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2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⑥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아홉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는 데는 처음에 다섯 가지 마음을 내어 모두 성취하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믿음[信]과 곧은 마음[直心]과 계행[戒]과 선지식을 친근함[親近善友]과 많이 아는 것[多聞]이니라.
  어떤 것을 믿음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삼보를 믿고, 보시에 과보가 있음을 믿고, 두 가지 진실한 이치[二諦]를 믿고, 1승의 도에 다른 길이 없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빨리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이 분별하여 3승을 만든 것을 믿고, 제일의제를 믿고, 좋은 방편을 믿음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믿음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믿는 이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모든 중생이 깨뜨리지 못하며, 이렇게 믿으므로 성인의 성품을 얻어 보시를 행하면, 많거나 적거나 모두 대반열반에 가까워지고 생사에 떨어지지 아니하니라. 계행 가짐과 많이 들음과 지혜도 그와 같나니, 이것을 믿음이라 하느니라. 비록 이런 믿음이 있더라도 또한 견해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첫 번째 일을 성취함이니라.
  어떤 것을 곧은 마음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대하여 질직한 마음을 짓나니, 모든 중생들은 인연을 만나면 아첨하고 굽은 마음을 내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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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법이 다 인연인 줄을 아는 까닭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중생들의 나쁜 허물을 보더라도 말하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번뇌가 생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만일 번뇌가 생기면 나쁜 갈래에 떨어지느니라. 보살이 만일 중생에게 선한 일이 있음을 보면 칭찬하나니, 무엇을 선한 일이라 하는가. 불성을 말함이니라. 불성을 칭찬하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살마하살이 불성을 칭찬하여 한량없는 중생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 하시오나, 그 뜻이 그렇지는 않겠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처음 열반경을 펴실 적에 세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하나는 어떤 병난 사람이 용한 의원과 약과 간병할 사람을 만나면 병이 쉽게 나으려니와, 만나지 못하면 나을 수 없고, 둘은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을 수 없고, 셋은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나을 것이니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묘한 법문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려니와, 만나지 못하면 내지 못하나니, 이들은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이요, 둘은 아무리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들어도 보리심을 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여도 내지 못하나니 그들은 일천제요, 셋은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나니, 그들은 보살이라' 하셨나이다. 만일 만나거나 만나서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고 할진댄, 어찌하여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성을 칭찬함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한다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하시거나, 이 이치도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이런 사람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오니, 일천제들도 불성이 있으므로 법문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일천제라 하는가. 선근을 끊은 것이라' 하였사오나, 이 이치도 그렇지 않사오니, 왜냐 하면 불성을 끊지 못하는 까닭이옵니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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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불성은 끊을 수 없삽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근을 끊었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예전에 12부경을 말씀하실 적에 선근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무상한 것이라. 항상한 것은 끊어지지 않고 무상한 것은 끊어진다 하셨나이다. 무상한 것은 끊어질 수 있기에 지옥에 떨어지려니와, 항상한 것은 끊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지옥에 떨어짐을 막지 못하오리까. 불성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일천제가 아니온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일천제라는 말을 하시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불성을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다 하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말씀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4대하가 아뇩달못에서 흘러내리는데, 천상 사람 세간 사람이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근원으로 돌아간다 하오면, 옳지 않나이다. 