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추선인(樞禪人)에게 주는 글


  현묘함을 배우는 사람이 본성을 보고 이치를 깨달아 부처의 계단을 밟는 것은 일상의 다반사이다. 모름지기 불조의 정수리 위에 환골탈태시킬 만한 오묘한 이치가 있는 줄을 알아야만 격식과 종지를 초월하여 향상인의 행동거지를 행하며, 덕산스님과 임제스님이라도 작용을 베풀 곳이 없게 한다.

  평소에 무심한 경지만을 지킬 뿐이니, 애초부터 재주를 부리지 않아 흡사 무식한 촌사람 같다. 그렇기만 하면 바로 모든 하늘이 꽃을 받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 외도가 가만히 엿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넓고도 넓어서 털끝만큼의 모서리도 노출되지 않으며, 마치 억만의 보배더미 속에 있으면서 굳게 닫힌 듯하다.

  또한 얼굴에는 흙 바르고 머리에는 재를 쓰면서, 미천한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마음으로는 생각하지 않아, 세상 사람들이 헤아릴 수는 없으나 신의(神意)는 태연하였다. 이것이 어찌 도가 있어 함이 없고 조작 없는, 진정으로 하릴없는 사람이 아니랴!

  말을 이해하는 것은 혀에 달려 있지 않고 말을 잘하는 것은 언사에 있지 않으니, 옛사람이 혀끝으로 한 말은 의지할 곳이 못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니 옛사람이 한두 마디 한 것은 그 의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곧바로 본래의 일대사인연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고 조사의 말씀은 문을 두드리는 기왓조각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 그대로 쉬어서 행리처가 면밀하고 수용처가 관통하리라. 이렇게 오래하다 보면 흔들리거나 바뀌지 않아서 염법(拈法) 농법(弄法)과 거두고 놓아줌에 익숙하게 된다. 소소한 경계까지도 모두 다 관조하여 끊어버리며 어떠한 조짐이나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생사의 순간에 이르러서는 물소 뿔에 달그림자가 새겨지듯하여 서로가 섞이지 않는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은 채 홀연히 벗어나버리니, 이것이 바로 섣달그믐 열반당(涅槃堂) 속의 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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