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3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5. 교진여품 ②
   
  또 범지(梵志)가 있으니, 이름은 청정부(淸淨浮)라.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은 무슨 법을 알지 못하여서 세간이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아니함도 아니라 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색을 알지 못하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느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중생들이 무슨 법을 알면,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겠나이까?"
  "선남자여, 색을 아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아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세간이 항상함과 무상함을 분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이 항상하고 무상함을 아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보았나이다."
   
 
[883 / 909] 쪽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보았는가?"
  "세존이시여, 낡은 것은 무명과 애라 하옵고, 새것은 취(取)와 유(有)라 하나니, 사람이 만일 무명과 애를 멀리 여의고, 취와 유를 짓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진실하게 항상함과 무상함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바른 법의 깨끗한 눈을 얻삽고 3보에 귀의하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제가 출가함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에게로 데리고 가서 갈마(羯磨)를 행하여 출가하게 하였더니, 보름 후에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독자(犢子) 범지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물으려는데 허락하겠습니까?"
  여래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리하셨다.
  독자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친구가 되었으며, 당신은 나와는 둘이 아닌데, 내가 묻는 것에 어찌 잠자코 계십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는 성품이 선비답고 아담하며 착하고 질직(質直)하여서 매양 알기 위하여 묻는 것이요, 남을 시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 저가 물으면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독자여, 훌륭한 일이다. 의심나는 대로 물으면 내가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세상에 선(善)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불선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구담이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말하여서 저로 하여금 선과 불선의 법을 알게 하소서."
  "선남자여, 나는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할 수 있거니와, 이제 그대를  
   
 
[884 / 909] 쪽  
  위하여 간략히 말하리라. 선남자여, 탐욕을 불선이라 하고, 탐욕에서 해탈함을 선이라 하며,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으니라. 살생을 불선이라 하고, 살생하지 않음을 선이라 하며, 나아가 삿된 소견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으며, 또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노라. 만일 나의 제자가 이러한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 나아가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능히 분별하면, 이 사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다하였고 온갖 유를 끊은 것이니라."
  "구담이여, 불법 가운데 한 비구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들이 이러한 탐욕과 생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하였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는 한 비구니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니들이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와 한 비구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한 우바새(優婆塞)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고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 한 우바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서 한 우바이(優婆夷)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885 / 909] 쪽  
  "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이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5하분결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가 온갖 번뇌를 다하거나, 한 우바새, 한 우바이가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을 끊은 이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우바새로 5욕락을 받으면서 마음에 의심이 없는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수다원을 얻었으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을 얻었으며, 우바새와 같이 우바이도 그러하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유를 말하려 하나이다."
  "좋은 말이다. 말하려거든 말하여 보아라."
  "세존이시여, 마치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 용왕들이 큰비를 내리듯이 여래의 법비도 그와 같아서 우바새·우바이에게 평등하게 내리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들이 와서 출가하려 하오면, 여래께서는 몇 달 동안이나 시험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다 넉 달씩 시험하거니와, 한결같지는 아니하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한결같지 않사오면,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독자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라."  
  그 때에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 가운데서 갈마를 하였더니, 보름이 찬 뒤에 수다원과를 얻었다. 수다원과를 얻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혜를 배워서 얻을 것은 내가 이미 얻었으니, 이제는 부처님을 뵈올 만하다.'  
  곧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예경을 마치고는 한쪽
   
 
[886 / 909] 쪽  
  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배워서 얻을 모든 지혜를 제가 이미 얻었나이다.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다시 분별하여 말씀하시어, 저로 하여금 무학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을지니, 하나는 사마타(奢摩他)요, 또 하나는 비바사나(毘婆舍那)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수다원과를 얻으려면, 이 두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나 아라한과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4선정·4무량심·6신통·8배사(背捨)·8승처(勝處)·무쟁지(無諍智)·정지(頂智)·필경지(畢竟智)·4무애지(無礙智)·금강삼매·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10주지(住地)·무생법인(無生法忍)·무상법인(無相法忍)·불가사의법인(不可思議法忍)·성행(聖行)·범행(梵行)·천행(天行)·보살행·허공삼매·지인삼매(智印三昧)·공(空)삼매·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지(地)삼매·불퇴(不退)삼매·수릉(首楞)삼매·금강삼매·아뇩다라삼먁삼보리·불행(佛行)을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독자가 듣고는 예배하고 나와서 사라숲 속에서 이 두 법을 닦더니,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또 한량없는 비구들이 부처님 계신 데 가려고 하는 것을 독자가 보고 물었다.
  "큰스님들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 계신 데 가렵니다."
  "큰스님들, 부처님께 가시거든 원컨대,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하여 반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독자 비구가 저희들에게 부탁하기를 '세존이시여,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887 / 909] 쪽  
  하여 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라 하더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독자 범지가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함께 가서 그 몸에 공양하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그 시신이 있는 데 가서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납의(納衣) 범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의 말과 같이 '한량없는 세상에서 선과 불선을 지었으므로 오는 세상에서 선한 몸과 불선한 몸을 얻는다' 하였으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구담이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이 몸을 얻는다' 하였으니, 번뇌로 인하여 몸을 얻는다면, 몸이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다면, 누가 지었으며 어디 머물러 있었던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면, 어떻게 번뇌로 인하여 얻는다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번뇌가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몸이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한꺼번에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니라. 먼저 있었다, 나중에 있었다, 한꺼번에 있었다 함이 모두 옳지 못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는 것이고,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오.
  또 구담이여, 굳은 것은 땅의 성품이요, 젖는 것은 물의 성품이요, 더운 것은 불의 성품이요, 동함은 바람의 성품이요, 걸림이 없는 것은 허공의 성품이니, 이 5대의 성품은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만일 세간에서 한 가지 법의 성품이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니라. 만일 한 가지 법이라도 인연으로 있는 것이라면, 무슨 연고로 5대의 성품은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는가.
  구담이여, 중생들이 선한 몸으로나 불선한 몸으로나 해탈을 얻는 것은 모두 자기의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들이 제 성품으로 있는 것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오.
  구담이여, 세간의 법들이 일정하게 쓰는 곳이 있나니, 마치 목수는 말하기를 '이 나무로는 수레를 만들고, 이 나무로는 창호나 책상을 만들 것이라' 하며, 금사(金師)가 만드는 것도 이마에 두르는 것은 화만[鬘]이라 하고, 목에  
   
