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성품이 공하다(性空)(2)
 

  마하摩訶란 무엇인가?
  마하는 큰 것(大)이다. 마음의 크기가 광대해서 마치 허공과 같으니

  마하는 뭐냐? 큰 것(大)이다. 그럼, 이 대大는 ‘대-소’ 하는 그런 대大가 절대 아닙니다. 크다-적다를 초월한 큰 것입니다. 그게 마하예요.
  그러면 마하나 연기나 중도나 모두 실체가 없다, 무아다 하는 말과 전부 같은 소리예요. 핵심은 여기에 있어요. 이거 하나 이해하고 실천하고 체험하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실제로 이것만 이해하고 실천하면 일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이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갈등, 대립, 괴로움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위대한 법이 있고, 그 법을 발견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에요.
  그런데 발견한 부처님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본래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라는 겁니다.
  이게 엄청난 발견입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본래 만들어져 있는 그 자리로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본래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게 수행이고, 선입니다. 어려운 게 결코 아니에요.
  그래서 여기도 “마하는 대이니 마음의 크기가 광대해서 허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허공에 비교를 많이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아파트 평수 넓히는 것이 부의 상징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지요? 그런데 “아파트 평수만 넓히려 하지 말고 마음의 평수를 넓혀라. 그게 진짜 부자다. 그리고 마음의 평수 넓히면 아파트 평수도 같이 넓어진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이 마음은 크기가 허공과 같습니다. 허공과 같으니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그러면 허공과 같다고 하니까 허망하고 아무것도 없고 공허하고 이렇게 생각해서 일체 빈 마음으로 가만히 있으면 빈 마음에 떨어집니다. 이것이 무기공입니다.
  이건 아닙니다. 허공이라는 것도 없는 빈 마음이 진짜 허공이 되어 한순간에 햇빛이 쨍 비쳐요. 우리 마음이 아무것도 없고 허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허망하다는 구름에 가려져 있어 햇빛이 안 나옵니다. 그러면 무기공에 떨어집니다. 정말 우리 마음이 진공같이 되면 햇빛이 쨍하고 납니다. 그때는 햇빛을 100% 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그 중간 과정에는 삼독심三毒心이 조금씩 엷어져 갑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는 먹구름이 짙은 날 낮에도 자동차 전조등을 켜고 다니잖아요? 먹구름 잔뜩 꼈을 때와 구름이 살짝 꼈을 때와는 그 밝음이 다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서장》에 “설익은 것이 익어 가면 익은 것이 설어진다”하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번뇌망상의 먹구름이 엷게 되어 가면 깜깜하다가 점점 밝아져요. 그래서 팔식경계八識境界에 들어가면 달을 볼 때 발을 쳐놓고 보는 것처럼 그렇게 보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굉장한 겁니다. 깨달음에 가까운 거예요.
  그래서 중간과정을 무시하면 안돼요. 공부하는 것도 양 극단을 없애기 위해서 하는데 양극단에 빠져 ‘모 아니면 도’ 라는 결과 제일주의로 하는 공부는 잘못된 것입니다.
  《서장》에 이런 말도 있어요. 도둑놈이 숲 속에 있는데 그놈이 숲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알아요. 다만 못 잡았다는 것뿐이지. 정견正見을 이렇게 비유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도둑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늘 도둑질 당하고 살았는데 그놈이 어디 있는 줄 알고 가서 붙잡으면 되니까 그 정도도 굉장한 거 아닙니까?

  허공은 능히 해, 달, 별(日月星辰)과 대지, 산, 강과 모든 풀, 나무, 그리고 악인과 선인, 악법과 선법,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용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성품이 공空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우리 본래 그 자리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품이 만법을 포함한 것이 이 마하(大)입니다.
  허공은 이 세상을 다 포용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비유하자면 부처님 같은 분은 ‘어른에 어른이 되는 사람이다.’ 어른이 같은 어른이 되면 싸우죠. 그런데 어른의 어른이 되면 그 어른이 나한테 불이익을 주고 비방하더라도 어른의 어른이니까 그냥 봐주는 거지요. 그 정도는 됩니다. 그래서 도인도 어른의 어른이 된다고 말합니다.
  성품 속에 만법萬法이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 엄청나게 큽니다. 또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요. 계속 큰 것은 아닙니다. 작기도 해야 인간적인 면이 나오지요.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합니다. 진짜 도인은 그렇게 인간적이에요. 클 때는 크고 작을 때는 작고 그런 것이 자유자재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나는 도인을 ‘사람다운 사람’, ‘인간다운 인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진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성 교육도 불교교육만큼 더 좋은 교육이 없습니다.

  이 성품이 만법을 포함하여 큰 것(大)이니 만법이 모두 다 자성이다.
이 자성에서 나온 거니까 둘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악함과 착함,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 않으며 거기에 물들지도 않아
  이게 바로 그겁니다. 어떤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한테 아무리 잘못한 사람이라도 절대 내치지 않아요. 부처님은 다 포용하고 또 포용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한테 물들지 않아요. 동사섭同事攝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같은 분은 정말로 위대한 분이에요. 그런데 부처님만 위대한 게 아니거든요. 우리도 성품자리만 보면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 본래 성품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 자리로 돌아가면 바로 부처님, 도인, 대장부가 되는 겁니다.

  마치 허공과 같아 이를 이름하여 크다(大) 하니 이것이 대승행(摩訶行)이다.
  마하가 대승입니다. 그런데 소승은 자기 혼자만 가지 남을 안고 가지 않아요.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행한다. 또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크다(大) 하나,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마음을 비웠다는 것도 비워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 무조건 생각 안 하는 것을 이름하여 큰 것(大)이라 하면, 비운 그 자리에 머물러 단견斷見에 떨어진 것입니다.

  마음의 크기가 광대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말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다.
  말로만 하고 마음으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지도 않으면 그건 내 제자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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