보리심도 그와 같아서 불성이 있는 이는 법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계행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거나, 보시하거나 보시하지 않거나, 닦거나 닦지 않거나, 지혜롭거나 지혜롭지 못하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이다. 세존이시여, 우다연산에서 뜬 해가 남쪽까지 왔다가 생각하기를, 나는 서쪽을 가지 않고 도로 동쪽으로 가겠다 한다면 옳지 아니한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법을 듣지 않고 계율을 지니지 않고 보시하지 않고 닦지 않고 지혜롭지 않다고 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함은 옳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여래께서 인과의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말씀하거니와, 그 이치도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만일 우유 속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타락이 생기지 못할 것이며, 니구타 씨에 다섯 길[五丈]만큼 자랄 성품이 없으면 다섯 길 되는 나무를 내지 못하리이다. 불성 가운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성품이 없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오리까. 이런 뜻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하심이 이런 이치와 어떻게 어울리겠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찬탄하였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세상에는 두 사람이 매우 희유하여 우담화(優曇花)와 같으니라. 하나는 나쁜 법을 행하지 아니함이요, 다른 하나는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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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참회함이니, 이런 사람은 대단히 희유하니라.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은혜를 짓는 이요, 하나는 은혜를 생각하는 이니라.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새로운 법을 물어 배우는 이요, 하나는 옛것을 익히어 잊어버리지 않는 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새것을 짓는 이요, 하나는 옛것을 닦는 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법 듣기를 좋아하고 하나는 법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다. 또 두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질문을 잘하는 이요, 다른 하나는 답변을 잘하는 이다. 질문을 잘하는 이가 그대요, 답변을 잘하는 이는 여래니라. 선남자여, 잘 물음을 인하여 위없는 법수레를 운전하며, 12인연의 나무를 시들게 하며, 가없는 생사의 큰 강을 건너며, 마왕 파순과 더불어 싸우며 파순이 세운 전승의 깃발을 꺾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저 말한 것처럼 세 가지 병자 중에 용한 의원과 간병하는 이와 약을 만나거나 또 만나지 않고 병이 쾌차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만나거나 못 만나거나 간에 수명은 결정된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이 사람은 한량없는 지난 세월에 세 가지 선한 일을 닦았으니, 상품·중품·하품이니라. 이렇게 세 가지 선을 닦았으므로 수명이 결정된 것이니, 저 북구로주 사람이 수명이 천 년인 것 같아서, 병에 걸린 이가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하는 이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모두 병이 낫는 것이니, 왜냐 하면 결정한 수명을 얻은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것처럼 병난 이가 만일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할 이를 만나면 병이 낫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선남자여, 이런 사람은 수명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목숨은 비록 다하지 아니하였으나 아홉 가지 인연을 만나면 목숨이 단명하는 것이니라. 무엇이 아홉인가. 하나는 먹어서 편안치 못할 줄을 알면서도 먹는 것이요, 둘은 많이 먹음이요, 셋은 먹은 것이 채 소화되기 전에 또 먹는 것이요, 넷은 대소변이 때를 따르지 못함이요, 다섯은 병이 났을 때에 의원의 말을 따르지 아니함이요, 여섯은 간병하는 이의 시킴을 따르지 않음이요, 일곱은 억지로 참고 토하지 않음이요, 여덟은 밤에 다님이니, 밤에 다니므로 나쁜 귀신이 침노함이요, 아홉은 방사(房事)가 너무 과도함이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용한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나을 것이요,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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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모두 낫지 못한다 함은 무슨 뜻인가. 사람의 수명이 다하였으면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쾌차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수명이 다한 연고니라.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의원과 약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건, 병이 낫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중생도 그와 같아서 보리심을 낸 이는 선지식과 부처님과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마땅히 보리를 이룬다는 것이니, 그 까닭은 능히 보리심을 낸 까닭이며, 북구로주 사람의 수명이 결정된 것 같으니라. 