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23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⑤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무슨 법이 대반열반의 가까운 인연[近因]이 되겠는가 하면, 네 가지 법이 대반열반의 가까운 인연이 됨을 보살이 곧 알게 되느니라. 만일 말하기를 온갖 고행(苦行)을 닦음이 대반열반의 가까운 인연이 되리라 하면, 옳지 아니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네 가지 법을 여의고 열반을 얻는다 하면 그럴 이치가 없기 때문이니라. 무엇이 넷인가. 하나는 선지식을 친근함이요, 둘은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들음이요, 셋은 마음을 두어 생각함이요, 넷은 법대로 행을 닦음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병에 걸렸을 때에 열병이나 냉병이나 허로(虛勞)거나 학질이거나 귀신의 독이거나 간에 용한 의원에게 가면 의원이 병의 증세를 따라 약을 일러 줄 것이니, 그 사람이 정성으로 의원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약을 지어 처방대로 먹을 것이며, 먹으면 병이 나아서 몸이 편안하게 되느니라. 병에 걸린 사람은 보살에 비유하고, 용한 의원은 선지식에 비유하고, 의원의 말은 방등경전에 비유하고, 의원의 말을 잘 들음은 방등경전의 뜻을 생각하는 데 비유하고, 말한 대로 약을 짓는 것은 법대로 37조도품(助道品)을 수행하는 데 비유하고, 병이 나은 것은 번뇌를 멸하는 데 비유하고, 편안함을 얻음은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에 비유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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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왕이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어 백성들을 안락케 하려고 지혜 있는 신하에게 방법을 물었더니, 신하들이 선왕의 예전 법을 이야기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지성으로 믿고 행하여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니, 원수와 대적이 없어지고 백성들이 편안하여 걱정이 없었느니라. 선남자여, 왕은 보살에 비유하고 지혜 있는 신하는 선지식에 비유하고, 신하가 다스리는 법을 왕에게 말한 것은 12부경(部經)에 비유하고 왕이 듣고 지성으로 믿고 행한 것은 보살이 12부경의 깊은 이치를 뜻 두어 생각함에 비유하고, 법대로 나라를 다스림은 보살들이 법대로 수행하는 데 비유하였으니 곧 6바라밀이요, 6바라밀을 수행하므로써 원수와 대적이 없어진 것은 보살이 번뇌의 나쁜 대적을 멀리 여의는 데 비유하고, 안락하게 된 것은 보살이 대반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는데, 선지식이 말하기를, '네가 수미산에 가면 병이 나으리라. 왜냐 하면 거기에 유명한 약이 있기 때문이니 맛이 감로와 같으며, 그 약을 먹으면 온갖 병을 다 고치리라' 하였다. 그 사람이 지성으로 그 말을 믿고 수미산자락에 가서 감로약을 구하여 먹고 병이 쾌차하여 몸이 안락하였느니라. 문둥병 걸린 것은 범부에게 비유하고, 선지식은 보살마하살에 비유하고 지성으로 믿은 것은 4무량심에 비유하고, 수미산은 8성도에 비유하고, 감로의 맛은 불성에 비유하고, 문둥병이 쾌차한 것은 번뇌를 멸한 데 비유하고, 안락함을 얻은 것은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데 비유했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여러 제자들을 두었는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 이 사람은 밤낮으로 가르치고 게으르지 아니하나니,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믿는 이도 있고 믿지 않는 이도 있지만, 항상 교화하고 싫어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선지식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과 벽지불과 성문과 방등경전을 믿는 사람들이니라. 어째서 선지식이라 하는가. 선지식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10악업을 여의고 10선업을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지식은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하느니라. 어떤 것을 법대로 말하고 말대로 행한다 하는가. 자기가 살생하지 아니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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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생하지 않게 하며, 내지 자기가 바른 소견을 행하고 다른 이에게 바른 소견을 가르치나니, 만일 이렇게 하는 이는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스스로 보리를 닦고 다른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자기가 믿음과 계율과 보시와 많이 아는 것과 지혜를 닦아 행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믿고 계율을 가지고 보시하고 많이 알고 지혜를 닦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이라 함은 선한 법이 있기 때문이니, 무엇을 선한 법이라 하는가. 짓는 일이 스스로 즐겁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안락을 구하며, 다른 이의 허물을 보고도 단점을 말하지 않고 입으로는 선한 말만 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에 있는 달이 초하룻날부터 보름날까지는 점점 자라듯이 선지식도 그와 같아서 배우는 일에서 나쁜 법은 멀리하고 선한 법은 자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지식을 친근하는 이는 본래 계행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의 지견이 없었더라도 문득 있게 되며, 구족하지 못한 이는 구족하게 되나니, 왜냐 하면 선지식을 친근하는 까닭이며, 친근함을 인하여 12부경의 깊고 묘한 이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이 12부경의 깊은 뜻을 듣는 이는 법을 듣는다 이름할 것이며, 법을 듣는 것은 곧 대승의 방등경전이요, 방등경을 듣는 것을 참으로 법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참으로 법을 듣는 이는 대반열반경을 듣는 것이니 대반열반에 불성이 있거니와 여래는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아니함을 듣나니,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을 8성도라 이름하며, 8성도로써 능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끊으므로 법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법을 듣는다 함은 11공(空)을 말하나니, 이 모든 공함으로써 온갖 법에 모양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법을 듣는다 함은 초발심이라 이름하며 내지 구경의 아뇩다라삼먁보리라 이름하나니, 초발심을 인하여 대열반을 얻는 것이지만 들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요, 닦음으로써 대열반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난 사람이 의원의 가르침을 듣거나 약의 이름을 들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요,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듯 12인연의 깊은 법을 들음으로써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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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요, 마음을 가두어 잘 생각함으로써 번뇌를 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셋째 마음을 가두어 생각함이라 하느니라.
