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신(信)시자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는 요점은 뿌리를 깊이 박고 줄기를 견고하게 하는데 있으니, 하루 종일 자기의 근본을 비추어야 한다. 생각을 크게 일으키면서도 전혀 속으로 관여하지 않을 때에는, 원융하여 가이 없고 전체가 텅 비게 응어리져 일체의 하는 일에 일찍이 의심하는 간격이 없으니, 이를 '지금 있는 그대로의 본분사[現成本分事]'라고 말한다.

  한 털끝만큼이라도 견해를 일으키고 알아차려서 주체가 되겠다고 바라면 바로 음계(陰界) 속에 떨어진다. 그리하여 견문각지(見聞覺知)와 득실시비(得失是非)에 걸려 정신이 반은 취하고 반은 깨어난 상태에 휩싸여 분별하지 못한다.

  사실대로 따져 보면 시끄러운 속에서 가지고 다녀도 아무 일도 없는 것과 같아서, 철두철미하게 그 자리에서 원만 성취하여 아무 형상이 없으면,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작위에도 걸리지 않는다.

  말과 말 없음, 일어남과 자빠짐이 결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니, 털끝만큼이라도 막힘을 느낀다면 이는 모조리 망상이다. 곧바로 큰 허공과 같이,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린 것 같이, 솟아오른 해가 하늘에 빛나는 것 같이 아무 것도 없이 깨끗해야 한다.

  움직임과 고요함, 가고 옴이 하나하나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니, 자유 자재하도록 놓아버려 법에 매일 것도 없고 법을 벗어나려 할 것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덩어리를 이루었는데, 어느 곳에 불법을 떠난 밖에 따로 세간법이 있으며, 세간법을 떠난 밖에 별도로 불법이 있으랴! 그러므로 조사께서는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켰던 것이다.

  금강반야(金剛般若)는 사람이 모양[相] 떠난 것을 귀하게 여기니, 비유하면 장사가 팔을 굽히고 펼 때 다른 힘을 빌리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요점을 살펴서 긴 시간을 스스로 물러나 참구해야 좋으리라.

  그리하여 진실로 깨달은 경지에 도달함이 있게 되면 바로 이것이 생각 생각에 가이없고 헤아릴 수 없는 대선지식을 두루 참례한 것이니, 부디 진실하게 믿고 힘써 공부해야만 가장 훌륭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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