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멸도滅道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육조 스님이 작별을 여러 번 하지요. 정말로 남은 제자들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자꾸 그러시는 거예요.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세상의 인정도 ‘있다-없다’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가는 곳을 아는데, 울지 말아야지요. 가는 곳을 알게 되면, 그건 어떻게 보면 축제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우리 다비문화를 보면 고칠 게 많지요. 아주 간소하게 돈도 받지 말고 비단도 받지 말고 상복도 입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제가 존경하는 초삼 스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분 다비식을 참 간소하게 했습니다. 꽃 하나도 장식하지 않았어요. 운구 틀을 짜서 거기에 관 딱 얹어서 평소 당신이 수하던 가사 하나 덮고 해 보니까 정말로 보기 좋더라고요.

  송광사 방장 스님도 나오고, 주지 스님도 나오고, 수좌들도 아주 구참들은 거의 다 와서 참여하고 그래서 젊은 송광사 선방 스님들이 와서 상여도 매고 이랬습니다. 그분은 다른 곳에 절대 알리지 말고 화장터에 가서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했는데, 혜국 스님과 제가 설득했어요. 그러면 절대 많이 알리지 않고 선원장 몇 사람만 알리겠습니다. 절대 부고도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드렸는데, 그렇게 하니 참 좋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우리는 너무 화려하게 하는 것 같아요. 육조 스님도 아주 간소하게 하라고 하시죠. 내가 세상에 있을 때와 같이 해라. 내가 죽었다고 해서 어디로 가고 그런 것도 아니니까.

  내가 살아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여기에 나온 대로 양변을 여읜 일상에서 평상심 그대로, 달리 하지 말고 장례를 치르라는 얘기입니다.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내가 없더라도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건 이익이 되지만 내가 세상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르친 그 법을 어기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아무 이익이 없다.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대사께서 돌아가신 날, 절 안은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여 여러 날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하며 숲의 나무가 희게 변하고 해와 달은 광채가 없고 바람과 구름이 빛을 잃었다.
  팔월 삼일에 돌아가시고 동짓달에 이르러 큰스님의 영구를 모시어 조계산에 장사지내니, 용감龍龕 속에서 흰 빛이 나타나 곧장 하늘 위로 솟구치다가 이틀 만에 비로소 흩어졌으며, 소주 자사 위거는 비碑를 세우고 지금까지 공양하니라.

  여기에 보면 중국의 화장문화에 독 속에 넣는 그런 게 있어요. 중국에 가 보면 그 독이 더러 절에 있더라고요. 물으니까 옛 스님들을 독 속에 넣어서 매장한 것이라고 하던데, 이 용감龍龕이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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