  또 마음을 가두어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3삼매니, 공삼매(空三昧)·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니라. 공삼매는 25유에 대하여 한 가지 실다움도 보지 않음이요, 무작삼매는 25유에 대하여 원하는 일을 짓지 않음이요, 무상삼매는 열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것이니, 빛깔 모양·소리 모양·향기 모양·맛 모양·닿이는 모양·나는 모양·멸하는 모양·남자 모양·여자 모양이라, 이 3삼매를 닦는 것을 보살의 마음을 가두어 생각함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법과 같이 수행한다 하는가. 법과 같이 수행함은 보시바라밀과 내지 반야바라밀을 수행함이니, 5음·12입·18계의 진실한 모양을 알며, 성문·연각·부처님이 다 같이 한길로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법이라 함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며,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으며,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괴롭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물러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대반열반의 깊은 뜻을 아는 이는 부처님들이 필경에 열반에 들지 않음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제일 진실한 선지식은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니, 왜냐 하면 항상 세 가지로 잘 제어하는 까닭이니라.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시종 부드러운 말[軟語]이요, 둘은 시종 꾸짖음[呵責]이요, 셋은 부드러운 말과 꾸짖음[軟語呵責]이니, 이런 뜻으로 보살과 부처님을 진실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은 큰 의원이므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병을 알고 약을 알아서 병에 맞추어 약을 주는 까닭이니라.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아서, 먼저 병의 증세를 보는데, 증세에 세 가지가 있으니, 풍병과 열병과 물병이니라. 풍병이 있는 이에게는 타락기름[酥油]을 주고 열병이 있는 이에게는 석밀(石蜜)을 주고 물병이 있는 이에게는 강즙[薑湯]을 주나니, 병의 근원을 알고 약을 주어서 낫게 하므로 용한 의원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범부에게 세 가지 병이 있음을 아나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니라. 탐욕의 병이 있는 이는 해골 모양을 관찰하게 하고, 성내는 병이 있는 이는 자비한 것을 관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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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어리석은 병이 있는 이는 12인연을 관찰하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뱃사공이 사람을 잘 건네주는 까닭으로 훌륭한 뱃사공이라 하나니,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중생을 건네주므로 선지식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리고 또 부처님과 보살을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법의 근본을 구족히 닦게 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설산은 가지각색 미묘한 약의 근본이 되듯이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 되나니, 이런 뜻으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설산에 훌륭한 약이 있으니 이름이 사가(娑呵)인데, 그 약을 보는 사람은 목숨이 한량없고 모든 병이 없으며, 네 가지 독이 있더라도 상하지 못하고, 약에 닿이는 이는 수명이 늘어서 120세를 살며, 생각하는 이는 숙명통을 얻느니라. 왜냐 하면 약의 힘인 까닭이니라.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만일 보는 이는 모든 번뇌가 소멸되며, 네 가지 마군이 있더라도 산란하게 하지 못하고, 접촉하는 이는 목숨이 단명하지 아니하여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나니, 접촉한다 함은 부처님 곁에서 묘한 법을 듣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향산 속에 아뇩달못이 있으며, 이 못으로부터 4대하(大河)가 흐르니, 항하(恒河)와 신두하(辛頭河)와 사타하(私陀河)와 박차하(博叉河)니라. 세간 중생들이 항상 말하기를, 죄를 지은 이가 이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죄가 소멸된다고 하느니라. 이 말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함을 알아야 하거니와, 이 밖에 어떤 것이 진실한가. 부처님과 보살들이 진실하니, 그 까닭은 만일 사람이 그를 친근하면 모든 죄악이 소멸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땅에 있는 약풀이나 모든 숲이나, 곡식이나 감자나 꽃과 과일들이 가뭄을 만나서 말라 죽을 적에, 난다용왕과 우파난다용왕이 중생을 가엾이 여겨서 바다에서 나와 모든 숲과 온갖 곡식과 초목들이 다시 소생시키느니라.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있는 선근이 소멸하려 할 때에 부처님과 보살이 자비한 마음으로 지혜 바다로부터 감로 비를 내리어 중생들로 하여금 열 가지 선한 법을 도로 얻게 하나니, 이런 뜻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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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면서 병난 사람만 보고, 문벌과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모두 다스리매 세상 사람들이 훌륭한 의원이라 하나니,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번뇌의 병이 있는 것만 보고, 문벌이나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고 자비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거든, 중생들이 듣고 번뇌의 병이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이런 것을 말하여 선지식을 친근한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깝게 된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보살이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는가. 모든 중생이 법을 들은 까닭으로 신근(信根)을 구족하고, 신근을 얻은 까닭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즐거이 행하여 수다원과나, 내지 부처의 과보를 얻게 되나니, 그러므로 선한 법을 얻는 것은 모두 법을 들은 인연의 힘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어떤 장자가 외아들을 다른 지방에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무역하게 하면서 도로가 통하고 막힌 데를 일러 주고, 또 경계하기를 '만일 기생 따위를 만나더라도 사랑하지 말라, 만일 사랑하면 몸을 망치고 생명이 위험하며 재물을 잃게 되느니라. 또한 나쁜 사람들도 사귀지 말라' 하거든,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재물을 많이 얻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함도 그와 같아서, 여러 중생과 사부대중에게 길이 통하고 험한 것을 보여 주거든, 대중들이 법을 들은 까닭으로 나쁜 짓을 여의고 선한 법을 구족하나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밝은 거울로 사람의 얼굴을 비치면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법을 듣는 거울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비치기만 하면 선한 일 나쁜 일이 분명히 나타나고 가리우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장사꾼이 보배 있는 섬에 가려 하면서 길을 모르는 것을 다른 이가 일러 주면, 그 사람이 그 말대로 보배 섬에 가서 한량없는 보배를 얻게 되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선한 곳에 가서 도의 보배를 얻으려 하면서 길을 모르는 것을 보살이 일러 주면 중생이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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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따라 선한 곳에 가서 위없는 대반열반의 보배를 얻게 되나니,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술취한 코끼리가 미친 듯이 포악하여 만나는 대로 살해하거든, 코끼리 길들이는 사람이 굵은 쇠갈고리로 정수리를 찍으면 이내 길들어 사나운 성질이 없어지듯이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취하여 나쁜 짓을 하려 할 때에 보살이 법의 갈고리로 찍어서 머물게 하면 다시는 나쁜 짓을 하려는 마음은 일으키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에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제자들이 전일한 마음으로 12부경을 들으면 5개(蓋)를 여의고 7각분(覺分)을 닦으리라' 하였으니, 이렇게 7각분을 닦으므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니라. 법을 들은 까닭으로 수다원들이 공포를 여의나니, 왜냐 하면 수달 장자가 중병에 걸려서 매우 두려워하는 것을 사리불이 수다원에게 네 가지 공덕과 열 가지 안위(安慰)가 있음을 말하였더니, 그 말을 듣고는 두려움이 없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하니 왜냐 하면 법눈을 뜨게 하는 까닭이니라. 세상에 세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눈이 없고 한 사람은 눈이 하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이 둘이었느니라. 눈이 없는 이는 항상 법을 듣지 못하는 이요, 한 눈 있는 이는 잠깐은 법을 듣더라도 마음이 전일하지 않은 이요, 두 눈이 있는 이는 전심으로 법을 듣고 들은 대로 행하는 이니라. 