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성연(性然)거사에게 드리는 글


  도산(道山)의 성품은 도에 합치하여 고요함을 좋아하고 겉치레를 숭상하지 않으며, 숙세의 깊은 신심을 간직하고 무엇보다 현묘한 가르침을 흠모하십니다. 늘 편안하고 고요하여 밤낮으로 그윽히 안으로 밝게 비춰보니 마치 얼음 항아리나 옥으로 만든 거울같이 겉과 속이 훤히 사무치십니다. 또한 나물 음식으로 오랜 세월을 재계하며 향상의 종승을 참구하며 선지식을 두루 참례하여 한결같이 지성으로 탐구하고 연구한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견해나 말에 끌려 형식에 뜯어 맞추며 이리저리 뚫더니만, 여기저기 다니며 바탕이 쌓이자 그 뜻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거기서 홀연히 모두 벗어던지고 곧바로 불조 심성의 연원을 꿰뚫어 묘한 이치에 깊이 들어가 실천하고 설통(說通)과 종통(宗通)을 모두 갖추어서 열반과 생사를 원융하게 껴잡아 몸과 마음이 한결같은 훌륭하고 청정한 경지에 도달하였습니다.

  방편 지혜〔機智〕는 더욱 밝아져 고삐를 벗고 스스로 즐긴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그만 두지 않고 여러 곳에서 도에 통달한 최상의 대근기에게 가서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부숴버리자, 큰 작용〔大用〕이 분명해졌습니다. 향상의 문빗장을 용광로 속에서 더욱 삶고 단련하여, 현묘함도 밀쳐두고 미세한 것까지도 뽑아버려 살활(殺活)의 요점을 거머쥐고 성현의 깊은 세계도 초탈하였습니다.

  마침내 잘잘못을 분별하고 좋고 나쁨을 식별하며 진퇴를 알아 방편과 실다움을 분별하여 참다운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마치 편안하고 한가로운 수레를 정비하여 텅 비어 고요한 경지에 노니니, 함이 없고 하릴없는 경지에 무찔러 가서, 가두어도 머물지 않고 불러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비로자나부처를 뛰어넘고 석가의 장엄 청정한 자유로운 큰 해탈의 경지를 초월하였습니다. 다만 잠시 세상의 인연에 끌리고 매였으나 그곳에 살면서도 역시 유연하였습니다. 뜻있는 사람이라면 아승지겁을 눈깜빡할 사이로 여기고 마땅히 여유롭게 본원을 완수할 따름입니다.

  시원한 날씨를 보내면서 종이와 붓이 있길래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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