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성수조(成修造)에게 주는 글


  나의 문하엔 설명할 선(禪)도 없으며, 전수할 도도 없다. 비록 5백 명의 납자가 모이긴 했으나 오로지 금강권 율극봉만을 들 뿐이니, 뛸 자는 힘껏 뛰고 삼킬 자는 뜻을 다해 삼키라. 아무 맛이 없다거나 몹시 험하다고 해서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만일 단박에 체득하기만 하면 마치 비단 옷 입고 고향으로 되돌아가니 천만 사람의 선망을 받듯 하리라.

  요컨대 그가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찾지 못하는 점이니, 이른바 사람마다 있는 본분사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여 알아차렸다고 하면 벌써 본분이 아니다.

  곧바로 모든 틀을 쉬어버려 모든 성인들과도 함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특함에 의지함이 있으니 어찌하랴! 모름지기 뿌리치고 저쪽 편으로 투철히 벗어나야만 하리라. 때문에 말하기를 "털끝만큼이라도 있으면 바로 티끌이며 뜻[意]을 일으켰다 하면 그대로 마군에게 휘둘리리라"고 하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일체가 파괴되는 것도 오직 그로 말미암는다. 기특하고 수승함이 항하사처럼 많은 공덕장에서 연유하고, 한량없이 오묘한 장엄과 세간을 초월한 희유한 일들이 모두 그것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간탐과 증오, 질투, 헤아림, 집착, 유위(有爲)와 유루(有漏), 물듦과 잡됨, 알음알이와 명상(名相) 및 지견(知見)과 망정이 모두 그것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이다.

  오직 그만이 일체의 사물을 움직이게 할 뿐 일체의 사물은 그를 움직이지 못한다. 비록 형체나 겉모습은 없으나 10허(十虛)를 둘러싸고 범부와 성인을 모두 그 속에서 기른다. 그러나 만약 이를 모양을 지어 취한다면 바로 견해의 가시에 떨어져 끝내 어찌해 볼 수가 없으리라.

  모든 부처님께서 열어 보여주시고 조사께서 곧바로 지적하신 것은 오로지 이 오묘한 마음이니, 곧 알아차려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있는 그대로의 순간에 마음에 힘을 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소요하여 취하거나 버림이 전혀 없어야만 그것이 진실한 밀인(密印)이다.

  이 밀인을 옆에 차고 마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든 것처럼 세간에 유희하면서 기쁨과 두려움을 품지 않으면, 어디나 나의 큰 해탈마당이다. 영겁토록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으니, 때문에 말하기를,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하였으니,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느냐.

  설봉(雪峰)스님은 "이것이 무엇이냐?" 하였고, 운문(雲門)스님은 "수미산이다" 하였으며, 동산(洞山守初)스님은 "삼 서 근(麻三斤)이다" 하였고, 조주스님은 "차나 마시게" 하였다. 암두(巖頭)스님은 "허허(噓)"하였으며, 투자(投子)스님은 "악( )" 하였고, 임제스님은 "할" 하였으며, 덕산스님은 몽둥이로 때렸다. 주장자를 높이 쳐들고 손가락을 들며, 북을 치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이 낱낱이 향상의 종풍을 나타내고 사물마다에서 본분의 소식을 보인 것이다.

  크게 통달한 자라면 한 번 엿보고 곧바로 꿰뚫으며, 한 번 들어주면 귀결점을 알아 종풍을 감당하여 일러 받으리라. 그러나 어리석은 놈은 모래를 세듯 하여 당장에 빗나가버린다. 그러므로 준수한 부류를 만나야만 종자 [種草〕를 삼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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