법을 듣는 데 세 가지 사람이 있음을 알 것이니, 이런 뜻으로 말하기를,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이 간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에 구시나(拘尸那)성에 있을 적에 사리불이 병에 걸리었으므로, 내가 아난에게 유촉하면서 법을 연설하였더니, 사리불이 그 소문을 듣고 4부 제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나의 평상을 듣고 부처님 계신 데에 가자. 내가 법을 들으려 한다' 하였다. 그 때에 4부 제자가 평상을 들고 나에게 나와 법을 듣게 하였고, 법을 들은 힘으로 병이 나아서 몸이 편안하였다. 이런 뜻으로 법을 들은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보살이 생각한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는가. 이 생각으로 마음이 해탈하게 되나니, 왜냐 하면 모든 중생이 항상 5욕락에 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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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것을 생각하는 까닭으로 해탈하게 되느니라.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네 가지 법에 뒤바뀌게 되었으나, 생각하는 연고로 모든 법이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보게 되며, 이렇게 보고는 네 가지 뒤바뀐 것이 즉시 끊어지나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온갖 법이 네 가지 모양이 있으니, 무엇이 넷인가. 나는 모양, 늙은 모양, 병드는 모양, 없어지는 모양이니라. 이 네 가지 모양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범부로부터 수다원에 이르도록 큰 고통을 내게 하거니와 만일 마음을 가두어 잘 생각하면 비록 이 네 가지를 만나더라도 고통이 생기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온갖 선한 법이 모두 생각을 말미암아 얻어지나니, 왜냐 하면 만일 사람이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전일한 마음으로 법을 듣더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불·법·승 삼보가 변역하지 아니함을 믿고 공경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두어 생각한 인연의 힘으로 온갖 번뇌를 끊은 것이니,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인연으로 대반열반에 가까워진다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나쁜 법을 끊어 버리고 선한 법을 닦음을 이름하여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 하느니라. 또 어떻게 법대로 수행하는가. 온갖 법이 공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한 줄을 보고, 이렇게 보았으므로 몸과 생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런 것을 일러 보살이 법대로 수행한다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을 법대로 수행한다 하는가. 수행함이 두 가지니, 진실한 것과 진실치 아니한 것이니라. 진실하지 않다 함은 열반과 불성과 여래와 법과 승가와 실상과 허공의 모양을 알지 못하나니, 이것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진실하다 하는가. 열반·불성·여래·법·승가·실상·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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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모양을 아는 것을 진실하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열반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열반의 모양이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다함[盡]과 선한 성품[善性]과 진실함[實]과 참됨[眞]과 항상함[常]과 즐거움[樂]과 나임[我]과 깨끗함[淨]이니, 이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여덟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해탈과 선한 성품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참되지 아니함과 무상함과 즐겁지 않음과 부정함이니라. 또 여섯 가지 모양이 있으니, 해탈과 선한 성품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참되지 아니함과 안락함과 청정함이니라. 만일 중생이 세속의 도를 의지하여 번뇌를 끊었으면, 이런 열반은 여덟 가지 해탈이 있으나 진실하지 못하니, 왜냐 하면 항상하지 아니한 까닭이니라. 항상함이 없으므로 진실함이 없고, 진실함이 없으므로 참되지 아니하며, 비록 번뇌를 끊었으나 다시 일어나므로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겁지 아니하고 부정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 해탈의 여덟 가지 일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여섯 가지 모양이라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번뇌를 끊었으므로 해탈이라 하거니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진실하지 아니하다 하고, 진실하지 아니하므로 참되지 아니하다는 것이며, 오는 세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므로 항상함이 없고 무루한 8성도를 얻었으므로 안락하고 청정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렇게 아는 것은 열반을 아는 것이나 불성과 여래와 법과 승가와 실상과 허공의 모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불성을 안다 하는가. 불성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인가. 항상함과 깨끗함과 진실함과 선함과 장차 보는 것과 참됨이니라.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증득할 만함[可證]이요, 다른 여섯은 위와 같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불성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여래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여래라 함은 깨달음과 선함과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임과 깨끗함과 해탈함과 진실함과 도를 보임과 볼 수 있음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여래의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법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법이라 함은 선한 것 선하지 못한 것과, 항상한 것 항상하지 않은 것과, 즐거운 것 즐겁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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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과, 내가 있는 것 내가 없는 것과, 깨끗한 것 부정한 것과, 아는 것 알지 못하는 것과, 이해할 것 이해하지 못할 것과, 참된 것 참되지 못한 것과, 닦는 것 닦지 못한 것과, 사승할 것 사승하지 못할 것과, 진실한 것 진실하지 않은 것 따위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법의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승가의 모양을 안다 하는가. 승가라 함은 항상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깨끗하며 제자의 모양과 볼 수 있는 모양과 선하고 참되고 진실하지 아니함이니, 왜냐 하면 모든 성문이 부처님의 도를 얻은 까닭이며, 또 참되다는 것은 법의 성품을 깨달은 까닭이니, 이런 것을 말하여 보살이 승가의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실상을 안다 하는가. 실상이라 함은 항상하고 무상한 것, 즐겁고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하고 부정한 것, 선하고 선하지 않은 것, 있는 것 없는 것, 열반이고 열반 아닌 것, 해탈이고 해탈 아닌 것, 알고 알지 못하는 것, 끊고 끊지 못하는 것, 증득하고 증득하지 못하는 것, 닦고 닦지 않는 것, 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니, 이것은 실상이라 이름하거니와 열반·불성·여래·법·승가·허공은 아니니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음으로 인하여 열반·불성·여래·법·승가·실상·허공 등의 차별한 모양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으면 허공을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부처님과 보살이 비록 다섯 가지 눈이 있지만 보지 않는 까닭이요, 혜안(慧眼)으로야 보는 것이니, 혜안으로 보는 것은 볼 수 있는 법이 아니므로 본다고 하느니라. 