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정상인(正上人)에게 주는 글


  참당하여 법문을 청하는 데는 반드시 영리한 근기가 기봉 위에서 바로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애초부터 막혀서 걸림이 없고, 또 한 깊은 믿음이 순숙하여 오랜 세월 속에서 효험을 얻어, 자기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완전히 쉬어버려 입술 위에 곰팡이가 피듯 하고, 옛 사당의 향로처럼 되어야 한다.

  아마도 이래야만 생사를 투철히 벗어나고 범부의 망정을 초월하여 피안(彼岸)을 뛰어넘을 것이다. 더욱이 인간의 잡다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려야 하니, 영리하게 분별하는 총명함으로는 세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허망만 늘릴 뿐이다.

  조사께서는 서쪽에서 오시어 바로 이 하나를 제창하여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 철저히 깨닫게 하려 하였다. 시작 없는 무명주지(無明住地)를 확실히 알아 남김없이 쓸어 없애서, 본지풍광을 분명히 증득하고 본래면목을 분명히 보게 하였다. 비록 모든 성인들이 나온다 해도 실낱만큼도 움직이지 못하니 이를 두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아 성불케 한다"고 한 것이다.

  어찌 그저 말이나 따르면서 방편과 경계를 짓고 주장을 일삼으면서, 지견 넓힘을 도모하며 다른 사람을 이겨서 명리를 취하려 해서야 되겠는가. 결코 이러한 도리는 아니다. 이미 지향하는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헤진 짚신을 밟고 모름지기 철두철미한 곳을 참구해야만 하리라.

  예컨대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묻기를, "모든 부처님은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라고 하자,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네"라고 대꾸했으니, 그것이야말로 철저히 깨닫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겠느냐! 낙엽 한 잎사귀만 보고서도 가을이 왔음을 아는 것이니, 다시 말 위에 말을 보태고 알음알이 위에서 알음알이를 짓는다면 어떻게 철저히 깨달을 수 있으랴.

  운문스님의 이 의도를 체득할 수 있다면 고금의 말을 일시에 뚫어버리리라. 다만 마음을 깨닫고자 애를 쓰며, 그렇게 해나간다면, 항아리 속의 자라가 도망쳐봤자 어디로 가랴. 그러므로 고덕은 말하기를, "영리한 놈은 듣자마자 문득 들어 보이고 뽑아들면 곧 행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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