 
[888 / 909] 쪽  
  늘어뜨리는 것은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은 팔찌라 하고, 손가락에 끼는 것은 가락지라 하듯이, 쓰는 곳이 일정한 연고로 결정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도의 성품이 있으므로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연을 따른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성품이 제각기 다르므로 온갖 가지 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거북은 육지에 나서도 스스로 물에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젖을 먹을 수 있고,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보고는 스스로 삼키며, 독사가 나서는 자연히 흙을 먹나니, 이런 것은 아무도 가르치는 이가 없는 것이며, 가시는 나면서 끝이 뾰족하고, 나는 새는 털빛이 제각기 다르나니, 세간의 중생들도 그러하여 영리한 이도 있고 둔한 이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고, 잘난 이도 있고 못난 이도 있으며,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나쁜 데 사는 이도 있나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 중에는 제각기 제 성품이 있는 것이오.
  또 구담이 말하기를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며, 이 3독(毒)이 5진(塵)을 인연한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이 잘 때에는 5진을 멀리 여의었지만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태 속에 있을 때도 그러하며, 태에서 처음 나와서는 5진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신선이나 성현들이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5진이 없지만 그래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어떤 이는 5진으로 인하여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제 성품이 있는 까닭입니다.
  또 구담이여, 제가 보건대 세상 사람들이 5근을 구족하지 못하고도 재물이 많고 자재한 이가 있으며, 5근을 구족하고도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재로 하지 못하고 남의 하인이 되는 이가 있으니, 만일 인연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이러합니까?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889 / 909] 쪽  
  또 구담이여,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을 분별할 줄 모르면서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웃을 때에는 기쁜 줄 알고, 울 때에는 걱정하는 줄 아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모두 제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또 구담이여, 세상 법이 두 가지니, 하나는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허공이요, 없는 것은 토끼의 뿔이니, 이 두 가지 법에서 하나는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고, 또 하나는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이 5대의 성품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러하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그대의 법에서 5대가 항상한 것이라면, 무슨 인연으로 온갖 법이 모두 항상하지 아니하며, 만일 세상 물건이 무상하다면, 5대의 성품은 무슨 인연으로 무상하지 아니한가. 만일 5대가 항상하다면, 세상 물건도 항상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5대의 성품은 제 성품이 있으므로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여 온갖 법으로 하여금 5대와 같게 하리라' 함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쓰는 곳이 일정하므로 제 성품이 있다'는 것도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모두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 연고니라. 만일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면, 역시 인연으로부터 뜻을 얻어야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 하는가. 마치 이마 위에 있는 것을 화만이라 이름하고, 목에 있는 것을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을 팔찌라 하고, 수레에 있는 것을 바퀴라 하고, 초목에 불이 있는 것을 초목의 불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거니와, 선남자여, 나무가 처음 날 때에는 화살이나 창대의 성품이 없었지만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살을 만들고,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창대를 만드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거북은 육지에서 났으나 성품이 물로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먹을 수 있다 함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물에 들어가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890 / 909] 쪽  
  아닌데 어찌하여 불에는 들어가지 않는가. 송아지가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빨 수 있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아닌데 어찌하여 뿔은 빨지 않는가.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으므로 가르칠 필요도 없고 증장할 것도 없다' 하는 것은,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지금 보건대 가르침이 있으며, 가르침으로 인하여 증장하나니, 그러므로 제 성품이 없음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바라문들이 마땅히 청정한 몸을 위하여 양을 잡아서 제사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일 몸을 위하여 제사한다면,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에서 말하는 법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으려 함이요, 둘은 짓는 때요, 셋은 지어 마친 때니라.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세상에 세 가지 말이 있겠는가. 세 가지 말이 있으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법이 각각 일정한 성품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사탕수수라는 한 물건이 무슨 연고로 즙이 되고, 꿀이 되고 얼음사탕[石蜜]이 되고 술이 되고 초[苦酒]가 되는가. 만일 한 가지 성품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여러 가지 맛이 되는가. 만일 한 물건 가운데서 이런 것들이 난다면, 모든 법은 일정하게 각각 한 성품이 있지 아니한 줄을 알 것이다.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성인이 무슨 연고로 사탕수수 즙이나 얼음사탕이나 흑설탕은 먹고, 술이었을 때에는 먹지 않다가, 초가 된 뒤에는 다시 먹는가. 그러므로 일정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 하거니와, 어떻게 비유를 말하겠는가. 만일 비유할 것이 있다면,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비유가 없음을 알지니라. 세간에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비유를 말하는 터인즉,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으며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몸이 먼저 있는가, 번뇌가 먼저 있는가' 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내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고 말하였다면, 그대가 그렇게 문난할 수 있거니와, 그대도 나와 같아서 몸이 먼
   