만일 아무것도 없는 데를 허공이라 한다면, 이런 허공을 진실하다 하나니, 진실하므로 항상 없다 이름하며, 항상 없으므로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공은 없는 법을 이름한 것이요, 없는 법은 공이라 하나니, 마치 세간에서 물건이 없는 것을 공이라 이름하듯이, 허공의 성질도 그와 같아서 있는 물건이 없는 데를 허공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성품과 허공의 성품이 모두 실다운 성품이 없나니, 왜냐 하면 마치 사람들이 있는 물건을 없애 버리고 그런 뒤에 허공을 만든다 말하거니와, 허공은 실로 만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있는 것이 없는 까닭이니, 있는 것이 없으므로 허공도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허공의 성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상하다 할 것이니,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은 빛도 없고 막힘도 없고 항상 변하지 않는다 하며, 그러므로 세상에서 허공의 성질을 말하여 다섯째 요소[第五大]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은 실로 성품이 없는 것을 광명이 비치므로 허공이라 하거니와, 실로는 허공이 없느니라. 마치 세상법[世諦]은 실로 제 성품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세상법이 있다고 말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도 그와 같아서 머무는 곳이 없고, 오직 모든 부처님의 번뇌를 끊은 데[斷煩惱處]이므로 열반이라 하나니, 열반은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열반이 즐겁다 하지만 우리가 감각하여 즐거움[受樂]이 아니고, 가장 묘하고 적멸(寂滅)한 낙이니라. 부처님 여래에게 두 가지 낙이 있으니, 하나는 적멸한 낙이요, 다른 하나는 깨닫는 낙이니라. 실상의 체에는 세 가지 낙이 있으니, 감각하는 낙과 적멸한 낙과 깨닫는 낙이며, 불성은 오직 한 가지 낙이니, 마땅이 볼 수 있는 까닭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을 보리락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끊어진 데를 열반이라 한다면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예전에 처음으로 부처의 도를 이루려고 니련선하(尼連禪河) 가에 가셨을 때에, 마왕이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데 와서 말하기를 '세존이여, 열반하실 때가 되었사온데 어찌하여 열반에 들지 않나이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왕이여, 나에게는 지금 많이 아는 제자로서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지혜 있는, 중생을 교화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지 않노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번뇌가 끊어진 데가 열반이라 하오면 여러 보살들은 한량없는 겁 전에 이미 번뇌를 끊었는데, 어찌하여 열반이라 하지 아니하며, 다 같이 끊었는데 어찌하여 부처님만 열반이 있고 보살에게는 없다 하나이까? 만일 번뇌를 끊었어도 열반이 아니라면,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예전에 생명(生名) 바라문에게 말씀하기를 '나의 지금 이 몸이 곧 열반이니라' 하였사오며, 또 비사리(毘舍離)성에 계실 적에 마왕이 또 여쭙기를 '여래께서 예전에는 많이 알고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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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가 있어, 중생을 교화할 만한 제자가 없어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시더니, 지금은 구족하였사온데, 왜 열반에 들지 않나이까?' 하거늘, 그 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는 생각을 내지 말라. 지금부터 석 달 뒤에는 내가 열반에 들리라'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멸도(滅度)함이 열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번뇌를 끊음이 열반이라면 여래께서 처음 도량에 계실 적에 보리수 아래서 번뇌를 끊으신 때가 곧 열반이옵거늘, 어찌하여 앞으로 석 달 뒤에 열반에 드신다고 말씀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그 때가 열반이라 하오면, 어찌하여 구시나성에서 여러 역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벽녘에 열반에 든다'고 하셨나이까? 여래는 진실하옵거늘 어찌하여 허망한 말을 내시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여래가 광장설(廣長舌)을 얻었다면 여래는 한량없는 겁 전부터 허망한 말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하는 말은 진실하여서,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파순이 예전에 나에게 청하여 열반에 들라고 하였다면, 선남자여, 이 마왕은 열반의 일정한 모양을 진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파순의 생각엔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을 열반인 줄로 아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어떤 이가 말로 하지 않고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은 죽은 자와 다름이 없다 하듯이, 파순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기를,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도 않고 잠자코 말이 없는 것으로써 여래가 열반에 든다고 하는 모양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불·법·승 삼보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머무는 법과 청정한 법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도 '부처나 불성이나 열반이 차별한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항상하고 변하지 않음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도 열반과 실상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있고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에 나의 성문 제자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구섬미(拘睒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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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의 나쁜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어기고 계율을 범하며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받아 이양(利養)을 구하면서, 재가의 사람들을 향하여 스스로 칭찬하기를 '나는 무루를 얻었으니 수다원과와, 내지 아라한과를 얻었다' 하고, 다른 이를 헐뜯어 욕하며, 불·법·승 삼보와 계율과 화상에게도 공경하지 아니하고, 공공연하게 내 앞에서 이런 물건은 받으라고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말하지만 나는 허락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도, 그들은 나와 반대로 이런 것은 참으로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하며, 이런 나쁜 사람이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기에,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지 말라. 이제부터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노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나쁜 비구들로 인하여, 성문의 배우는[受學] 제자들로 하여금 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나의 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게 하였거니와, 보살들은 내 몸을 보고 내 법을 들으므로 내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며, 성문 제자들이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성문 제자들이 만일 말하기를,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도당(徒黨)이며, 나쁜 소견을 가진 사람이요 바른 소견이 아니거니와,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는 이 사람이 참으로 나의 제자요 마군의 도당이 아니며,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요 나쁜 무리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나는 본래부터 제자들 중에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은 열반에 든 것이라고 말하는 이를 보지 못하였노라. 