내가 말하기를, 수다원으로부터 내지 벽지불이 선지식이나 부처님과 보살이 말씀하는 깊은 법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고, 만일 부처님이나 보살이 말씀하는 깊은 법을 듣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다 함은 저 수명이 결정되지 아니한 사람이 아홉 가지 인연으로 목숨이 단명하는 것과 같나니, 저 병난 사람이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쾌차하고, 만나지 못하면 낫지 못하는 것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을 들으면 보리심을 내고, 만나지 못하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만일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모두 보리심을 내지 못한다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선남자여, 일천제들이 선지식·부처님·보살을 만나서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일천제의 마음을 여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선한 법을 끊은 까닭이니라. 일천제들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함은 무슨 까닭인가. 만일 보리심을 내면 다시 일천제라 이름하지 않음이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는가. 일천제들은 진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나니, 마치 수명이 다한 이는 비록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간병할 이를 만난다 하더라도 쾌차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수명이 다한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일천(一闡)은 믿음[信]이란 말이요, 제(提)는 갖추지 못하였다[不具]는 말이니, 믿음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이름하거니와, 불성은 믿음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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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겠는가. 일천은 좋은 방편[善方便]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좋은 방편 닦음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좋은 방편을 닦음이 아니며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정진[進]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니, 정진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정진이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생각한다[念]는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생각함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생각함이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선정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선정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선정이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지혜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지혜를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거니와, 불성은 지혜가 아니요 중생은 갖춤이 아니라, 갖추지 못하였거니 무엇을 끊겠는가. 일천은 무상한 선[無常善]이란 말이요 제는 갖추지 못하였단 말이니, 무상한 선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일천제라 하느니라. 불성은 무상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선하지 않음도 아니니, 왜냐 하면 선한 법은 반드시 방편으로부터 얻거니와, 불성은 방편으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선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선하지 않음도 아니라 하는가. 능히 선한 과보를 얻는 까닭이며, 선한 과보는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또 선한 법은 나면서 얻는 것이거니와 불성은 나면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선이 아니며, 나면서 얻은 선한 법을 끊었으므로 일천제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일천제가 불성이 있다면 어째서 지옥의 죄보를 막지 못하는가' 하지만 선남자여, 일천제 가운데는 불성이 있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어떤 왕이 공후(箜篌)의 소리를 들으니 청아하고 미묘하여 마음이 쏠리고, 즐겁고 사랑하는 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에게 묻기를 '이 아름다운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하였다. 대신은 '아름다운 소리가 공후에서 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또 소리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신은 공후를 가져다가 왕의 앞에 놓고 말하기를 '대왕이여, 이것이 그 소리이니다' 하였다. 왕은 공후에게 말하기를 '소리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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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를 내라' 하였으나, 공후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왕은 공후의 줄을 끊었으나 그래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 가죽과 나무까지 모두 깨뜨리면서 소리를 찾아보았으나 소리는 없었다. 그러자 왕은 어째서 거짓말을 하느냐고 대신을 꾸짖었다.
