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근기根機(4)


바른 공부의 제일 요건, 밖으로 찾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근기가 약한 사람이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않고,
  밖으로 닦는 것은 헛 닦고 있는 것이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믿지 않고

  오직 자기 마음에서 스스로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정견을 일으키면 번뇌ㆍ진로塵勞의 중생이 모두 다 깨치게 된다.
  이말이에요. 우리가 공부하는데 제일 요건이 뭐냐? 밖으로 뭘 찾으면 안 된다. 밖으로 아무리 찾더라도 그것은 행복해 질 수 없다. 그건 착각에서 하는 것이지 본래 양변을 여읜 그 자리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밖으로 닦는 이걸 제일 경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 마음에서 찾는데 그 자기 마음에서도 내가 연기 현상이고 실체가 없고 공이라고 하는 것 그걸 아는 것이 본성을 아는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그렇게 우리가 생활해 갈 때 그것이 정견입니다.

  큰 바다가 여러 가지 흐르는 물을 받아들여 작은 물과 큰 물이 하나 되어 한 몸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면 우리 자성 자리를 보는 것은 적은 물, 큰 물 다 합해가지고 한 몸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데, 그것을 우리가 법성이라고 해도 되고 자성이라고 해도 되고 그 자리에서 보게 되면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성품을 보면(見性) 밖에도 안에도 머물지 않으며, 또 오고 가는데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걸림이 없나니,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다.
  밖으로 찾는 것, 이것은 아무리 찾아도 허망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증명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외적 조건은 부처님처럼 많이 가진 분도 없고 완벽하게 가진 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걸 수용 안 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부를 했고 또 그 길을 발견한 후에도 한 평생 돌아가지 않고 스님으로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이것은 밖으로 있는 조건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무소유의 바른 의미

  그러면 그걸 다 내버려야 됩니까? 그건 절대 아니에요. 우리가 안으로 행복의 조건이 뭡니까? ‘나-너’가 없는 그 자리 아닙니까? 그 자리를 찾게 되면 밖에 있는 조건도 우리가 잘 쓸 수 있게 됩니다. 그걸 내버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안에 있는 조건을 못 찾고 밖의 조건만 찾으면 절름발이가 된다는 거예요. 그걸로 인해서 나도 상처를 받을 수가 있고, 남도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또 그것이 영원히 행복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에 있는 조건, 자성 자리, ‘나-너’가 없는 자리, 그 자리를 갖추면 이 세상을 다 갖고 있어도 그 사람은 무소유에요. 이 세상을 다 갖고 무소유無所有를 하면서도 그것을 남을 위해서도 잘 쓰고 자기를 위해서도 잘 쓰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티끌도 하나 못 가진 사람이 그 조그마한 티끌에 집착해 있으면 그 사람은 무소유가 아닙니다. 그건 집착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티끌 하나 갖고도 자기를 속상하게 만들고 또 남도 상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밖에 있는 조건 자체는 사실 나쁜 건 아닙니다. 밖에 있는 조건을 가지고 사용할 능력이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것을 정말로 나를 위해서 쓰고 남을 위해서 쓰고 나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그런 능력을 만들려면 안에 있는 조건을 봐야 하는 겁니다.
  안에 있는 조건이 뭡니까? 자성 자리 ‘나다-너다’ 초월한 그 자리, 그 자리를 봐야 그것을 유효적절하게 써서 정말로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인격도 갖추고 남한테 존경도 받는 도인으로서 살 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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