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법을 받음 受法
  
오조 스님이 밤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하자, 혜능이 한번 듣고 말끝言下에 바로 깨달았다. 그 밤에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했다.

   곧 오조 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를 전하며 말하기를, “너는 육대 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 신표를 삼는다. 대대로 받들어 서로 전함에 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되 마땅히 스스로 깨닫게 하라.”

   오조 스님이 또 말하기를, “혜능아, 예로부터 법을 전할 때에는 목숨이 실낱과 같으니, 이 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다. 너는 속히 떠나거라.”

   여기에서 혜능 행자가 출가 전에 『금강경』 구절을 듣고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지견이고, 여기에서 깨달은 것은 확철대오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기록에 보면, 『금강경』의 “응당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應無所住 以生其心.”하는 구절을 듣고 깨쳤다고도 하는데, 돈황본에서는 그냥 『금강경』만 듣고 깨달은 것으로 나옵니다.

   또 밤 삼경에 혜능 행자를 방으로 불러 3일 밤낮을 문답하였고, 혜능 행자가 하나도 막힘없이 대답을 하니까, 그 때 인가하고 법을 전했다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3일이 아니고 하룻밤 이야기입니다.

   또 오조 스님은 혜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이 또 말하기를, “혜능아, 예로부터 법을 전할 때에는 목숨이 실낱과 같으니, 이 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다. 너는 속히 떠나거라”

   이것을 보면, 그 당시에도 법으로 다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해관계로 싸우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법으로 싸우는 거나 이해로 싸우는 것이나 같습니다. 이 당시에도 큰스님의 권위가 그렇게 강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오조 스님은 육조 혜능 행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 후대 본에는 “밤에 몰래 가사로 병풍까지 쳐놓고 금강경을 설했다.”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목숨이 실낱과 같으니 …. ” 하고 말합니다.

   인도에서도 사자師子 존자가 피살당하는 일이 있었지요. 달마 스님도 중국에 와서 독살당했지요.
   그리고 육조 스님도 기록에 보면, 자객이 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자객에게 “내가 너한테 목숨 빚진 건 없고 돈 몇 푼 빚진 일이 있다” 하고 돈을 준 일이 있습니다.

   법 때문에 싸우든, 이해관계 때문에 싸우든 그 싸우는 마음은 유위법이거든요. 무위법에 머무는 도인이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법 때문에 싸운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중생심이에요.

   우리도 대중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게 시비가 되어 대중공사를 하는데 저는 그 때마다 그럽니다. 우리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이 잘못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오히려 정상입니다. 우리가 서로 자라온 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도 다른데 다른 견해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다는 거지요.

   문제는 이렇게 이견이 있을 때 그걸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세속처럼 힘으로 할 것이냐, 지금까지 이야기한 양변을 여읜 자리에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중공사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세속처럼 수의 힘으로 결정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도반끼리 또는 한 산중에서나 종단 차원에서 문제가 생겨 분란이 일어날 때 양변을 여읜 중도 자리에서 그것을 해결하면, 서로 간에 감정의 앙금이나 불필요한 승부심이 사라져 나를 비워가는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기분 좋게 해결하면서 수행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승가공동체 정신입니다. 우리 승가공동체는 2,500년이 넘게 내려왔잖아요. 이 승가공동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입니다. 그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중도中道로서 모든 것을 사고하고 행동하고 풀어가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에 와서 이런 위대한 전통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 불행한 거지요. 부처님께서 “사자는 다른 짐승에게 물려서 죽는 게 아니고, 자기 몸에서 충이 생겨 죽는다.”고 하신 말씀이 실감날 시절이 오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보면, 오조 스님 당시에도 스님들 간에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법에 관한 싸움이라 해서 법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싸우는 마음은 법으로 싸우든, 이해관계로 싸우든, 싸우는 그 자체는 불교도 아니고 불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당시는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것이 그래도 도처에 도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닮고 싶은 모델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혜능이 가사와 법을 받고 밤 삼경에 떠나려 하니 오조 스님이 몸소 혜능을 구강역까지 전송했는데, 바로 그 때 오조 스님이 지시하기를, “너는 가서 노력하여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설하지 말라.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다. 뒤에 널리 교화해서 미혹한 사람을 잘 이끌어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달음과 다름이 없으리라.”

   혜능은 곧 하직 인사를 마치고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혜능 행자는 남으로 내려와 3년을 은둔생활했다는 말이 있고, 15년을 했다는 말도 있고, 또 5년을 했다는 말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돈황본 단경은 “3년 동안 법을 펴지 말아라”라고 나오죠. 어느 기록에 보면 오조 홍인 스님이 혜능 행자에게 법을 전하고 3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죽을 때까지는 법을 펴지 말아라. 그런 뜻에서 말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뒤에 널리 교화해서 미혹한 사람을 잘 이끌어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달음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러니까 3년 후에 널리 교화할 때, 미혹한 사람을 잘 지도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열려 깨닫게 되면, 네가 깨달은 것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초월해 있고, 우리 모두는 본래부터 부처님이기 때문입니다.
  
두 달 반 만에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뒤에 수백 인이 따라와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중간에 다 돌아가고, 오직 한 스님이 있었으니 성은 진씨, 이름은 혜명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해서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와 범행하고자 하였다.
   곧 혜능이 가사를 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이렇게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가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혜명에게 법을 전하니, 혜명이 문득 듣고 말끝言下에 마음이 열렸다. 혜능이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오조 스님이 혜능 행자에게 전법하고 3일 동안 법문도 안 하고, 방에서도 안 나오시니까, 대중이 이상히 여겨 “스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왜 법문을 안 해주십니까?” 여쭈니, “내 법은 남쪽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혜능 행자가 법과 의발을 갖고 남쪽으로 간 줄 알고, 뒤따라간 겁니다. 그런데 중간에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고 오직 혜명 스님만 혼자서 쫓아간 것입니다.
  
성은 진씨고 이름은 혜명이며,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해서 바로 쫓아와 범행하고자 하거늘 혜능이 곧 법의를 돌려주되 또 즐거이 취하지 아니하고, 혜명이 말하기를 “내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옷을 필요로 함이 아닙니다.”

   여기도 덕이본하고 다릅니다. 바위에 의발衣鉢을 두고 가져가라 하니, 혜명이 의발을 들려고 했지만 안 들리니까, 그 때서야 겁이 나서 “내가 의발을 뺏으러 온 게 아니고 법을 얻으러 왔습니다.” 그렇게 얘기하지요. 그러니까 혜능이 혜명한테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아라不思善 不思惡. 그럴 때, 너의 본래 면목이 어떠하냐?” 여기에서 혜명이 깨달았다고 되어 있는데 돈황본에는 그런 얘기가 없습니다. 그런 얘기는 단경을 이해하기 좋게 후대에 첨가한 이야기라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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