  대신은 왕에게 말하였다. '소리를 내게 하는 방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오니, 반드시 공교로운 수단과 여러 가지 인연을 말미암아서야 소리가 나나이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머물러 있는 데가 없고, 공교로운 방편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찾아봄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거니와 일천제는 불성을 보지 못하거니 어떻게 나쁜 갈래의 죄를 막을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일천제가 만일 불성이 있는 줄을 믿으면 나쁜 갈래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일천제라고 이름하지도 아니하려니와, 자기에게 불성이 있음을 믿지 아니하므로 3악도에 떨어지고, 3악도에 떨어지므로 일천제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만일 우유에 타락의 성품이 없으면 타락이 생기지 아니할 것이요, 니구다 씨에 다섯 길 될 성품이 없으면 다섯 길의 나무가 생기지 못하리라 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하려니와, 지혜 있는 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성품이란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우유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으면, 여러 가지 인연의 힘을 가자할 것이 아니니, 선남자여, 물과 우유를 섞어서 한 달 동안을 그냥 두어도 타락이 되지 못하거니와, 파구수(頗求樹)의 즙을 한 방울만 젖속에 떨어뜨리면 곧 타락이 되나니, 만일 본래 타락이 있었으면 어찌 다른 인연을 반연하겠느냐.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인연을 반연하므로 보게 되는 것이요, 모든 인연을 반연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느니라. 만일 모든 인연을 반연한 뒤에야 이룬다면 이것은 불성이 없음이니, 성품이 없음으로써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남의 선한 인을 칭찬하고 남의 단처를 말하지 아니함을 말하여 질직한 마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보살의 질직한 마음이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항상 악한 일을 하지 아니하며, 설사 허물이 있더라도 즉시 참회하고, 스승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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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들에게 숨기지 아니하며,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책망하여 다시 범하지 아니하며, 가벼운 허물에도 중한 죄를 지은 줄 생각하는 것이니라. 만일 다른 이가 물으면 참으로 범하였노라 대답하고, 그 죄가 좋으냐고 물으면 좋지 않다고 하며, 또 묻기를 잘한 짓이냐 하면 잘못한 짓이라 대답하고, 또 묻기를 그 죄가 선한 결과냐 선하지 아니한 결과냐 하면, 이 죄는 선한 결과가 아니라 대답하며, 또 묻기를 이 죄를 누가 지었는가, 부처님이나 교법이나 스님들이 지은 것 아니냐 하면, 부처님·교법·스님들이 지은 것이 아니요, 내가 지었노라 대답하느니라. 이것은 번뇌로 모여진 것이나 곧은 마음인 연고로 불성이 있는 줄을 믿고, 불성을 믿으므로 일천제라 이름할 수 없으며, 곧은 마음이 있으므로 부처님의 제자라 하리니, 설사 중생의 의복과 음식과 좌복과 의약(醫藥) 따위를 수없이 받더라도 많다 할 것이 아니니, 이런 것을 보살의 질직한 마음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계행을 닦는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받아 지님은 천상에 나기 위함이 아니며 공포를 위함이 아니며, 내지 외도들의 개의 계[狗戒]·닭의 계[鷄戒]·소의 계[牛戒]·꿩의 계[雉戒]를 받지 않고, 파계를 짓지 아니하며, 모자라는 계[缺戒]를 짓지 아니하며, 흠 있는 계를 짓지 아니하며, 잡계(雜戒)를 짓지 아니하며, 성문의 계를 짓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의 계와 시라(尸羅)바라밀 계를 받아 가지어 구족계(具足戒)를 얻고도 교만을 내지 아니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세 번째 계를 갖추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선지식을 친근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항상 중생을 위하여 선한 도를 말하고 나쁜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나쁜 도를 선한 과보가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몸이 곧 모든 중생의 참된 선지식이니, 그러므로 부가라(富伽羅) 바라문이 가진 나쁜 소견을 끊었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나를 친근하는 이는 비록 지옥에 태어날 인연이 있더라도 천상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저 수나찰다(須那刹多) 등이 지옥에 떨어질 것인데, 나를 보았으므로 지옥 인연을 끊고 색계천에 난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과 목건련이 있지만 중생의 진정한 선지식이라 이름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일천제의 마음을 내게 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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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국에 있을 적에 사리불이 두 제자에게 하나는 백골을 관하게 하고, 하나는 숨을 세는 관법[數息觀]을 가르쳤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 모두 선정을 얻지 못하였고, 이런 인연으로 잘못된 소견을 내어 열반이라는 무루의 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만일 있다면 내가 얻었어야 할 것이니, 왜냐 하면 나는 받은 계율을 잘 지킨 까닭이라고 하였다.
  비구들이 잘못된 소견을 낸 것을 보고, 사리불을 불러서 이렇게 꾸중하였다. '네가 옳게 시키지 못하였으니, 두 제자에게 뒤바뀌게 법을 말한 것이다. 그 두 사람의 성품이 각각 다르니, 하나는 빨래하던 이요, 다른 하나는 은장이다. 은장이에는 숨을 세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빨래하던 이에게는 백골관을 시켜야 할 것인데, 네가 잘못 가르쳐서 그 두 사람이 잘못된 소견을 내었느니라.' 그러고 내가 두 사람의 정도에 알맞게 법을 말하여 주었더니, 두 사람이 듣고 아라한과를 얻었으므로 내가 모든 중생에게 진정한 선지식이 되는 것이요, 사리불이나 목건련이 아니니라.
  만일 중생으로서 매우 중대한 번뇌에 속박된 이가 나를 만나면 나는 방편으로써 그를 끊게 하나니, 나의 동생 난타가 큰 탐욕이 있는 것을 내가 가지가지 방편으로 끊어 주었고, 앙굴마라는 지독하게 성내는 일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서 성내는 마음이 끊어졌고, 아사세왕은 매우 어리석었으나 나를 본 인연으로 우치한 생각이 없어졌고, 파희가(婆熙伽) 장자는 한량없는 겁 동안에 두터운 번뇌가 쌓였건만, 나는 보고서 끊어졌느니라. 아무리 추악하고 미천한 사람이라도 나를 친근하여 제자가 된 이는, 그러한 인연으로 모든 천상 사람 세간 사람의 공경과 친애함을 받느니라.
