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견도자(堅道者)에게 주는 글


  불조의 오묘한 도는 지름길이어서 오직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에 힘쓸 뿐이다. 이 마음의 근원은 본래 텅 비어서 고요하고 밝고 묘하여 애초부터 털끝만큼의 막힘도 없다. 그러나 망상의 자애 때문에 가리움이 없는 자리에서 스스로 물듦의 장애를 내, 근본을 위배하고 지말을 쫓으면서 생사윤회를 부질없이 받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큰 근기를 갖추었다면 다시는 밖에서 구하지 않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씻은 듯이 홀로 깨닫는다. 잘못된 깨침의 들뜬 가리움이 사라지고 나면 본래의 바른 견해가 뚜렷하고 오묘하리라. 이를 두고 마음이 그대로 부처[卽心卽佛]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한 번 얻고 나면 영원히 얻어 마치 통 밑이 빠진 듯 활연히 계합하여 한 법도 망정에 해당함이 없으리라.

  당체를 보아 순수하고 고요하여 수용(受用)함에 의심할 것이 없게 되면 하나를 알 때 모두를 알 것이다. 나아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는 말을 듣는다든지 혹은 같으니 다르니 하는 갖가지 뒤섞인 지견이 있으랴.

  그러므로 옛사람은 한 기틀, 한 경계, 한 마디 말, 한 번의 침묵에 성의를 다하여 진리에 들어가니 천만 가지 방법이 전혀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를 비유하면 백천 갈래 다르게 흘러들어온 물이 큰 바다로 모이는 것과도 같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거처가 편안해지고 작용이 투철해져서, 함이 없고 하릴없어 배울 것이 없는 도인이 되리라.

  하루 종일 다른 마음을 내지 않고 다른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 때 되면 먹고 마시고 옷 입으면서 모든 경계와 인연에서 텅 비어 응결하지 않음이 없다. 비록 천만 년이 지난다 해도 한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고 이 큰 성전에 처하니, 어찌 불가사의한 큰 해탈이 아니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나 끊임없이 안·밖·중간이나 유무나 더러움·깨끗함에 떨어지지 말고 당장에 쉬어버려 부처와 중생을 아무 차이 없이 똑같이 보아야만 비로소 안락한 경지를 완전히 이룬 것이다. 그대는 지금 이미 방향을 잡았으니 다만 그것을 오랫동안 길러 익혀야 한다. 백 번 단련한 순금처럼 끊임없이 단련해야 비로소 큰 법기를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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