 
[891 / 909] 쪽  
  저 있던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그런 문난을 짓는가.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몸과 번뇌가 다 먼저 있던 것도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에 있는 것이며, 일시에 있더라도 반드시 번뇌로 인하여 몸이 있는 것이요, 마침내 몸으로 인하여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대가 생각하기를, '마치 사람의 두 눈이 일시에 있던 것이요 서로 인한 것이 아니니, 왼 눈이 오른 눈을 기다리지 않았고, 오른 눈이 왼 눈을 기다리지 않은 것처럼, 번뇌와 몸도 그와 같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심지와 광명이 비록 일시이지만, 광명이 심지로 인하여 있고 광명으로 인하여 심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먼저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인이 없는 줄을 안다' 하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몸보다 먼저는 인연이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한다면, 그대도 온갖 법이 다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하였으므로 말하지 못한다 할진대, 지금 병(甁) 등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거늘, 어찌하여 병과 같이 몸보다 먼저의 인연도 그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선남자여, 보거나 보지 않거나, 온갖 법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요, 제 성품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다 제 성품이 있고, 인연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왜 인연으로 5대를 말하는가. 이 5대의 성품이 곧 인연이니라. 선남자여, 5대의 인연이 비록 이러하지만 역시 모든 법이 다 5대의 인연과 같다고도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출가한 이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지나니, 전다라들도 그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5대가 결정코 굳은 성품이 있다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 성품이 변하는 것이어서 일정하지 않다고 보느니라. 선남자여, 소랍(酥蠟)과 호교(胡膠)를 그대의 법에서는 지대라 하지만 이 지대[地]란 것이 일정치 아니하여 혹은 물과도 같고, 혹은 땅과도 같으므로 제 성품이 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백랍(白鑞)과 납과 땜납[錫]과 동과 철과 금과 은을 그대의 법에서는 화대[火]라 말하지만 이 화대가 네 가지 성품이 있으니, 흐를 때에는 물의 성품이요, 동할 때에는 바람의 성품이요, 더울 때에는 불의 성품이요, 굳을 때에는 땅의 성품이거늘, 어떻게 결정코 화대의 성품이라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물의 성품은 흐르는 것이라 하면서 물이 얼었을 때에도 땅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물이라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파도가 동할 때를,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만일 동하는 것을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다면, 얼었을 때도 물이라고 이름하지 말아야 할지니라. 만일 이 두 가지 뜻이 인연을 따르는 것이라 할진댄 무슨 연고로 온갖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여, 만일 5근의 성품이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감촉하는 것이므로 모두 제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제 성품이란 성품은 변동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눈의 성품이 보는 것이라면 항상 보아야 할 것이요, 보는 때도 있고 보지 못할 때도 있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인연을 따라서 보는 것이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함은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5진의 인연으로 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쁜 각관(覺觀)인 연고로 탐욕을 내고, 선한 각관인 연고로 해탈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안의 인연으로 탐욕과 해탈을 내고, 바깥 인연으로 증장케 하나니,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각각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모든 근을 구족하고도 재물이 없어 자재하지 못하기도 하고, 모든 근을 구족하지 못하였는데도 재물이 많고 자재하기도 한다'고 하며, 이런 것으로써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중생들이 업을 따라서 과보를 받거니와, 이 과보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받는 과보요, 둘은 다음 생에 받는 과보요, 셋은 후생에 받는 과보니라.
  빈궁하거나 부자거나 근을 구족하였거나 구족하지 못한 것은 업이 각각 다른 까닭이니라.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근을 구족한 이가 마땅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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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부유하고, 재물이 부유한 이는 마땅히 근을 구족할 것이나, 이제 그렇지 아니하므로 결정코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요,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의 인연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제 성품이라면 웃는 이는 항상 웃고, 우는 이는 항상 울어야 할 것이요, 한 번 웃고 한 번 울지 않을 것이니라. 만일 한 번 웃다가 한 번 운다면 이것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어서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범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이 인연으로 있다면, 이 몸은 무슨 인연이오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몸의 인연은 번뇌와 업이니라."
  "세존이시여, 이 몸이 번뇌와 업을 따른 것이라면, 이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나이까?"
  "그러하니라."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시어서 제가 듣고 이 자리에서 모두 끊게 하시옵소서."
  "선남자여, 만일 두 끝과 중간이 장애되지 않는 줄을 알면 이 사람은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사옵고 바른 법의 눈을 얻었나이다."
  "너는 어떻게 알았느냐?"
  "세존이시여, 두 끝은 색과 색의 해탈이옵고, 중간은 8정도(正道)이오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러하나이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두 끝을 잘 알아서 번뇌와 업을 끊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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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제가 출가하여 계를 받을 것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 하시니, 즉시에 삼계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다시 홍광(弘廣)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아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열반은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성인의 도니라."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이런 말씀을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가 항상 생각하기를, '걸식은 항상하고 별청(別請)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자물쇠[戶鑰]요, 곧은 것은 제석의 짐대'라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열반이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이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8정도니라'라고 하였나니, 그대가 먼저 생각하던 것은 법에 맞지 않느니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진실로 제 마음을 아시나이다. 이 8정도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멸하게 할 수 있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께서는 이미 저의 마음을 아셨나이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무슨 연고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나이까?"
  이 때에 교진여가 말하였다.
  "대바라문이여, 만일 세상의 가가 있고 가가 없음을 물으면, 여래께서는 항상 잠자코 계시고 대답하지 않으시오. 8정도는 곧은 것이요, 열반은 항상한 것이니, 8정도를 닦으면 곧 멸진(滅盡)함을 얻으려니와, 닦지 아니하면 얻지 못하는 것이오. 대바라문이여, 마치 큰 성이 있는데, 사면 성벽에는 모두 구멍이 없고, 오직 한 문이 있으며, 그 문지기가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분별하여서 출입할 이는 출입하게 하고 거절할 이는 거절하는데, 출입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출입하는 이는 반드시 이 문으로만 드나드는 것처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나니, 성은 열반에 비유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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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문은 8정도에 비유한 것이고, 문지기는 여래에게 비유한 것이오. 선남자여, 여래께서 지금 그대에게 멸진하고 멸진하지 아니함을 대답하지 아니하셨으나, 멸진하는 이는 모름지기 8정도를 닦아야 하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대덕 교진여여, 여래께서 미묘한 법을 잘 말씀하셨사오며, 저는 지금 성(城)을 알고 도(道)를 알며 스스로 문지기가 되려 하나이다."
  교진여가 말하였다.
  "훌륭한 일이오. 그대 바라문이 능히 위없고 넓고 큰 마음을 내었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교진여여. 이 바라문은 오늘에만 이런 마음을 낸 것이 아니니라.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겁에 부처님 세존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광명(普光明)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니라. 이 사람이 그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이 현겁에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며, 오래전부터 법의 행상을 통달하여 분명하게 알았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현재 외도에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척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진여여, 그대는 '훌륭한 일이오. 그대가 능히 이러한 큰 마음을 내었소'라고 칭찬할 것이 아니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아시면서도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아난 비구가 지금 어디 있느냐?"