  시리국다(尸利鞠多)는 잘못된 소견이 치성하더니, 나를 본 인연으로 나쁜 소견이 소멸되었으며, 나를 봄으로써 지옥의 인을 끊어 버리고 천상에 태어나는 인연을 지은 이는 기허전다라(氣噓旃陀羅)요, 목숨을 마치려 할 적에 나를 보고 목숨을 이은 이는 교시가요, 마음이 미쳐서 산란하다가 나를 보고서 본마음을 회복한 이는 수구담미(瘦瞿曇彌)요, 백정의 아들로서 나쁜 업을 많이 짓다가 나를 보고 아주 버린 이는 천제(闡提) 비구요, 나를 본 인연으로 몸과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치 아니하려 한 이는 초계(草繫) 비구니라. 이런 뜻으로, 아난 비구는 반쯤 범행(梵行) 갖는 이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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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이라 하였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범행을 구족한 이라야 선지식이라 이름한다 하노라.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네 번째 선지식 친근함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쓰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12부경은 그만두고 비불략(毘佛略)만을 배워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함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12부경은 그만두고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쓰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면, 그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이 경전의 전체는 아니더라도 네 글귀 한 게송만을 배워 가지거나, 다시 이 게송도 그만두고 여래가 항상 머물러 성품이 변하지 아니함을 배워 지니어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또 이 일은 그만두고 여래가 항상 법을 말씀하지 않는 줄을 알아도, 보살이 많이 앎을 구족하였다 하나니, 왜냐 하면 법이 성품 없음을 아는 까닭이니라. 여래가 비록 온갖 법을 말하여도 항상 말하지 않는 줄을 알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는 데, 다섯 번째 많이 앎을 구족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남자 선여인이 대반열반을 위하여 이 다섯 가지를 구족히 성취하면, 짓기 어려운 일을 지을 것이요, 참기 어려운 일을 참을 것이요,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짓기 어려운 일을 짓는다 하는가. 어떤 이가 참깨 하나를 먹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단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믿어 한량없는 아승기겁이 되도록 항상 참깨 한 개를 먹고, 불에 들어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단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겁 동안에 아비지옥에 있어서 맹렬한 불더미에 들어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짓기 어려운 일을 짓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참기 어려운 일을 참는다 하는가. 만일 손이나 작대기나 칼이나 돌로 때리는 고통을 받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몸으로 그런 일을 받으면서도 괴롭게 여기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참기 어려움을 참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한다 하는가. 만일 나라나 성이나 처자나 머리나 눈이나 뇌수(腦髓)를 남에게 보시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단 말을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자기가 가진 나라나 성이나 처자나 머리·눈·뇌수를 다른 이에게 보시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한다 하느니라.
  보살은 비록 짓기 어려운 일을 지었더라도 내가 그런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며, 보시하기 어려운 것을 보시하고도 역시 그와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부모가 외아들을 두었으면, 소중하게 사랑하여 좋은 의복과 좋은 음식으로 때를 따라 공급하고 모자람이 없게 하며, 설사 그 아들이 부모에게 버릇없는 마음으로 욕설을 하더라도, 부모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여워하지 아니하고, 내가 아들에게 의복과 음식을 공급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 보기를 외아들같이 하나니, 아들이 병이 나면 부모도 병이 나고, 의원과 약을 구하여 정성으로 치료하며, 병이 나은 뒤에도 아들의 병을 치료하여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번뇌의 병에 걸린 것을 보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을 말해 주어 번뇌를 끊게 하고, 번뇌가 끊어진 뒤에도 내가 중생을 위하여 번뇌를 끊게 하였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나니, 만일 그런 생각을 내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오직 생각하기를 한 중생에게도 내가 법을 말하여 번뇌를 끊게 한 일이 없다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에게 대하여 성내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공삼매(空三昧)를 잘 닦은 까닭이니라. 보살은 공삼매를 닦았거니 누구에게 성을 내고 기뻐함을 내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산에 있는 나무들이 불에 타거나 사람이 찍거나 물에 떠내려가더라도, 이 나무가 누구에게 성을 내며 기뻐함을 내겠는가.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성도 내지 아니하고 기쁨도 내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공삼매를 닦은 까닭이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부터 스스로 공하나이까, 공으로써 공하게 하므로 공하나이까? 만일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공을 닦은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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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함을 볼 것이 아니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을 닦아서 공함을 본다 하시오며, 성품이 만일 공하지 않다면, 비록 공을 닦더라도 공하게 할 수 없으리이다."