선남자여, 어떤 장자가 여러 아들을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아들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 하나 장자는 실로 죽은 것이 아니지만, 아들들이 잘못 생각하여 죽은 줄로 아는 것이니,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한 것을 성문 제자들이 열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밝은 등불을 어떤 사람이 가리웠을 때에, 알지 못하는 사람은 등불이 꺼졌다 생각하거니와 등불은 실로 꺼진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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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서 꺼졌다고 생각하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비록 혜안이 있으면서도 번뇌에 덮이어서 마음이 뒤바뀌었으므로, 참몸[眞身]을 보지 못하고 멸도하였다는 생각을 내거니와, 나는 끝까지 멸도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배냇소경은 해와 달을 보지 못하였으며, 해와 달을 보지 못하므로 낮과 밤이 밝고 어두운 줄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해와 달이 없다고 말하나니, 해와 달은 진실로 있건만 소경이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탓으로 잘못된 생각을 내어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저 배냇소경과 같이, 여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거니와 여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하였으며, 잘못된 생각으로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안개와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웠을 때에 어리석은 사람은 해와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해와 달은 실로 있는 것을 구름이 가리웠으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지혜 눈을 덮었으므로 여래를 보지 못하고,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선남자여, 이는 여래가 젖먹이 아기의 행을 나타내는 것일지언정, 멸도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염부제에 해가 졌을 때에 중생들이 보지 못함은 흑산(黑山)이 가리운 까닭이요, 해는 본래 지는 것이 아니지만 중생들이 보지 못하므로 졌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산이 가리워서 내 몸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여래가 멸도한다는 생각을 내지만 나는 실로 끝까지 멸도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비사리(毗舍離)성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석 달 뒤에 내가 열반하리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가섭보살이 석 달 뒤에 선근이 성숙할 것을 미리 보았으며, 또 향산의 수발다라(須跋陀羅)가 안거를 마치고는 나에게 올 것을 알았으므로 마왕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고 하였느니라. 여러 역사가 있으니 그 수가 5백이라, 석 달을 마치고는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 것이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순타(純陀)와 5백 명의 리차(梨車)와 암라과녀(菴羅果女)가 석 달 뒤에 위없는 보리를 이루려는 선근이 성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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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이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수나찰다(須那刹多)가 니건자 외도에게 친근하는 것을 내가 12년 동안 법을 말하였으나, 나쁜 소견으로 믿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의 나쁜 소견의 뿌리가 석 달 뒤에 뽑힐 줄을 알았으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니련선하 가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지혜 있는 제자가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 수 없노라 하였는가 하면, 나는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바라나에서 법수레를 굴리려 한 까닭이며, 또 야사(耶奢)·부나(富那)·비마라사(毗摩羅闍)·교범바제(憍梵波提)·수바후(須婆睺) 등의 다섯 비구를 위하여, 또 욱가(郁伽) 장자 등 50사람을 위해서, 또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 등 한량없는 세간 사람 천상 사람들을 위하여, 또 우루빈나 가섭의 제자 5백 비구를 위하여서, 또 나제가섭·가야가섭의 형제 두 사람과 그의 5백 제자를 위하여서, 또 사리불과 목건련 등 2백50 비구를 위하여서 미묘한 법수레를 운전하려고 마왕 파순에게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불성을 보지 못하고 번뇌만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느니라.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항상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즐거움과 깨끗함만 있나니,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었으나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만일 불성을 보고 번뇌를 끊었으면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불성을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은 것도 대반열반이라 일컫느니라.
  선남자여, 열(涅)은 아니란[不] 말이요, 반(槃)은 멸한다[滅]는 말이니, 멸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또 덮는다[覆]는 뜻이니, 덮이지 않았다는 뜻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또 간다 온다[去來]는 뜻이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취(取)하는 뜻이니, 취하지 아니함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일정치 않다[不定]는 뜻이니 선정이 일정치 아니함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새 것과 낡은 것[新故]이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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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니, 새 것과 낡은 것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장애[障]란 말이니, 장애가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우루가(優樓迦)와 가비라(迦毗羅)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반은 모양[相]이란 뜻이니, 모양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반은 있다[有]는 말이니, 있지 아니함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화합(和合)이란 말이니 화합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괴롭다[苦]는 말이니, 괴롬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번뇌를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지 않고 번뇌가 생기지 않음을 열반이라 하나니, 선남자여, 부처님 여래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진 지혜가 법에 장애되는 것이 없음을 여래라 하느니라. 여래는 범부도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 아니니, 이름을 불성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몸과 마음과 지혜가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 세계에 가득하여 장애가 되지 아니하므로 허공이라 하느니라. 여래가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으므로 실상이라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여래는 실로 끝까지 열반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리고,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고, 여섯 가지를 성취하고, 다섯 가지를 익히고, 한 가지를 수호하고, 네 가지를 친근하고 한결같은 실상을 믿고 순종하여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린다 하는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5음(陰)을 말함이니라. 음은 무슨 뜻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가 서로 계속하여 무거운 짐을 여의지 못하게 하며, 흩어지고 모이고 하여 삼세에 포섭되나니, 그 진실한 뜻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으므로 음이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색음(色陰)을 보아도 모양을 보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열 가지 색 중에서 성품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지만, 세계를 지어내므로 음이라 하느니라. 