  교진여가 여쭈었다.
  "아난 비구는 사라숲 밖에 있사온데, 이 대회에서 12유순이 되오며, 6만 4천억 마군의 요란함을 받나이다. 이 마군들은, 모두 여래의 형상처럼 몸을 변화하고서, 혹은 말하되,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고, 혹은 온갖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하고, 혹은 온갖 인연이 다 항상한 법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고, 혹은 5음이 진실한 것이라 하고, 혹은 허망한 것이라 하며, 6입과 18계도 그러하다 하고, 혹은 12인연이 있다 하고, 혹은 네 가지 인연이라 하고, 혹은 모든 법이 환술 같고 변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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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고 아지랑이 같다 하고, 혹은 들음[聞]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생각함[思]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닦음[修]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부정관(不淨觀)하는 법을 말하고, 혹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법을 말하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관하는 뜻과 일곱 가지 방편을 말하고, 혹은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학지(學地)·무학지(無學地)와 보살의 초주(初住)로부터 10주까지를 말하고, 혹은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을 말하고, 혹은 수다라(修多羅)·기야(祇夜)·비가라나(毗伽羅那)·가타(伽陀)·우타나(憂陀那)·니타나(尼陀那)·아파타나(阿波陀那)·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사타나(闍陀伽)·비불략(毗佛略)·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우바제사(優波提舍)를 말하고, 혹은 4념처·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5력·7각분(覺分)·8성도를 말하고, 혹은 내공(內空)·외공(外空)·내외공(內外空)·유위공(有爲空)·무위공(無爲空)·무시공(無始空)·성공(性空)·원리공(遠離空)·산공(散空)·자상공(自相空)·무상공(無相空)·음공(陰空)·입공(入空)·계공(界空)·선공(善空)·불선공(不善空)·무기공(無記空)·보리공(菩提空)·도공(道空)·열반공(涅槃空)·행공(行空)·득공(得空)·제일의공(第一義空)·대공(大空)을 말하고, 혹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몸에서 물과 불을 내되, 몸 위로는 물을 내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몸 아래로는 물을 내고 몸 위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왼 옆구리가 아래 있고 오른 옆구리에서 물을 내며, 오른 옆구리가 아래 있고 왼 옆구리에서 물을 내기도 하며, 한 옆구리로는 천둥을 내고 한 옆구리로는 비를 내리며, 혹은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고, 혹은 보살이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걷는 때와, 깊은 궁궐에서 5욕락을 받는 때와, 처음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때와, 보리수 아래 나아가 삼매에 들던 때와 마(魔)의 군중을 항복받고 법수레를 굴릴 때와, 대신통을 보여 열반에 들 때를 나타내기도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비구는 이런 일들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통 변화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인데, 누가 짓는 것인가. 석가세존께서 지으시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일어나려 하여도 말을 하려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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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며, 아난 비구는 마군의 그물에 들었으므로 생각하기를 '여러 부처님의 말씀이 각각 같지 아니하시니, 나는 이제 누구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받사오며, 아무리 여래를 생각하오나 구원할 이가 없나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중 가운데 오지 못하였나이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중 속에 있는 모든 보살들은 이미 한 생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나아가 한량없는 생에서 보리의 마음을 내어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사오며, 마음이 견고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까지를 구족하게 수행하여 공덕을 성취하였사오며, 오래전부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았으며, 물러나지 않는 보리의 마음을 얻었으며, 불퇴인(不退忍)과 불퇴전지(不退轉持)를 얻었으며, 여법인(如法忍)과 수릉엄(首楞嚴) 등의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나이다.
  이런 무리들이 대승 경전을 듣고도 의심을 내지 아니할 것이며, 3보가 한 가지 성품과 모양이어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함을 잘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며, 부사의한 것을 듣고도 놀라지 아니할 것이며, 가지가지 공(空)함을 듣고도 마음으로 무서워하지 아니하며, 모든 법의 성품을 분명하게 통달하고, 모든 12부경을 능히 지니고 뜻을 자세히 해설하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12부경이라도 능히 받아 지닐 것이옵거늘, 이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야 무엇이 근심되오리까? 무슨 인연으로 교진여에게 아난이 있는 데를 물으시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들으라. 선남자여, 내가 성불한 지 20년쯤 지나서 왕사성에 있었더니, 그 때에 내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 대중 가운데서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여래의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좌우에서 필요한 일을 공급하여 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좋은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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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에 교진여가 대중 속에 있다가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능히 12부경을 받아 지니며, 좌우에서 시봉하면서 저에게 이익될 일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교진여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느냐?'
  이 때에 사리불이 또 말하였다.
  '제가 능히 부처님의 온갖 말씀을 받아 지니오며, 필요하신 대로 시중들겠사옵고, 저에게 이익된 일을 하는 것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느냐?'
  이리하여 나아가 5백 아라한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모두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때에 목련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이제 5백 비구들이 시중하려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니, 부처님 뜻에 누구를 시중을 들게 하시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문득 선정에 들어서 여래를 관하니, 마음이 아난에게 있는 것이, 마치 해가 처음으로 뜰 때에 빛이 서쪽 벽에 비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선정에서 일어나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제가 여래를 뵈오니 아난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시중들게 하려 하더이다.'
  그 때에 교진여는 5백 아라한과 함께 아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이 이제 여래의 시중을 들어야 하겠으니, 이 일을 승낙하라.'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큰스님들이시여, 저는 참으로 여래의 시중을 들 수가 없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존종하시기 사자왕 같사옵고 용과 불과 같사온데, 저는 더럽고 미약하오니, 어떻게 책임을 감당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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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들은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은 우리 말을 듣고, 여래를 모시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오.'
  두 번 세 번 이렇게 말하였으나, 아난은 말하였다.
  '여러 큰스님들이여, 저는 큰 이익을 구함도 아니오며, 진실로 좌우에서 시중드는 일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이 때에 목련은 또 아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그대는 아직 모르는구나.'
  '큰스님, 바라건대 말씀하십시오.'
  '여래께서 저번에 대중 가운데서 시중들 사람을 구하시기에 5백 아라한이 모두 시중을 들려 하였으나, 여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내가 정에 들어서 여래의 뜻을 살펴뵈오니, 그대로 하여금 시자를 삼으려 하시는 것인데, 그대가 어찌하여 받들지 않는가?'
  아난이 이 말을 듣고는 합장하고 꿇어앉아 말했다.
  '여러분 큰스님들, 일이 그러하다면, 여래 세존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면, 승가의 명령을 받들어 좌우에서 모시겠나이다.'
  목련이 말하였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인가?'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는 여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저에게 주셔도 제가 받잡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둘은 여래께서 단월의 별청(別請)을 받게 될 때에 제가 따라가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셋은 저의 출입이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승가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교진여 등 5백 비구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아난 비구에게 권하였더니,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서 부처님께서 들어주시면 대중의 명을 따르겠노라 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그 때에 아난을 이렇게 칭찬했노라.
  '훌륭하도다.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여 미리 혐의가 있을 것을 보았도
   