  "선남자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공한 것이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의 성품을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색의 성품을 얻을 수 없나니, 무엇을 색의 성품이라 하겠는가. 색의 성품은 지대·수대·화대·풍대가 아니며, 지대·수대·화대·풍대를 여의지도 아니하였고,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지도 아니하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것을 여의지도 아니하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거늘, 어떻게 색이 제 성품이 있다 하겠는가. 성품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공이라 하느니라.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서로 비슷한 것이 서로 계속하므로 범부들이 보고는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하지 않다고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은 다섯 가지를 갖추었으므로 법의 성품이 본래 공적함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모든 법의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로 본다면 이 사람은 사문이 아니며 바라문이 아니니, 반야바라밀을 닦지 못하며, 대반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며, 부처님과 보살들을 보지 못하리니, 그는 마군의 권속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 공하거니와, 보살이 공을 닦음으로 인하여 법의 공함을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모든 법의 성품이 무상한 까닭으로 멸(滅)이란 것이 능히 멸하듯이 만일 무상하지 않으면 멸이란 것이 멸할 수 없느니라. 함이 있는 법에는 나는 모양[生相]이 있는 까닭으로 생이란 것이 능히 내는 것이요, 멸하는 모양[滅相]이 있는 까닭으로 멸하는 것이 능히 멸하느니라. 모든 법에는 괴로운 모양[苦相]이 있는 까닭으로 고(苦)라는 것이 능히 괴롭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소금의 성질이 짜기 때문에 다른 것을 짜게 자며, 사탕의 성질이 달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달게 하며, 초의 성질이 시기 때문에 다른 것을 시게 하며, 새앙의 성질이 맵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맵게 하며, 가리륵(呵梨勒)의 성질이 쓰기 때문에 다른 것을 쓰게 하며, 암라 열매의 성질이 담백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담백하게 하며, 독약의 성질이 해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롭게 하며, 감로의 성질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하며, 다른 물건에 섞어도 죽지 않게 하느니라. 보살이 공을 닦음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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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같아서 공함을 닦는 까닭으로 모든 법의 성품이 공적한 것을 보느니라."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소금이 짜지 않은 물건을 짜게 하듯이, 공삼매를 닦는 것도 그와 같다면 이 삼매는 선한 것도 아니고 묘한 것도 아니어서, 성품이 뒤바뀌었을 것이며, 공삼매로써 공한 것만을 본다면 공이란 것은 없는 것이니 어떻게 보겠나이까?"