수음에 일백 여덟이 있나니, 비록 수음을 보아도 애초부터 수음의 모양이 없느니라. 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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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면 수음이 비록 일백 여덟이지만 이치로는 일정한 실제가 없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수음을 보지 못하며, 상음과 행음과 식음도 그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은 5음이 번뇌를 내는 근본임을 분명하게 보았으므로 방편으로 끊어 버리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어떻게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는가. 다섯 가지 소견을 말함이니, 몸이란 소견[身見], 한쪽에 집착하는 소견[邊見], 사특한 소견[邪見], 계에 집착하는 소견[戒取見], 소견에 집착하는 소견[見取見]이니라. 이 다섯 가지 소견으로 인하여 생각이 끊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방비하고 가까이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하는가. 6념처(念處)를 말함이니,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함이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익힌다 하는가. 다섯 가지 선정을 말함이니, 아는 선정[知定], 고요한 선정[寂定], 몸과 마음이 쾌락한 선정, 쾌락이 없는 선정, 수릉엄정(首楞嚴定)이니라. 이 다섯 가지 선정을 익히면 대반열반에 가깝게 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 익히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 가지 일을 수호한다 하는가. 보리심을 말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이 항상 보리심을 수호하나니, 세상 사람이 외아들을 수호하듯 하며, 외눈박이가 외눈을 수호하듯 하며, 거치른 벌판에 가는 이가 길잡이를 수호하듯이, 보살이 보리심을 수호함도 그와 같으니라. 이렇게 보리심을 수호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구족하게 갖는 것이,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한 법을 수호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네 가지를 친근한다 하는가. 4무량심을 말함이니, 크게 인자함[大慈]·크게 가엾이 여김[大悲]·크게 기뻐함[大喜]·크게 버림[大捨]이니라. 이 네 가지 마음으로 인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마음을 가두어 친근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결같은 실상으로 믿고 순종한다 하는가.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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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모든 중생이 한 길로 돌아감을 분명히 아나니, 한 길은 대승인데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셋으로 나눈 것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믿어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잘 해탈한다 하는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을 아주 끊은 까닭이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막힘이 없이 아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지혜가 해탈하므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이제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르지 못한 데에 이제 이르게 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마음이 해탈한다 함은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마음은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오니, 그 까닭을 말하면 마음의 성품이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은 번뇌에 속박되지 아니하였나이다.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거늘, 무엇을 말하여 마음이 해탈한다 하오리까. 마음의 본성품이 탐욕 따위 번뇌에 얽힐 것이 아니온데, 무슨 인연으로 속박할 수 있겠나이까. 마치 사람이 뿔을 짜는 것 같아서 그것에 젖의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아무리 공력을 들여도 젖이 나올 리가 없나이다. 젖을 짜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공을 적게 들여도 젖이 많이 나는 것이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탐욕이 없었는데 지금엔들 어찌 있사오리까. 만일 본래는 없던 탐욕이 뒤에 생긴다 하오면, 부처님과 보살이 본래 탐욕이 없었으나 지금 있어야 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저 석녀(石女)는 본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니, 아무리 한량없는 공력의 인연을 들이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나이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 탐욕이 없으므로, 아무리 여러 인연을 짓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젖은 나무는 아무리 비비어도 불을 낼 수 없나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비비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 없거늘, 어떻게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얽어맬 수 있으리까. 세존이시여, 마치 모래를 짜서는 기름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짜더라도 탐욕을 얻을 수 없나이다. 탐욕과 마음은 두 가지 이치가 각각 다르거늘, 설사 탐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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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온들 어떻게 마음을 더럽힐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말뚝을 허공에 박아서는 마침내 박히게 할 수 없듯이, 탐욕을 마음에 두는 것도 그와 같아서 가지각색 인연을 쓰더라도 탐욕으로 하여금 마음을 얽어맬 수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면, 부처님과 보살이 어찌하여 허공중에 가시[刺]를 뽑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지난 세상의 마음은 해탈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오는 세상의 마음도 해탈함이 없으며 지금 세상의 마음은 도와 함께하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세상의 마음을 해탈이라 이름하오리까. 세존이시여, 지나간 등불은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오는 날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지금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밝음과 어둠은 함께 있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마음도 그와 같거늘, 어떻게 마음이 해탈한다 하오리까. 세존이시여, 탐욕은 있기도 한 것이니 만일 탐욕이 없다면 여인을 볼 때에 탐욕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만일 여인으로 인하여 탐욕이 생긴다면 이 탐욕은 참으로 있다고 할 것이오며, 탐욕이 있는 연고로 3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여인의 그림만 보고도 탐욕을 내며, 탐욕을 내는 탓으로 가지각색 죄를 짓나이다. 만일 본래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그림을 보고 탐욕을 내며,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하나이까.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다면 어찌하여 모양을 보고야 탐욕이 생기고 보지 않을 적에는 생기지 않나이까. 내가 현재에 나쁜 과보를 보는 것은 탐욕이 있음인 줄을 알 것이니,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중생이 몸은 있으나 나라 할 것이 없거늘 모든 범부들은 부질없이 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비록 나라는 생각을 가지더라도 세 갈래에 떨어지지 않거늘 어찌하여 탐욕이 있는 이는 여인의 형상이 없는 데에 여인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3악도에 떨어지나이까. 