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멸죄滅罪 죄를 멸한다.(1)


  우리는 흔히 참회 기도를 한다, 업장 소멸 기도를 한다 합니다. 그런데 참회나 업장 소멸하는 방법 중에 제일 빠르고 좋은 것은 ‘내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 라는 게 본래 없는데 무슨 죄가 있어요? 불법에 죄는 없어요. 죄는 착각이고 허구예요. 우리들의 본래 그 자리에 죄는 없습니다. 이것은 착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업장業障도 본래 없어요. 우리 그 자리에는 업장도 없고 죄도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거기에 갇혀 낑낑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죄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내가 있다’는 착각에 빠져 그 착각에서 저질러진 게 죄이지, 내가 없는 줄 알아 그 착각을 깨버리면 거기에서 저질러진 죄도 같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것이 죄를 멸하는 방법 중에 제일 빠르고, 참회하는 방법 중에 제일 빠르고, 업장 녹이는 방법 중에 제일 빠릅니다.
  그런데 죄가 본래 없다고 하니까, ‘내가 없다’는 그 자리에 못 간 사람이 “죄 지어도 괜찮겠네!” 이렇게 착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절대 아니죠. ‘내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그 착각의 세계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착각을 깬 사람은 지옥에 가 있어도 괴롭지 않습니다. 데바닷다Devadatta 가 지옥에 가 있는데 ‘언제 나올래?’ 하니까 ‘부처님이 여기에 와서 앉으면 내가 나가겠다’ 했어요. 지옥에 가 있어도 괴롭지 않다는 거예요. 데바닷다는 이걸 깨달은 거예요.
  그렇듯이 죄는 본래 없습니다. 여기에 그 말이 나옵니다.

선지식아, 후대後代에 나의 법을 얻은 사람은 항상 나의 법신이 너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볼 것이다.
선지식아, 이 돈교頓敎의 법문을 가지고 함께 보고 함께 행하여 원력願力을 세워 부처님 받들듯이 함으로써, 몸을 마칠 때까지 받아 지니어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간다.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 옛부터 지금까지 말없이 저 법을 부촉해서 대서원을 세워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한 것이다.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력이 없으면 가는 곳마다 망령되이 선전하여 저 앞 사람을 손상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다.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긴다면 백겁만겁 천생에 부처 종자를 끊을 것이다.

  선지식아, 후대後代에 나의 법을 얻은 사람은 항상 나의 법신이 너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볼 것이다.
  지금 우리도 후대인데 육조 스님 법신만 우리 좌우에 있겠어요? 우리 법신도 좌우에 있습니다. 우리 법신이나 육조 스님 법신이나 둘이 아니지요.

  선지식아, 이 돈교頓敎의 법문을 함께 보고 함께 행하여 원력願力을 세워 부처님 받들듯이 함으로써, 몸을 마칠 때까지 받아 지니어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聖人의 지위에 들어간다.
  돈교의 법문이 뭔가요? 실체가 없다, 무아다 하는 이 법을 가지고 육조 스님과 같이 보고 같이 행동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력을 세우는 겁니다. 이 원력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생활화하고 사회화하는 게 원력입니다. 생활화하면 상구보리이고 사회화하는 건 하화중생입니다.
  이와 같이 원력을 세워 돈교법, ‘내가 없다, 실체가 없다, 연기현상이다, 공이다’ 하는 정견을 받아가지되, 원력을 세워 부처님을 받들듯이 하라. 그렇게 해서 몸이 다하도록 부처님 받들듯이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으면 성인의 지위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 옛부터 지금까지 말없이 저 법을 부촉해서 대서원을 세워 보리에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한 것이다.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력이 없으면
  견해가 같지 않다는 말은 정견이 안 선 사람, ‘내가 있다’에 집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자신이 부처님처럼 되어 보겠다는 의지와 원력이 없으면

  가는 곳마다 망령되이 선전하여 저 앞 사람을 손상하지 말라.
저 앞 사람은 선지식이나 부처님을 말하는데 그분들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 그러니까 정견도 안 서고, ‘있다-없다’에 집착한 사람, 또 공부해 보겠다는 의지와 원력도 없는 사람, 괜히 정견도 안 선 사람이 어디에서 불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 앞의 도인이나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마침내 이익이 없다.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긴다면 백겁만겁 천생에 부처의 종자를 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정견이 안 서 있고, 또 불교를 몰라요. 그런 사람이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만겁 모든 생애에 부처의 씨앗을 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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