와 영리한 지혜를 갖춘 이가 회광반조하여 한 생각도 나지 않는 곳에서 이 마음을 분명히 깨치는 것만을 귀하게 여길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 마음은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내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도장을 찍어두고 홀로 아득하고 활활발발하는데, 잠깐이라도 마음을 내어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즉시 이 본래의 밝음을 어둡게 합니다. 지금 요컨대 곧바로 끊어버려 쉽게 꿰뚫으려고 한다면, 다만 몸과 마음을 놓아버려 텅 비어 신령하고 고요하면서도 비추어서, 안으로는 자기라는 견해를 잊고 밖으로는 가는 티끌마저도 끊어져서 안과 밖이 환하여 오직 한결같아야 하니, 오직 하나의 진실뿐입니다.

  눈, 귀, 코, 혀, 몸, 의식과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은 모두 그것에 의지해서 건립된 것인데, 그것은 능히 저 모든 인연을 훌쩍 벗어나 뛰어넘게 됩니다. 그러나 허다한 모든 인연들은 애초에 일정한 모습이 없어서, 오직 이 광명에 의지하여 모두 전변합니다. 만약 이 한 덩이의 심전지(心田地)를 믿어 도달할 수만 있다면, 하나를 깨쳐 일체를 깨치며 하나를 밝혀 일체를 밝힙니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하는 것마다 모두 철두철미하여 대 해탈 금강의 바른 몸입니다.

  요컨대 우선 이 마음을 깨닫고 나서 그런 뒤에 모든 선행을 닦아야만 합니다. 듣지도 못하였습니까.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조과(鳥?)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도란 무엇입니까?"

  조과스님은 말하였습니다.
  "모든 악한 일은 하지 말고 뭇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살 먹은 아이가 말할 수는 있어도 팔십 늙은이도 행하진 못할 걸세."

  그러므로 응당 허물을 살펴서 눈과 발이 서로 의지하듯 닦아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뭇 착한 일을 알뜰하게 닦으면, 5계10선(五戒十善)만 잘 지킨 사람일지라도 생사 윤회에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먼저 밝고 묘한 진심의 견고한 정체를 깨닫고 나서 힘에 따라 수행하는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착한 행동을 하면서 남들도 인과에 미혹되지 않도록 하여 지옥과 천당의 원인이 모두 본래의 마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도록 해줍니다. 꼭 이 마음을 평등하게 지녀서 나와 남의 구별이 사랑도 미움도 없으며 좋고 싫음도 없고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아, 차츰차츰 20년, 30년을 길러 가면 맞고 거슬리는 경계를 만나도 더 이상 물러남이 없게 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자연스럽고 태연하여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치[理]는 단박에 깨달으나 사실[事]은 점진적으로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배우는 무리들 중에 많은 이들이 그저 세간의 지혜와 총명함으로 불조의 말씀 중에서 기묘한 구절을 잘도 외워서 말을 밑천으로 삼아 능력이나 해박함을 과시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는 올바른 견해가 아니므로 응당 버려야만 합니다. 잠잠한 마음으로 고요히 앉아서 반연을 잊고 몸소 참구하여 철저하게 영롱한 데 이르면, 계산할 수도 없고 끝도 없는 자기 자신을 보배 창고에서 쏟아내게 되니, 진실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먼저 본래면목을 깨닫고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인 진정한 자체를 분명하게 보아야만 합니다. 모든 허망한 반연을 여의고 문득 청정하게 된 뒤에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고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들에게 요약되도록 합니다. 그러고 나면 하는 일마다가 모두 평등하여 나[我]도 없고 집착도 없습니다. 오묘한 지혜가 환하게 드러나서 본체에 사무쳐 통하니, 착한 행동이 어찌 오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말씀드리노니, 마음 깨치는 데만 애쓴다면 반드시 속지 않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목표 삼을 뿐 느리거나 더딜까를 의심하지 마소서.

  몸조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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