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서방西方(2)

 
돈법을 깨달으면 서방을 찰나간에 본다.

  다만 곧은 마음[直心]을 행하면
곧은 마음도 양변을 여읜 자리를 말하지요.

  도달하는 것이 손가락 튕기는 것과 같다.
‘있다-없다’ 또 ‘나다-너다’를 여읜 자리에서 바로 행해버리면 서방에 가는 것이 손가락을 탁 튕기는 것처럼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사군아, 단지 십선十善을 행하면 어찌 다시 왕생하기를 바랄 것이며, 십악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어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겠는가.
  십악의 원인은 ‘내가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니, 그런 사람은 부처님이 와서 영접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남이 없는 돈법[無生頓法]을 깨달으면 서방을 찰나에 볼 것이고, 돈교의 큰 가르침을 깨치지 못하면 염불하여도 왕생할 길이 머니 어찌 도달하겠는가.”
  돈교頓敎의 큰 가르침〔大乘〕은 결국 무아無我를 깨닫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능이 사군을 위하여 서방정토를 찰나 사이에 옮겨 눈앞에 바로 보게 할 것이니, 사군은 보기를 원하는가?”

  위사군이 예배하고 말하였다.
“만약 여기서 볼 수 있다면 어찌 가서 나려고 하겠습니까? 원컨대 스님께서 자비로 서방을 보여주시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문득 서방을 봐라·의심이 없으면 대중은 다 흩어져라.”

  대중들이 깜짝 놀라 무슨 얘기인지 알지 못했다.

  “대중아, 정신 차리고 들으라. 세상 사람이 스스로 색신은 성城이고,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은 곧 성문이니, 밖으로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는 뜻[意]의 문이 있다. 마음은 곧 땅이요 성품은 곧 왕이니, 성품이 있으면 왕이 있고 성품이 가면 왕도 없다. 성품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부처는 자기 성품이 지은 것이니,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 자기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고 자성을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다.
  자비는 곧 관음이고, 희사喜捨는 세지勢至라 하며, 스스로 청정함이 바로 석가이고, 평등하고 곧음은 미륵이다. 인아人我상은 수미산이고, 삿된 마음은 큰 바다이며 번뇌는 파도이고, 독한 마음은 악한 용龍이며, 진로는 고기와 자라요. 허망함은 곧 귀신이며, 삼독은 곧 지옥이고, 어리석음은 곧 짐승이며, 십선十善은 천당이다.
  인아人我상이 없으면 수미산이 저절로 무너지고, 삿된 마음을 없애면 바닷물이 마르며, 번뇌가 없으면 파도가 사라지고, 독한 마음[毒害]을 없애면 물고기와 용龍이 없어진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혜능이 사군을 위하여 서방정토를 찰나 사이에 옮겨 눈앞에 바로 보게 할 것이니, 사군은 보기를 원하는가?”
  육조 스님이 굉장한 신통을 부리려 하지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찰나 사이에 눈앞에 옮겨 놓을 테니 보기를 원하는가?

  위사군이 예배하고 말하였다.
“만약 여기서 볼 수 있다면 어찌 가서 나려고 하겠습니까? 원컨대 스님께서 자비로 서방을 보여주시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문득 서방을 봐라.”
서방 정토를 눈앞에 갖다 놓을 테니 보겠느냐 하고는 ‘문득 서방정토를 봐라.’

  “의심이 없으면 대중은 다 흩어져라.”
서방 세계를 봤으니, 더 공부하고 말고 할 것 없으니까 흩어져라 한 것이죠. 여기서 서방세계를 이 자리에 옮겨 놓는다고 하니까, 굉장한 세계를 옮겨 놓는 걸로 생각했겠지요. 옮겨 놓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현상과 본질을 함께 보라는 거예요. 보고 의심이 없으면, 서방 정토를 보아 견성한 것이니, 대중은 흩어져라 하는 것입니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 무슨 얘기인지 알지 못했다.
조사 스님들이 이런 법문을 많이 합니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 보지요. 마조 스님의 제자인 유관唯寬 스님에게 어느 스님이 찾아와 이렇게 문답을 합니다.

“도道가 어디에 있습니까?”
“네 눈앞에 있지 않느냐”
“그럼 나는 왜 못 봅니까?”
“너는 ‘나’ 라는 생각에 집착해 있기 때문에 못 본다.”
  그래도 그 스님이 끈질기게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있어서 못 보는데 스님은 봅니까?”
“‘나다-너다’ 나눠 놓으면 더 못 보지.”
“‘나다-너다’가 없으면 어떻게 봅니까?”
“너도 나도 없는데 뭘 보려고 하느냐?”

  유관 스님은 일관되게 무아無我로 대답을 하시고 그 스님은 유아有我에서 질문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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