 
[900 / 909] 쪽  
  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의식을 위하여 여래의 시중을 드는 것이냐?' 하겠으므로, 먼저 낡은 옷이라도 받지 않고 별청에 따라가지 않겠다 한 것이니라. 교진여여,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였으니, 들고 나는 시간이 한정되면 4부 대중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널리 지을 수 없으므로, 출입하는 시간이 제한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니라.
  교진여여, 내가 아난을 위하여 그 세 가지 일을 허락하여 그 소원을 따르리라.'
  이 때에 목련은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말대로 세 가지 일을 여쭈었더니, 여래께서 대자비로 모두 들어 주셨느니라.'
  아난이 대답하였다.
  '큰스님이여,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으면 가서 모시겠나이다.'  
  문수사리여, 아난이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것을 구족하였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나는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한 번도 나를 따라서 별청식(別請食)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둘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한 번도 나의 옷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셋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마침내 때 아닌 때에 나에게 온 적이 없는 것이고, 넷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번뇌를 구족하였으면서도 나를 따라서 임금과 찰리와 훌륭한 대갓집에 드나들면서 여러 여인과 천녀·용녀들을 보았지만 탐욕을 내지 아니한 것이고, 다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내가 말한 12부경을 받아 지니되, 한번 들은 것은 다시 묻지 아니하고도 병에 든 물을 다른 병에 붓듯이 한 것이다. 다만 한 번 물은 적이 있었으니, 선남자여, 유리(琉璃) 태자가 석씨들을 모두 죽이고 가비라성을 파괴할 때에 아난이 걱정하여 울면서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여래와 제가 함께 이 성에서 태어났고, 같은 석가 종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화평한 얼굴이 평상시와 같으신데, 저는 초조하나이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난아, 나는 공정(空定)을 닦았으므로 너와는 같지 아니하니라.'  
  3년이 지난 뒤에 다시 와서 나에게 물었다.
   