세존이시여,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내지만 불의 성품이 모든 인연 중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불이 나나이까. 세존이시여, 탐욕도 그와 같아서 빛 가운데 탐욕이 없고 향기나 맛이나 닿이는 법 중에도 탐욕이 없거늘, 어찌하여 빛과 향기와 맛과 닿이는 법에 탐욕을 내나이까. 만일 모든 인연 중에 탐욕이 없다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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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하여 중생만이 탐욕을 내고 부처님과 보살은 내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음은 일정하지도 않나이다. 마음이 만일 일정하다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없을 것이요,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 하오리까. 탐욕도 일정하지 않사오니,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찌하여 탐욕을 인하여 3악도에 떨어지나이까. 탐하는 이와 경계가 둘이 다 일정하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다 같이 한 가지 빛을 반연하되 혹은 탐욕을 내고 혹은 성냄을 일으키고 혹은 어리석음을 내나니, 그러므로 탐하는 이와 경계가 모두 일정치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두 가지가 모두 일정치 않다면 어찌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으면 마음이 해탈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마음은 탐욕의 번뇌에 얽히는 것도 아니고 얽히지 않음도 아니며, 해탈함도 아니요 해탈하지 않음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외도들이 말하기를 '인과 연이 화합하면 결과가 나는 것이니, 만일 모든 인연 가운데 본래 날 성품이 없는데 능히 난다고 하면, 허공도 날 것이 없지만 결과를 내어야 할 것이나, 허공은 내지 않으니 인이 아닌 까닭이다. 모든 인연 중에 본래 결과의 성품이 있으므로 합하여 모이면 결과를 내는 것이니, 그 까닭을 말하겠다. 마치 제바달이 담을 쌓으려면 진흙을 취하고 채색을 취하지 아니하며, 그림을 그리려면 채색을 취하고 초목을 취하지 아니하며, 옷을 만들려면 천을 취하고 흙이나 나무는 취하지 아니하며, 집을 지으려면 흙을 취하고 천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이 취함으로써 그 가운데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알 것이며, 결과를 냄으로써 인연 가운데 먼저 결과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 것이다. 만일 성품이 없다면 한 물건에서 모든 물건을 낼 것이 아닌가. 만일 취할 만하며 지을 수 있고 낼 수 있다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결과가 있었을 것이며, 만일 결과가 없다면 사람들이 취하지도 않고 짓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허공은 취할 것도 없고 지을 수도 없으므로 온갖 만물을 내는 것이니, 인이 있는 까닭으로, 니구타(尼拘陀) 열매는 니구타나무에 있고, 우유에 제호가 있으며 실에는 천이 있고, 진흙에는 질그릇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이 무명 때문에 눈이 멀어서 이런 결정적인 말을 하여 빛에는 집착하는 뜻이 있고, 마음에는 탐하는 성품이 있다고 하느니라.
  또 말하기를 '범부의 마음에 탐하는 성품도 있고 해탈의 성품도 있어서, 탐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탐욕을 내고 해탈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해탈한다' 하나니, 비록 이런 말을 하나 뜻이 옳지 아니하니라. 어떤 범부는 또 말하기를 '온갖 인 가운데는 모두 과가 없다.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미세하고 다른 하나는 굵은 것이다. 미세한 것은 항상하고 굵은 것은 무상하다. 미세한 인으로부터 변하여 굵은 인이 되고, 이 굵은 인으로부터 다시 과를 이루나니, 굵은 것이 무상하므로 과도 무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범부는 말하기를 '마음도 인이 없고 탐욕도 인이 없거니와, 시절을 인하여서 탐욕의 마음이 생긴다' 하나니, 이런 무리는 마음의 인연을 알지 못하므로 여섯 갈래로 바퀴돌 듯 하면서 생사를 받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개를 묶어서 기둥에 매어 두면 종일토록 기둥을 돌고 벗어나지 못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무명에 얽히어 나고 죽는 기둥에 매여 있으면서 25유를 돌고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뒷간에 빠졌다가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으며, 어떤 이가 병이 나았다가 다시 병드는 것 같으며, 길 가는 사람이 허허벌판을 만났다가 지나가고는 다시 오는 것 같으며, 또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흙을 칠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이미 무소유처(無所有處)에서 해탈하였으나, 비비상처(非非想處)를 해탈하지 못하고 다시 3악도에 들어가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범부들이 과보만을 관찰하고 인연을 관찰하지 않는 연고니, 마치 개가 흙덩이만 쫓아가고 사람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으니라.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과보만 보고 인연을 보지 못하는 연고로 비비상처로부터 다시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인 가운데 과가 있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없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거나를 결정적으로 말하지 아니하나니, 만일 인 가운데 결정된 과가 있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없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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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았다고 말하면, 이런 사람은 모두 마군의 무리로서 마군에게 딸렸으니, 곧 애욕의 사람이며, 이렇게 애욕에 빠진 사람은 생사의 속박을 영원히 끊을 수 없으며, 마음의 모양과 탐욕의 모양을 알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중도(中道)를 보이나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정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그 이유를 말하면 눈을 인하고 빛을 인하고 밝음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고 생각함을 인하여 알음알이가 생기거니와, 이 알음알이는 결정코 눈에나 빛에나 밝음에나 마음에나 생각하는 데 있지 아니하며 중간도 아니니라.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인연으로부터 나는 것이므로 있다 이름하고, 제 성품이 없다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마음에 깨끗한 성품과 부정한 성품이 있다고 결정된 말을 하지 아니하나니, 깨끗한 마음이나 부정한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는 까닭이며, 인연을 따라 탐욕을 내므로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본래 탐욕의 성품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에 탐욕이 생기고,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이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은 두 가지니, 하나는 생사를 따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대열반을 따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선남자여, 만일 범부가 탐심을 끊지 못하고 탐심을 닦으면, 이런 사람은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한다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도 탐심을 끊지 못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하나니, 마치 욕계의 중생이 모두 초지미선(初地味禪)이 있으므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항상 성취할 것이고 인연을 만나면 곧 얻는 것과 같으니라. 인연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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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화재(火災)를 말함이니,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하나니, 왜냐 하면 탐욕을 끊지 못한 연고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인가. 