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계종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을 읽기 편하도록 글꼴을 키우고 문단을 정리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공부목적으로 제 블로그에 올리지만 아무쪼록 연이 닿아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불자분들께서 정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하 아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육조단경은 각화사 태백선원 선덕 고우古愚 스님의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로서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에서 발행되는 <법회와 설법>에 연재되는 것을 대한불교조계종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시는 모든 법우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우 스님께서는 불교경전연구회 초청으로 지난 3월부터 서울 옥수동 미타사에서 승납 15년 이상된 비구ㆍ비구니 칠십여 분에게 『육조단경』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고우 스님께서는 청암사 수도암으로 출가하시어 고봉, 관응, 혼해 강백으로부터 강원 이력을 마친 이래 40여 년 간 오로지 수선 납자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실참실수에 전념하여 온 선사로부터 이 『육조단경』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또다른 매력입니다.


육조단경 六祖壇經』을 공부하는 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는 데 목표目標가 있을 것입니다. 출가出家한 스님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스님이라면 누구든지 목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희망사항이 되어 있는 분도 있고, 또 아주 신념화되어 철저히 공부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번에 이 『육조단경』을 공부하는 뜻은 우리의 목표인 견성성불의 신념을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지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강의를 통해서 견성성불의 목표 실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뒤에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바라보신 것과 우리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본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시어 혜안慧眼으로 바라본 것과 우리가 이 세상을 육안으로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출가出家라는 것은 부처님이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로 본 혜안의 시각을 배우러 온 것입니다. 그 시각을 단박에 체험하여 부처님과 똑같이 되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안 되니까 부처님이 성도하신 뒤에 자기를 본 시각과 세상을 바로 본 시각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배워야 할 시각은 어떤 것인지를 이 『육조단경』을 통해서 배워가지고 자기와 세상을 바로 보면서 수행을 통해서 체험해 가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자기 자신을 바로 본 것을 인생관人生觀이라 해도 좋고, 세상을 바라본 것을 세계관世界觀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부처님의 인생관, 세계관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같은 시각으로 생활하고 노력하는 것, 이게 수행입니다.
   꼭 화두 들고 참선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고 수행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수행법이 있습니다. 이 『육조단경』을 보는 분들 중에는 주지도 있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있는 어떤 분야이든, 지금 무슨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이 수행하고 연결되어야 본인도 도움이 되고 남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육조단경』 공부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에 출가해서 스님 생활하면서 수행이 잘 되지 않고 의문이 있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그런 분들도 이 『육조단경』을 같이 공부하면서 앞으로 각 분야에서 생활하고 활동하는 데 보람과 자긍심도 느끼고, 또 각자 하는 일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알아 정말로 “아, 내가 머리 깎고 출가하기를 잘 했구나!” 하는 그런 자신감을 가지면서 생활이 잘 되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강의를 하겠습니다.

   이 『육조단경』은 『선요禪要』나 『서장書狀』 같은 어록보다는 말이 좀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육조단경』에도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쉽습니다.
   실제 선종禪宗도 후기에 와서 선사禪師들이 어려운 소리를 많이 했지, 초기 선종에서는 말이 굉장히 쉬웠어요. 육조 스님 이후에도 마조馬祖  스님이나 백장百丈  스님 같은 분들을 보면 어려운 격외구格外句가 나오긴 합니다만 거의 설명하다시피 하고 있어 후대 선종보다는 말을 굉장히 쉽게 하고 있습니다.
   이 『육조단경』도 후대 선종의 어록보다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육조 스님을 만난 분들이 그냥 그 자리에서 깨쳤어요. ‘언하言下에 돈오頓悟’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혹시 강의가 부실하더라도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는 말 끝에 대오大悟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 자세로 공부해 나간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육조단경』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판본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돈황본敦煌本이 가장 오래된 단경입니다. 그래서 이 강의는 가장 오래된 『단경』이 원형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고 돈황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에 된 것은 아무래도 첨삭이 되어서 가필도 하고 또 고치기도 하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 육조단경』은 육조 스님을 통해서 나온 이후에 선종禪宗에 미친 영향도 엄청나게 크지만, 실제 중국이나 동북아시아 쪽의 정치, 경제는 물론,  심지어 서예, 다도, 꽃꽂이 등 문화예술에까지도 영향을 크게 주었습니다. 실제 우리가 피부로 못 느껴서 그렇지 이 『육조단경』이 나온 이후로 이 조사선祖師禪이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까 중국을 사회주의화한 모택동도 이 『육조단경』을 좋아해서 늘 가까이 두고 읽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자료에는 이 『육조단경』이 동아시아문화권에서 『논어論語』, 『맹자孟子』, 『도덕경道德經』 등과 함께 5대 명저에 넣기도 하더군요. 그렇게 중요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크게 영향을 미친 점은 『육조단경』 내용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한 지침이라는 것입니다. 이 『육조단경』은 우리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바른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운문 스님은 『육조단경』을 통하든지 조사선을 통해서 깨달음에 가게 되면 “매일 매일 좋은 날”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 『육조단경』의 가치는 정말로 말할 수 없는 그런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 『육조단경』에 있는 내용은 결국 우리가 행복하라고, 또 마음이 평화로우라고, 또 자유로우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내  밖에서 그런 조건을 찾으려고 하면, 이 『육조단경』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뭐냐? 『단경』에서 말하는 것도 부처님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밖이 아니고 안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육조단경』에서는 절대 밖에 어떤 행복의 조건이 있다고 얘기한 것이 없습니다. 안으로 우리가 그 행복의 조건을 찾는 얘기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로 이해하고 혹시 내 밖의 어떤 조건에서 행복의 길을 찾는다면 그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절대 밖으로 찾지 마시고 안으로 행복의 조건을 찾는데 『육조단경』이 얘기가 철저히 잘 되어 있고, 가장 정확하고, 또 이분은 안으로 찾는 조건을 체험해서 하시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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