 
[901 / 909] 쪽  
  '제가 지난번 가비라성에 있을 때에, 여래께서 공삼매를 닦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사온데, 그 일이 진실하오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아난아, 그렇다. 네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여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으나, 여래가 드는 선정을 항상 안 것이고, 일곱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소원대로 아는 지혜[願智]는 얻지 못하였으나, 여러 중생들이 여래에게 와서는, 현재에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기도 하고, 나중에 얻는 이도 있고, 사람의 몸을 얻을 이와 천인의 몸을 얻을 이들을 분명하게 안 것이고, 여덟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여래의 비밀한 말을 다 안 것이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가 이렇게 여덟 가지 부사의한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多聞藏]이라고 칭찬하는 바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는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여 12부경을 갖추어 지녔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하나는 신심이 견고한 것이고, 둘은 마음이 질직(質直)하고, 셋은 몸에 병고가 없는 것이고, 넷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한 것이고, 다섯은 기억하는 마음을 구족한 것이고, 여섯은 교만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일곱은 선정과 지혜를 성취한 것이고, 여덟은 들음을 따라 생기는 지혜를 구족한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아숙가(阿叔迦)인데, 역시 이런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고, 시기(尸棄)여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차마가라(差摩迦羅)요, 비사부(毗舍浮)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우파선타(優波扇陀)요, 가라구촌타(迦羅鳩村馱)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발제(跋提)요, 가나함모니(迦那含牟尼)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소지(蘇坁)요, 가섭(迦葉)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섭파밀다(葉婆蜜多)인데, 모두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는데, 지금 나의 아난도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이라고 칭찬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이 대중 중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있으나, 이 보살들은 다 중대한 책임이 있나니, 이른바 대자대비니라. 이 대자대비한 인연으로 각각 일이 바쁘고 권속을 조복하고 몸을 장엄하여야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열반한 뒤에 12부경을 선전하고 유통할 수 없으며, 어떤 보살이 혹시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는 나의 동생이고, 나를 시중한 지 20여 년에 들을 만한 법은 모두 구족하게 지니었으매, 마치 물을 부어 한 그릇에 담는 듯하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아난이 어디 있는가 물은 것은, 이 열반경을 받아 지니게 하려는 것이로다.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후에 아난 비구가 듣지 못한 것은 홍광(弘廣)보살이 유포할 것이요, 아난이 들은 것은 스스로 유통하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가 지금 다른 곳에 있는데, 이 회상에서 12유순이 된다고 하며, 6만 4천억 마군에게 시달린다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
  '모든 마군들은 자세히 들으라. 여래께서 지금 대다라니(大陀羅尼)를 말씀하시나니, 모든 천인·용·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사람·사람 아닌 이[非人]와 산신·목신·수신·해신·가택신 들이 이 지명(持名)을 듣고는 공경하여 받아 지니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이 다라니는 10항하사 부처님 세존들이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어서 여인의 몸을 전환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 숙명(宿命)을 알게 하느니라.
  만일 다섯 가지 일을 받되, 하나는 범행이요, 둘은 어육을 끊는 것이고, 셋은 술을 끊는 것이고, 넷은 5신채(辛菜)를 끊는 것이고, 다섯은 고요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를 받고 지성으로 이 다라니를 믿으며 읽고 외우고 쓰면, 이 사람은 즉시에 77억 더러운 몸을 초월하게 되느니라.'"
  이 때에 세존께서 다라니를 말씀하셨다. 
 