  "선남자여, 이 공삼매로는 공하지 아니한 법을 보아서 공하게 하거니와, 그러나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마치 소금이 짜지 않은 것을 짜게 하듯이, 공삼매도 그와 같아서 공하지 않은 것을 공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탐욕은 있는 성품이요 공한 성품이 아니니, 탐욕이 만일 공하다면 중생이 그 인연으로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요, 지옥에 떨어진다면 어찌하여 탐욕의 성품이 공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색의 성품은 있는 것이니, 무엇을 색의 성품이라 하는가. 뒤바뀐 것을 말함이니, 뒤바뀐 연고로 중생이 탐욕을 내느니라. 만일 색의 성품이 뒤바뀌지 않았다면,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탐욕을 내게 하겠는가. 탐욕을 내게 하므로 색의 성품이 있지 않은 것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다. 이런 뜻으로 공삼매를 닦음은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은 여인을 보면 여인이란 집착을 내거니와, 보살은 그렇지 아니하여 비록 여인을 보더라도 여인이란 집착을 내지 아니하며, 집착을 내지 아니하므로 탐욕이 생기지 아니하고, 탐욕이 생기지 아니하므로 뒤바뀐 것이 아니니라. 세상 사람들이 여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보살도 따라서 여인이 있다고 말하나니, 만일 남자를 보면서 여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뒤바뀜이니라. 그래서 내가 천제(闡提) 비구에게 말하기를 '만일 낮을 가지고 밤이라 한다면 그것이 뒤바뀜이요, 밤을 가지고 낮이라 한다면 그것도 뒤바뀜이 되려니와, 낮을 낮의 모양이라 하고 밤을 밤의 모양이라 하는 것이야 어찌 뒤바뀜이라 하겠는가'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보살의 9지(地)에 머문 이는 법의 있는 성품[有性]을 보나니, 이렇게 봄으로써 불성을 보지 못하거니와, 만일 불성을 본다면 다시 모든 법의 성품을 보지 아니하리라. 이러한 공삼매를 닦으므로 법의 성품을 보지 아니하며, 보지 아니하므로 불성을 보느니라. 불보살이 두 가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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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으니, 하나는 성품이 있다 함이요, 또 하나는 성품이 없다 함이라. 중생을 위하여 법의 성품이 있다 말하고, 현성들을 위하여는 법의 성품이 없다 말하느니라. 공하지 아니한 이로 법의 공함을 보게 하기 위하여서, 공삼매를 닦아 공함을 보도록 하며, 법의 성품이 없다는 이도 공삼매를 닦으므로 공한 것이니, 이런 뜻으로 공을 닦아서 공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공한 것만을 본다면, 공이란 것은 없는 법이니 어떻게 보겠느냐' 하거니와, 선남자여, 그러하니라.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볼 것이 없으며, 볼 것이 없다 함은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요, 있는 것이 없다 함은 곧 온갖 법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대반열반을 닦으므로 온갖 법에 대하여 보는 것이 없느니라. 만일 보는 것이 있다면 불성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닦지 못하여 대반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법의 성품이 있는 바가 없음을 보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다만 삼매를 봄으로써 공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반야바라밀도 공하고, 선정바라밀도 공하고, 정진바라밀도 공하고, 인욕바라밀도 공하고, 지계바라밀도 공하고, 보시바라밀도 공하며, 빛도 공하고 눈도 공하고 알음알이도 공하며, 여래도 공하고 대반열반도 공하니,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법이 다 공한 줄로 보느니라. 그래서 내가 가비라성에 있으면서 아난에게 말하기를 '너는 걱정하지 말고 슬피 울지 말라'라고 하였더니, 아난은 '세존이시여, 지금 나의 친속들이 모두 죽었사온데 어떻게 울지 않겠나이까. 여래께서 저와 같이 이 성에 났사오며, 마찬가지로 석가족의 친척이며 권속이온데, 어찌하여 여래는 수심이 없으시고 안색이 화평하나이까'라고 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또 말하기를, '너는 가비라성이 참으로 있는 줄로 보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적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너는 석가족이 모두 친속인 줄로 보지만, 나는 공삼매를 닦았으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그런 까닭으로 너는 걱정하거니와, 나는 안색이 화평한 것이다' 하였느니라. 여래와 보살들은 공삼매를 닦으므로 수심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아홉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최후로 열째 공덕을 구족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이 37도품(道品)을 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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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대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들어가고, 중생들을 위하여 대반열반경을 분별하여 해설하며 불성을 나타내나니,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과 벽지불과 보살이 이 말을 믿는 이는 모두 대반열반에 들어가려니와 믿지 않는 이는 생사에서 바퀴돌 듯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이 경에 대하여 공경하지 아니하겠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뒤에, 어떤 성문 제자가 어리석어서 계율을 파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며, 12부경을 버리고 여러 가지 외도의 경전을 읽고 외우며, 글짓고 글씨 쓰며,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받아 두면서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하리니, 이런 사람은 전단을 가지고 보통 나무로 바꾸며, 금을 놋쇠로 바꾸며, 은을 납으로 바꾸며, 비단을 삼베로 바꾸며, 감로를 독약으로 바꾸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전단을 보통 나무로 바꾼다 하는가. 