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전게傳偈(1) 게송을 전함


  대중이 모두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아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않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이 법이 뭡니까? 양변을 여읜 그 자리죠. 양변을 여읜 그 자리를 의지해서 수행했다. 그러면 ‘지혜로써 관조하라’와 같은 말입니다.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육조 스님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육조 스님께서 고별하면서 이 법문을 하니까, 오래 계시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상좌 법해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습니다.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후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게 부촉하시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이미 부촉해 마쳤으니 너희는 더 묻지 말라.
  가까이 열 제자가 있었지요? 또 있었어요. 여기 가까이 있는 열 분의 제자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남악 회양南岳懷讓 스님, 청원 행사靑源行思 스님 같은 분이 육조 스님 법을 계속 계승해서 발전시킨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반면에 열 분 제자들은 몇 대 못 가서 사라졌어요. 그래서 정작 법이 출중한 분들은 돈황본 《육조단경》에 나오지 않고 이런 분만 나왔다는 건 굉장히 아쉽습니다.
  왜 돈황본 《육조단경》에 청원 행사나 남악 회양 선사는 나오지 않느냐? 청원이나 남악 선사는 이미 육조 스님께 법을 받아 가지고 위쪽으로 올라가 회상을 차려 법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 입적할 무렵, 이 두 선사는 이미 멀리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열 명의 제자만 불렀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실리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법은 이미 부촉해 마쳤으니”라고 하신 뜻은 남악 선사나 청원 선사한테 부촉해 마쳤고, 또 십대 제자한테도 법을 부촉했으니, 더 물을 것이 있느냐? 너도 다 알지 않느냐? 그런 겁니다.

  내가 떠난 후 20여 년에 삿된 법〔邪法〕이 요란해서 나의 종지宗旨를 혼란케 할 것이다.
  이건 뭘 얘기했느냐 하면, 북쪽의 신수 스님이 요즘 말로 하면 정치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당시 수도인 낙양이나 장안에서 활발히 포교를 하신 반면에 육조 스님은 저 남쪽 광주라는 한 귀퉁이에서 전법하셨으니, 신수 스님께서 훨씬 크게 활약했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얘기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육조 스님께서 신수 스님의 법을 삿된 법〔邪法〕이라 표현하셨지만 사실은 삿된 법이 아니거든요. 다만 손가락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달을 보지 못한 것뿐인데, 육조 스님은 손가락을 법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사법邪法이라 표현한 겁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도 오로지 달 그 자리만 진리지, 손가락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신명을 아끼지 않고 결단코 불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울 것이니, 이것이 나의 정법이다.
  여기서 불교의 옳고 그름은 바로 달과 손가락입니다. 이 대목 때문에 중국의 호적胡適이라는 학자가 돈황본 《육조단경》을 신회神會 계통의 작품으로 보았어요. 뒤에 신회 스님이 낙양 부근의 활대滑臺라는 곳에서 무차대회를 열어 토론을 해서 법을 세운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신회계의 제자들이 여기에 그런 이야기를 삽입해서 육조 스님이 예언하신 것처럼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사를 전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을 외워주겠다.
만약 제일조 달마 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워주리라.”
  누구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는지를 물으니, 법은 이미 부촉해 마쳤으니까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가사를 전해주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그 증거로 역대 조사 스님들의 전법게를 보면 이해할 것이다. 달마 스님의 뜻을 보더라도 가사를 전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런 말입니다.

게송에 이르기를,
  “제일조 달마 화상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결과가 자연히 이루리라.
  다섯 잎은 이조, 삼조, 사조, 오조, 육조 다섯 분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육조단경》이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있지요? 달마 스님이 왔을 당시 중국은 당나라가 아니라 남북조 시대로 남쪽에 양나라 무제를 만난 기록이 있지요. 여기에서 “당나라에 왔다”라고 했으니,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의심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제일조 스님이 이 게송을 남기기는 했겠지만 이 게송을 삽입하는 분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분이 당나라 시대의 사람이니까 그렇게 썼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이 게송은 본래 큰 뜻은 없는 것 같아요. 달마 스님이 당나라에 온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서 미혹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이다. 그리고 한 꽃이 피니까 다섯 꽃이 피어 가지고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졌다. 이걸 보더라도 가사를 전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는 얘기인데, 법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옷을 증거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그런 뜻 같습니다.

 제이조 혜가 스님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여기에서 말하는 땅은 자성자리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땅이 있기 때문에 작용도 나오고, 물이 있기 때문에 파도도 생기는 거지요. 물이 없으면 파도가 생기지 않겠지요. 또 파도가 있기 때문에 물이 있습니다. 이것도 별 내용은 아닌데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한 것은 자성자리를 일상생활하면서 보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자성자리를 강조하는 의미에서도 이것은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껍데기 형상만 보고 이것을 있다고 생각하지, 그 자성자리를 보면서 형상을 같이 보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자성자리가 있기 때문에 형상도 일어났고 또 형상이 있기 때문에 자성자리도 있는 겁니다. 이 둘을 분명히 볼 때 해탈합니다. 자성자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해탈을 못 합니다. 우리는 이 게송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제삼조 승찬 스님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無生性〕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성철 스님은 무생성無生性을 ‘나는 성품이 없다’라고 해석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보고 싶어요. 꽃과 종자는 땅을 인연해서 있습니다. 또 그 물로 인해서 파도가 일어납니다. 거기까지는 해석이 잘 되지 않습니까?
  ‘비록 땅을 인연하여 꽃과 종자가 나오지만, 그 꽃과 종자가 남이 없는 성품이라서’ 파도에 물이 있는데 그 물이 어디에서 없던 것이 생긴 건 아니거든요. 불생불멸不生不滅, 《반야심경》에서 나오듯이 그렇게 해석하면 좋겠어요. 그런데 성철 스님은 ‘나는 성품이 없다’라고 했으니, 거의 비슷한 해석입니다. 결국 파도는 물에서 나고 또 물은 파도를 만들고, 또 파도는 어디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본래 있는 것, 그 있는 것도 어디에서 생겨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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