   
 




문수사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다라니를 받잡고, 아난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마군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마와 권속들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다라니주를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으라."
  마왕들이 이 다라니를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의 업을 버리고 아난을 놓았다. 문수사리가 아난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니, 아난은 부처님을 뵈옵고 지성으로 예경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이 사라숲 밖에 수발타라는 범지가 있는데, 나이는 120세이다. 비록 5통(通)을 얻었으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고는 일체지(一切智)라는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는 생각을 일으켰느니라. 네가 거기 가서 수발타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과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리니, 만일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아난아, 너의 말이면 그가 믿을 것이니, 왜냐 하면 네가 지나간 옛적 5백 세 동안에 수발타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 사랑하는 애정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인연으로 너의 말을 믿을 것이니라."
  그 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수발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드실 것이니,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아난이여. 제가 지금 여래께서 계신 곳에 가겠습니다."
  아난은 수발타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수발타는 문안을 여쭙고 이렇게 말하였다.
   
 
[904 / 909] 쪽  
  "구담이여, 제가 지금 물으려 하오니, 제 뜻을 따라 대답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발타여, 지금이 바로 그 때니, 그대의 마음대로 물으라. 나는 방편으로 그대의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음은 모두 지난날에 지은 업의 인연이니, 만일 계행을 지니고 정진하여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받으면 본래의 업이 없어지고, 본래의 업이 다하면 모든 고통이 멸하고, 고통이 멸하면 곧 열반을 얻는다' 하오니, 이 이치가 어떠하오니까?"
  "선남자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에게 갈 것이요, 가서는 물을 것이다.
  '당신이 참으로 이런 말을 하였는가?'  
  그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였소. 왜냐 하면 구담이여, 내가 보니 중생들이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재물이 넉넉하고 몸이 자재한 이가 있으며, 또는 선한 일을 닦으면서도 빈궁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갖은 애를 써서 재물을 구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구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얻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아니하여도 도리어 단명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살생을 좋아하여도 장수하는 이가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범행을 깨끗이 닦고 정진하며, 계행을 지니면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중생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지난날의 본래 업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수발타여, 나는 다시 묻을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과거의 업을 보았는가? 만일 과거의 업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가. 현재의 고행으로 얼마나 깨뜨릴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하고 다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한다면 온갖 것이 다하느냐?'  
  저 사람이 '나는 진실로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하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비유를 말하겠노라.
   
 
[905 / 909] 쪽  
  '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았을 때에 집안 권속들이 의사를 청하여 살을 뽑게 하였고, 살을 뽑은 후에 몸이 편안해졌다면 10년 후에도 이 사람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오. 이 의사가 나의 독한 살을 뽑고 약을 붙여 주었으므로 나의 살 맞은 자리가 나아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은 과거의 본래 업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의 고행으로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아는가?'  
  저가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당신도 지금 과거의 본래 업이 있다고 하면서, 무슨 연고로 나의 과거 업을 책망하는가? 구담의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호화롭게 자재함을 보거든,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서 보시하기를 좋아한 줄을 알라 하였으니, 이런 것이 과거의 업이 아닌가?'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대여, 그렇게 아는 것은 비겨서 아는 것[比知]이요, 참으로 아는 것[眞知]이라 하지 않느니라. 나의 불법에는 혹은 인으로 말미암아 과를 알기도 하고, 혹은 과를 따라서 인을 알기도 하는 것이며, 나의 불법 중에는 과거의 업도 있고 현재의 업도 있거니와, 그대는 그렇지 아니하여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의 업은 없으며, 그대들의 법에는 방편을 따라서 업을 끊지 않거니와, 나의 법은 그렇지 아니하며, 방편으로 끊느니라. 그대는 업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다한다 하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번뇌가 다하여야 업과 고가 다한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그대의 과거의 업을 책망하는 것이라.'  
  저 사람이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나는 실로 알지 못하거니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요, 스승이 이런 말을 한 것이므로 나는 허물이 없노라' 하면, 나는, '그대의 스승이 누구냐?' 하겠고, 저가 대답하기를 '부란나요'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은 과거의 업을 아느냐고 낱낱이 묻지 않았느냐. 그대의 스승이 만일 나는 알지 못하노라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의 말을 믿으며, 만일 내가 아노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하품 고[下苦]의 인연으로 중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중품 고의 인연으로 하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상품 고의 인연으로 중품과 하품의 고도 받나이까?) 하지 않았느냐.  
   
 
[906 / 909] 쪽  
  만일 아니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는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가 아니라고 하나이까?) 할 것이며, 또 묻기를 (이 현재의 괴로움이 과거에 있었나이까? 만일 과거에 있었다면, 과거의 업은 다 없어졌을 것이요, 만일 다 없어졌다면, 어찌하여 또 오늘의 몸을 받나이까? 만일 과거에는 없었고 현재에만 있다면, 어찌하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과거의 업이라 하나이까?) 할 것이니라.
  그대여, 만일 현재의 고행이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안다면, 현재의 고행은 또 무엇으로 깨뜨리겠는가. 만일 깨뜨리지 못한다면 괴로움이 항상할 것이요, 괴로움이 만일 항상하다면, 어떻게 괴로움에서 해탈함을 얻는다 하겠는가. 만일 다른 행이 고행을 깨뜨릴수 있다면 과거에 이미 다하였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그대여, 이런 고행은 즐거운 업으로 하여금 괴로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또 괴로운 업으로 하여금 즐거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업으로 하여금 받지 않는 과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업보로 하여금 다음 생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다음 생의 업보로 하여금 현재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업보로 하여금 없는 보[無報]를 짓게 할 수 있는가. 결정된 보로 없는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없는 보로 결정된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할 것이니라.'
  저가 만일 '구담이여, 그러할 수가 없노라'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여, 만일 그러할 수 없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 고행을 받는가. 그대는 결정코 과거의 업과 현재의 인연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할지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업을 내고, 업으로 인하여 보를 받는다고 했느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현재의 인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중생이 비록 과거에 장수할 업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현재에 음식의 인연을 힘입어야 하느니라.
  그대가 만일 말하기를, 중생이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음이 결정코 과거의 본래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는다 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여,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을 위하여 원수를 없애고, 그 인연으로 재물을 많이 받았다면, 이 재물로 인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
   