나의 제자가 공양을 얻기 위하여 속인들에게 정법을 연설하거든 속인이 마음이 방일하여 들으려 하지 아니하면, 속인을 높은 곳에 앉게 하고 비구는 낮은 곳에 있으며, 여러 가지 맛나는 음식을 공급하더라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나니, 이런 것을 말하여 전단을 보통 나무로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금을 놋쇠로 바꾼다 하는가. 놋쇠는 빛·소리·향기·맛·감촉에 비유하고 금은 계율에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들이 빛 따위의 인연으로 계율을 파하는 것을 말하여 금을 놋쇠로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은을 납으로 바꾼다 하는가. 은은 열 가지 선한 일에 비유하고, 납은 열 가지 나쁜 일에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들이 열 가지 선한 일을 버리고 열 가지 나쁜 법을 행하는 것을 말하여 은을 놋쇠를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비단을 삼베로 바꾼다 하는가. 삼베는 남부끄럼[慚]도 없고 제부끄럼[愧]도 없는 데 비유하고, 비단은 남부끄러워하고 제부끄러워하는 데 비유한 것이니, 나의 제자가 남부끄럽고 제부끄러운 것을 버리고 남부끄럼도 모르고 제부끄럼도 모름을 익히는 것을 이름하여 비단을 삼베로 바꾼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감로를 독약으로 바꾼다 하는가. 독약은 가지가지의 이양에 비유하고 감로는 무루법에 비유함이니, 나의 제자가 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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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위하여서 속인들을 향하여 자기가 무루를 얻었노라 하는 것을 말하여 감로를 독약으로 바꾼다 하느니라.
  이런 나쁜 비구들을 위하여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염부제에 널리 유포하리니, 이 때에 나의 제자들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연설하여 선포하면 저 나쁜 비구들에게 살해를 받게 되리라. 그 나쁜 비구들도 여럿이 모이어 혹독한 규칙을 만들고 있으면서,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거나 쓰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는 이는, 모두 함께 있지도 아니하고 같이 앉아 말하지도 아니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기를 '열반경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견(邪見) 가진 자가 만든 것이니, 사견 가진 자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이고, 육사외도가 말한 것은 부처님의 경전이 아니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온갖 법이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니, 모든 법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겠는가. 부처님과 보살은 비구에게 가지가지 물건을 받아 두라고 허락하시었고, 6사들은 제자에게 모든 물건을 받아 두지 못하게 하였거늘, 이런 말을 어떻게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겠는가. 부처님과 보살은 제자들에게 다섯 가지 우유[牛味]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제정하지 아니하였고, 6사들은 다섯 가지 소금과 다섯 가지 우유와 비계와 피를 먹음을 허락하지 아니하는데, 이런 것을 먹지 말라 한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경전이라 하겠는가. 또 부처님과 보살은 3승의 법을 말씀하였는데, 이 경에서는 1승만을 말하여 대열반이라 말하였으니, 이런 것을 어떻게 부처님의 옳은 경전이라 하며, 부처님께서는 필경에 열반에 드셨는데, 이 경에서는 부처님께서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경은 12부 중에 들지 아니하며, 이것은 마군의 말이요 부처님의 말이 아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사람들은 나의 제자라고는 하더라도 이 열반경을 믿고 따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때를 당하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반구절만이라도 믿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내 제자며, 이렇게 믿음을 인하여 불성을 보아서 열반에 들게 되리라."
  그러나 광명변조고귀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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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여래께서 오늘에 대반열반경을 잘 열어 보이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을 인하여 대반열반경의 한 구절, 반구절이나마 깨달았사오며, 한 구절 반구절을 깨달았으므로 조그만치 불성을 보았사오니,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마땅히 대열반에 들어가겠사오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열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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