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견성見性(1)

  모든 경서 및 문자와 소승, 대승과 십이부 경전이 다 사람으로 인하여 있게 되었으니, 지혜의 성품으로 인하여 나와 능히 세운 것이다.
  만약 내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모든 경서도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有)’을 설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 가운데에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다. 어리석으면 소인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대인이 된다.
  미혹한 사람은 지혜인에게 묻고, 지혜인은 또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아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달아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인과 더불어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알라, 깨닫지 못하면 곧 부처가 중생이고, 한 생각(一念)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가 된다. 6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다. 그런데 어찌 스스로의 마음을 쫓아 진여본성眞如本性을 단박에 깨닫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원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識心見性) 스스로 불도佛道를 이룬다. 즉시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에 돌아간다.

  모든 경서 및 문자와 소승, 대승과 십이부 경전이 다 사람으로 인하여 있게 되었으니,
  모든 경서 문자와 소승, 대승 모든 경전 또 십이부의 경전, 이런 것들이 사람으로 인하여 있다. 그러니까 손가락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미혹한 사람을 말합니다. 미혹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모든 문자, 경전을 손가락으로 해서 달을 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금봉 스님이 경전을 뜯어 벽지로 바른 일화

  그래서 달만 보면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근세에 해인사 조실을 하시다 입적하신 금봉錦鳳 스님은 경전을 뜯어 벽에 바르는 도배지로 썼답니다. 그래서 강사 스님들이 ‘금봉 스님은 대단히 무식한 사람이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는 금봉 스님이 굉장히 무식한 노인이니까 경전을 뜯어 도배를 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언젠가 수덕사에서 살 때 <보장록寶藏錄>이라는 책이 여러 권 쌓아 있어 보니까, 금봉 스님이 지은 책이에요. ‘금봉 스님이 무식하다고 하던데 책을 지었네. ... 옛날 무식하고, 요즘 무식은 좀 다르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무식해서 벽 바른 게 아니라 “그까지 거 손가락, 달 봤으면 됐지!” 그런 생각에서 경전을 뜯어 벽지로 쓴 것입니다.

  중국의 덕산德山 스님 같은 분도 <금강경 소초>를 보배로 여기고 짊어지고 다니다, 용담 스님을 만나 깨치고 나니까, ‘경전이 아무 소용이 없다. 달은 따로 있구나!’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이 달을 보라고 얘기했구나!’ 그걸 알고 나니까 경전이라는 것이 알음알이로 보니까 달 보는데 장애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강경 소초>를 법당 앞에 쌓아 놓고 불 지르면서 한 얘기가 있지요. 여기에도 그 이야기입니다. 사람으로 인해서 있다. 손가락이라는 것입니다.

  지혜의 성품으로 인하여 나와 능히 세운 것이다.
지혜의 성품은 우리 자성 자리를 말합니다. 이게 달입니다. 이 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운 것이 경서 문자와 대, 소승 십이부 경전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내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나’라는 상이 없으면 ‘상근기-하근기다’, ‘지혜인이다-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는 차별 대립이 없습니다. 다 부처이고, 다 보편되어 있으니,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모든 경서도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有)’을 설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으로 인해서 부처님이 일체 만법을 일으켰고, 부처님의 모든 경서도 사람으로 인해서 설한 것이라 함은 이것이 손가락이라는 뜻입니다.
  이 손가락은 달을 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니, 이 손가락은 사실 허구입니다. 그래서 덕산 스님도 불을 질렀고, 금봉 스님도 경전을 뜯어 벽에 발랐다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에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다. 어리석으면 소인이 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대인이 된다.
말 그대로입니다.

  미혹한 사람은 지혜인에게 묻고 지혜인은 또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아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달아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인과 더불어 차별이 없다.
  우리가 착각을 못 깼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지혜로운 사람 이렇게 구별하지만, 깨치고 보면 똑같아요. 부처님도 우리와 다름이 없어요. 지금 우리가 듣고 보고 하는 이것이 부처님이 그 당시 듣고 보고 했던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다만, 우리는 ‘내가 있다’는 그 착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없다’ 하는 것을 알면 부처님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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