 
[907 / 909] 쪽  
  나니, 이런 사람은 현재에 즐거운 인을 짓고, 현재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왕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그 인연으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이 사람은 현재에 괴로운 인을 짓고, 현재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 4대(大)와 시절과 토지와 인민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으로 인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였노라.
  만일 업을 끊는 인연의 힘으로 해탈을 얻는다 할진대, 모든 성인이 해탈을 얻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모든 중생의 과거의 본래 업이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성인이 도를 닦을 때에, 이 도가 능히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업을 막는다 했느니라. 만일 고행을 받는 것으로 도를 얻는다 하면, 온갖 축생들이 다 도를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요, 몸을 조복할 것이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나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숲을 찍을 것이언정 나무를 찍을 것이 아니라 하였으니, 왜냐 하면 숲으로부터 공포가 생길지언정 나무로부터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몸을 조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라 하나니, 마음은 숲에 비유한 것이고, 몸은 나무에 비유한 것이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는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마음을 먼저 조복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먼저 생각하오니, 욕계는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지 아니하옵기에 색계가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한 줄을 관찰하였사오며, 이런 관찰을 하여 마치니, 욕계의 결박이 끊어졌고 색처(色處)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색계를 관찰하니, 색계가 무상하여 등창과 같고 창질과 같고 독약과 같고 화살과 같사오며, 무색계가 항상하고 청정하고 고요하더이다. 이렇게 관찰하여 마치니, 색계의 결박이 다하였고 무색계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생각[想]을 관찰하니, 곧 무상하고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더이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비상비비상처를 얻었사오니, 이 비상
   
 
[908 / 909] 쪽  
  비비상처는 곧 일체지며 고요하며 청정하여 타락함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오매, 그러므로 제가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가 어찌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다 하겠느냐. 그대가 얻은 비상비비상정도 오히려 생각이라 이름하는 것이요, 열반이라야 생각이 없는 것이거늘, 그대가 어떻게 열반을 얻었다 말하겠느냐. 선남자여, 그대가 먼저는 능히 거친 생각을 꾸짖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미세한 생각에 애착하느냐. 이 비상비비상처를 꾸짖을 줄을 알지 못하므로, 생각을 이름하여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스승인 울두람불은 영리하고 총명하지만 그래도 이 비상비비상처를 끊지 못하고 나쁜 몸을 받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일까 보냐."
  "세존이시여, 어찌하오면 모든 유를 능히 끊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실상(實相)을 관찰하면, 이 사람이 능히 모든 유를 끊게 되느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실상이라 이름하나이까?"
  "선남자여,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之相]을 실상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양이 없는 모양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법이 제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저와 남의 모양도 없고 인이 없는 모양도 없으며, 짓는 모양도 없고 받는 모양도 없고, 짓는 이의 모양도 없고 받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법의 모양도 없고 법 아닌 모양도 없으며, 남녀 모양도 없고 장정 모양도 없으며, 티끌 모양도 없고 시절 모양도 없으며, 자기를 위하는 모양도 없고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고, 자기와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으며, 있는 모양도 없고 없는 모양도 없으며, 나는 모양도 없고 내는 이 모양도 없으며, 인(因) 모양도 없고 인의 원인 모양도 없고, 과(果) 모양도 없고 과의 결과 모양도 없고, 낮과 밤의 모양도 없고 어둡고 밝은 모양도 없으며, 보는 모양도 없고 보는 이 모양도 없으며, 듣는 모양도 없고 듣는 이 모양도 없으며, 깨닫는 모양도 없고 깨닫는 이 모양도 없으며, 보리의 모양도 없고 보리를 얻은 이 모양도 없으며, 업 모양도 없고  
   
 
[909 / 909] 쪽  
  업의 주인 모양도 없으며, 번뇌 모양도 없고 번뇌 주인 모양도 없나니, 선남자여, 이런 모양들이 멸한 곳을 진실한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거든,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 하나니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 필경지(畢竟智)라 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실상·법계·필경지·제일의제·제일의공을 하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성문보리(聲聞菩提)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연각보리(緣覺菩提)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느니라."
  이 법을 연설할 때에, 10천 보살이 1생에 실상을 얻었고, 1만 5천 보살이 2생에 법계를 얻었고, 2만 5천 보살이 필경지를 얻었고, 3만 5천 보살이 제일의제를 깨달았으니, 이 제일의제를 제일의공이라고도 하고, 수릉엄삼매라고도 하느니라. 4만 5천 보살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이 허공삼매를 광대(廣大)삼매라고도 하고, 지인(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5만 5천 보살이 불퇴인(不退忍)을 얻었으니, 이 불퇴인을 여법인(如法忍)이라고도 하고, 여법계(如法界)라고도 하느니라. 6만 5천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으니, 이 다라니를 대염심(大念心)이라고도 하고, 걸림없는 지혜라고도 하느니라. 7만 5천 보살이 사자후(師子吼)삼매를 얻었으니, 이 사자후삼매를 금강삼매라고도 하고, 오지인(五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8만 5천 보살이 평등삼매를 얻었으니, 이 평등삼매를 대자대비라고도 하느니라.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연각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내었고, 세간의 여자와 천상의 여자 2만억 사람들이 현재에서 여인의 몸을 변하여 남자의 몸을 얻었고, 수발타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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