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스승을 찾아감(尋師)(2)


   우리 문제와 관련해서 조금 비판적인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근래에 스님들 사이에 “도인道人은 멀리서 봐야 도인이지 가까이에서 보면 도인이 아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도인을 욕하는 말입니다. 욕도 엄청나게 심한 욕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도인 아니다”라 말은 가까이에서 보니 허점투성이라는 말입니다. 도인에게 배우러 찾아갔다가 실망해서 돌아오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이런 분들도 지견知見이 열린 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도인道人이 아니에요.

   이 지견도 옛날 중국 『조사어록』에 나오는 지견 난 분들과 우리나라의 지견 난 분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록에 나오는 분들은 지견 난 것만큼 언행일치言行一致가 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도인이라고 하는 분들은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안 되요. 지금 한국불교가 가장 극복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수행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한다고 하면서 화두 들고, 염불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하면서도 의식意識은 다른 데 가 있어요. 일치一致가 안 되고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 봅시다. 베트남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 같은 것은 우리 한국불교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화를 다스리는 이야기일 뿐인데 그게 120만 부인가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불교는 또 부처님의 바른 불교는 화가 안 나야 됩니다. 그런 기록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처님에게 외도外道가 와서 막 욕을 합니다. 욕을 하는데 부처님이 반응이 없으니까 자기가 더 화가 나서 그 화를 못 풀어 마침내 부처님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부처님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냥 “다 했느냐?” 이렇게 묻기만 하지요. 그러자 그 외도는 워낙 부처님이 태연하니까, 겁도 나고 해서 스스로 물러갑니다. 그런데 시자 아난이 옆에 있다가 못 견딥니다. 외도가 떠나자마자 아난이 화가 나서 부처님에게 말합니다. “부처님, 저는 겨우 참았습니다. 어떻게 가만히 계십니까?” 그러자 부처님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난을 쳐다보며 “아까는 욕하는 사람을 연민했는데, 지금은 너를 더 연민하노라.” 그럽니다. 그 사람은 그래도 감정에 충실해서 감정 나는 대로 행동하는데, 너는 앞에서는 꾹 참았다가 뒤에서 화를 내니 더 위선자가 아니냐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처님은 정말 목석 같이 전혀 반응을 안 했느냐? 그게 아닙니다. 반응을 했습니다. 방금 아난의 모습처럼 우리는 누가 날 괴롭히면 증오심이나 미움으로 반응하는데, 부처님은 연민憐憫으로 반응합니다. 자비慈悲할 때 비悲가 바로 연민입니다. 그런데 연민이라고 해서 우리가 상대편을 깔보고, 업신여기고 이런 것이 아니라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연민합니다. 그러면 평등한 입장에서 연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본래 부처라는 거지요. 너하고 나하고 손톱만큼도 차이가 없다. 우리 본래 존재원리는 손톱만큼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원리로 되어 있는데, 너가 착각에 빠져 증오심도 일으키고 미움도 일으키니까, 그게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평등하게 연민을 합니다. 그래서 화를 안 내는 이것이 불교입니다. 화를 다스리는 것, 삭히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제가 달라이라마와도 만나서 세 시간 정도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데, 티벳 불교보다는 우리 한국불교가 법을 굉장히 깊이 봅니다. 그분들이 개인적으로 실력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 불교가 법을 깊이 보는 데는 선禪, 조사선祖師禪의 전통을 잘 계승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불교는 정말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법을 깊이 보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 선종 사찰을 답사하기 위해 배낭여행을 두 번 다녀왔습니다. 거기 가서 중국 스님들과 얘기해 보면, 한국 스님도 공부 안 하지만 그쪽은 정말로 무식합니다. 원오 극근 선사가 선어록의 백미라는 『벽암록』을 지은 협산사라는 절에 갔는데, 원오 극근 선사에 대한 유적을 소개해 달라고 하니까, 40대 스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원오 선사가 누구냐?”고 되물어요. 내 생각에는 원오 극근 선사가 우리로 말하면 한국의 원효스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냐고 물으니 기가 막히데요. 다녀보니까, 중국 스님들 엄청나게 무식해요.

   그리고 일본의 선은 의리義理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조사선 불교, 부처님 근본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것은 한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틱낫한이나 달라이라마 스님보다도 신뢰도 못 받고, 존경도 못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뭐냐? 우리가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언행일치言行一致만 되면 그분들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수행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티벳이나 동남아 불교는 수행修行이라는 방편에 자기 인생人生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걸 통해서 해탈을 하고 성불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못 벗어나고 거기에 맞춰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면 형식화, 고정화, 박제화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禪은 그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불교는 수행 방편에 생활을 맞추는 게 아니고, 일상생활에 선과 불교가 스며들게 해서 이 생활과 불교·선이 하나가 되도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기만 하면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고, 세속과 출가가 둘이 아니며,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자유자재하고 평화로워지는 겁니다. 수행 방편에 맞춰 생활을 구속하고 형식화, 박제화하는 그런 부자유한 불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가 굉장한 불교입니다. 우리 불교의 뿌리가 이 육조 혜능 스님의 『육조단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적으로 그렇게 존경도 못 받고, 신뢰도 못 받고 있습니다. 한국불교를 누가 알아줍니까?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 스님들에게 가장 책임이 있습니다.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안 되고, 생활을 불교화시켜서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화되어 버리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야, 그러면 불교가 너무 어렵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로 어려운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법을 바르게 이해해서 정견만 세우면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가능합니다.

   육조 스님도 효를 하면서 마음을 깨끗이 했기 때문에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라든지 하여간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지견知見이 났습니다. 지견이 나니까, 그때 효孝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무조건 어머니한테 방 따뜻하게 해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드리는 것이 효라고 생각했는데, 지견知見이 나고 보니까 정말로 내가 이 법法을 공부하여 도인道人이 되어 여러 사람한테 이 법과 은혜를 베풀어 도움을 주는 것 이상의 효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조 스님처럼 지견知見이 열리어 정견正見만 생겨도 생활이 달라집니다. 정견正見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견正見은 우리가 몇 시간만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생활이 달라지고 사고가 달라지고 그렇게 달라지면, 그만큼 생활이 어렵고 구속되는 것도 많지 않느냐? 천만에요. 오히려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도 『금강경』 한 구절 듣고 효에 대한 견해가 달라져 버렸어요. 달라지기 전에는 누가 설사 혜능 스님에게 가서 목에 칼을 대고 “너 어머니 봉양하는 일 그만두고 출가해라” 그랬다고 한다면 이분이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어머니를 버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견이 나고 보니까 그 생각이 바뀐 거예요. 이게 굉장한 겁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이 안도성이라는 분에게 은 100냥을 얻어서 어머니에게 식량과 의복 이런 걸 다 준비해 드리고 떠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돈황본에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어머니를 고생되지 않게끔 준비를 했겠지요.

   이와 같이 육조 스님도 바로 지견이 나서 이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의식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하직하고 출가의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 대목은 우리가 공부해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는 출가했으니, 다시 출가할 필요는 없고, 지금 우리가 처한 그 자리에서 하는 일을 옛날에 하던 마음으로 하는 것과 다른 마음, 다른 시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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