성문 제자들이 인연이 있으므로 탐심을 내고, 탐심을 두려워하여 백골관(白骨觀)을 닦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성문들이 4과를 증득하지 못하였을 때에 인연이 있어 탐심을 내고, 4과를 증득할 때에 탐심이 멸해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며, 보살마하살이 부동지(不動地)를 얻을 적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이 탐심을 끊고도 중생을 위하여서 탐욕이 있는 듯이 나타내는 것이니, 일부러 나타내므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선한 법을 물어서 구족이 성취하게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아니함이라 하는가. 아라한과 연각과 부처님과 부동지를 제외한 보살들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결정코 마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다거나 본래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마음은 탐욕의 번뇌와 화합하지 아니하고 성내는 일이나 어리석음과도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해와 달이 연기나 티끌이나 구름이나 안개나 아수라에 의해 가리우게 되면, 이런 인연으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나니,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해와 달의 성품이 그 다섯 가지 가리움과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써 탐욕을 내거든, 중생들이 마음이 탐욕과 화합하였다 말하거니와, 이 마음의 성품은 진실로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만일 탐심이 곧 탐욕의 성품이라 하고, 탐하지 않는 것이 탐하지 않는 성품이라면, 탐하지 않는 성품은 탐욕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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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하고 탐욕의 마음은 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 하는 것이며, 부처님과 보살은 영원히 탐욕의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마음이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탐욕을 내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나니, 선남자여, 마치 저 설산의 험준한 곳에는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원숭이는 가지만 사람은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갈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곳에 사냥꾼이 억센 끈끈이를 널쪽 위에 놓아 두고 원숭이를 잡는데, 원숭이가 어리석어서 손으로 건드리면 손이 들러붙고 손을 떼기 위하여 발로 밟으면 발이 또 들러붙고, 발을 떼려고 입으로 씹으면 입이 들러붙어서, 이와 같이 다섯 군데를 모두 떼지 못하게 되면 사냥꾼이 몽둥이에 꿰어 메고 집으로 돌아오느니라. 설산의 험준한 데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얻는 바른 도에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에 비유하고, 사냥꾼은 마왕 파순에게 비유하고, 끈끈이는 탐욕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라.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한다 함은, 범부와 마왕 파순의 모두 행하지 못하는 데 비유하고, 원숭이는 가고 사람은 못 가는 것은 모든 외도와 지혜 있는 이에게 비유하였으니, 마군들이 5욕으로도 속박하지 못함이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데는 모든 범부와 파순이 생사 중에 항상 있으면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범부들이 5욕락에 얽매이면 파순이 데려가나니, 사냥꾼이 원숭이를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가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여, 한 나라의 임금이 자기의 나라 안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지만 다른 나라에 가면 여러 가지 괴롬이 있게 되나니,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안락하지만, 다른 경계에 이르게 되면 마군을 만나 괴롬을 받나니, 자기의 경계는 4념처(念處)를 말함이요. 다른 경계는 5욕락을 말함이니라.
  어떤 것을 마군에게 얽매인다 하는가. 중생들이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보며, 괴롬을 즐겁다 보고 즐거움을 괴롭다 보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보며,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고, 나인 것을 내가 없다 보며, 진실한 해탈이 아닌 것을 허황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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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이라 보고, 진실한 해탈을 해탈이 아니라 보며, 승(乘)이 아닌 것을 승이라 보고 승인 것을 승이 아니라 보느니라. 이런 사람을 일러서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나니,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에 공통한 모양과 제각기 다른 모양이 참으로 있다고 보는 이는, 이 사람이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이란 모양을 짓고, 내지 식(識)을 볼 때에는 식이란 모양을 지으며, 남자를 보면 남자란 모양을 짓고 여자를 보면 여자란 모양을 지으며, 해[日]를 보면 해란 모양을, 달을 보면 달이란 모양을, 해[歲]를 보면 해란 모양을, 5음을 보면 음이란 모양을, 6입(入)을 보면 입이란 모양을, 18계(界)를 보면 계란 모양을 짓나니,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며,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내가 곧 색이라, 색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색이 있다, 색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보거나, 내지 내가 곧 식이다, 식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식이 있다, 식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인 것이니,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나의 성문 제자로서, 여래의 12부경을 여의고 외도들의 경전을 익히거나, 출가한 적멸(寂滅)의 업을 닦지 아니하고 재가(在家)한 세속의 일을 경영하는 이가 있나니, 무엇을 재가한 일이라 하는가.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인 하인·전택(田宅)·코끼리·말·수레·약대·나귀·닭·개·원숭이·돼지·양 따위나 가지각색 곡식을 받아 두거나, 스님을 멀리 여의고 속인들을 가까이하며, 성인의 말씀을 어기고 재가자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기를 허락했다' 하니, 이것을 재가의 일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제자들이 열반을 위하지 아니하고 이끗만을 위하여 12부경을 친근하고 듣거나, 시방 승물(僧物)이나, 승만물(僧鬘物)을 입고 먹기를 자기의 것처럼 생각하거나, 다른 집을 아끼거나 칭찬하거나, 임금이나 왕자들을 친근하거나, 길흉한 것을 점치고 책력에 관한 것을 숭상하며, 바둑·장기·노름·투호(投壺)하는 일이나, 비구니나 처녀들을 친근하거나, 두 사미를 거느리거나, 사냥하고 고기 팔고 술 파는 집과 전다라들이 사는 데를 놀러다니거나, 여러 가지로 장사하거나,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나라의 사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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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이웃 나라에 가거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군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며, 내지 어리석은 마음과 함께 나고 함께 멸하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부정한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마음이 해탈한다 하느니라. 만일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도 않고 저축하지도 아니하며, 대반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남에게 해설하면 이런 사람은 나의 참된 제자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왕 파순의 경계를 행하지 아니하면,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요, 도품을 닦으므로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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