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19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①
   
  이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열 가지[十事] 공덕을 얻어 성문·벽지불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어서 듣는 이가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리니,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닌 것도 아니며, 세상법도 아니고 형상도 없고 세간에는 없는 것이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나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듣지 못한 것을 들음이요, 둘째 듣고는 이익이 됨이요, 셋째 의혹하는 마음을 끊음이요, 넷째 지혜의 마음이 곧고 굽지 아니함이요, 다섯째 능히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들음인가. 깊고 비밀한 법장을 말함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고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가 차별이 없으며, 삼보의 성품과 모양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며, 모든 부처님이 필경까지 열반에 드시는 이가 없고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어서, 여래의 열반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함이 있는[有爲]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새는 것[有漏]도 아니고 샘이 없는 것도 아니며,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니며, 이름[名]도 아니고 이름 아님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있지 않음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고 물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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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아니며,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기다림도 아니고 기다리지 않음도 아니며, 밝음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며, 나옴도 아니고 나오지 않음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며, 끊음도 아니고 끊지 않음도 아니며,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 음(陰)도 아니고 음 아님도 아니며, 입(入)도 아니고 입 아님도 아니며, 계(界)도 아니고 계 아님도 아니며, 12인연도 아니고 12인연 아님도 아니어서, 이런 법이 깊고 비밀하여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능히 듣느니라. 또 듣지 못함도 있으니, 모든 외도들의 경전으로서 4비타론(毗陀論)·비가라론(毗伽羅論)·위세사론(衛世師論)·가비라론(迦毗羅論)·모든 주문·의방(醫方)·기예(伎藝)·일식과 월식과 별들의 운행·도참서 따위니라. 이러한 경들에 대해 애초부터 듣지 못하면, 비밀의 뜻을 이 경전에서 들으며, 또 비불략(毗佛略)을 제외한 11부 경에도 없던 비밀한 이치를 이 경전으로 인하여 알게 된 것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듣지 못한 것을 얻어 듣는다 하느니라.
  듣고는 이익이 된다 함은, 만일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온갖 방등 대승경전의 깊은 이치를 모두 아는 것이니라. 마치 남자나 여자나 밝은 거울 속에서 자기의 형상을 분명하게 보듯이 대반열반경의 거울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이 붙잡으면 대승경전의 깊은 이치를 모두 보게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횃불을 들면 모든 물건들을 다 볼 수 있듯이, 대반열반의 횃불도 그러하여 보살이 들면 대승의 깊은 뜻을 보느니라. 또 해가 뜨면 밝은 광명이 모든 산의 깊고 어두운 데를 비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물건을 보게 하듯이 대반열반경의 지혜의 해도 그와 같이 대승의 깊은 이치를 비치어서 2승들로 하여금 부처님 도를 보게 하나니, 그 이유는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듣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모든 법의 이름을 들으며, 만일 쓰고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다른 이에게 말하여 주고 뜻을 생각하면 모든 법의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듣기만 하는 이는 이름만 알고 뜻을 모르거니와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그 뜻을 생각하면 그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경전을 듣는 이는 불성이 있음을 듣기만 하고 보지는 못하거니와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보게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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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이 경을 듣기만 하는 이는 보시의 이름을 알기만 하고 보시바라밀을 보지는 못하거니와,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한다면 보시바라밀을 보게 되며, 내지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법도 알고 뜻도 알며 두 가지 걸림없음을 갖추어서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 등 모든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12부경을 열어 보이고 분별하며 그 뜻을 연설하는 데 잘못됨이 없을 것이며, 다른 이에게서 듣지 않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움을 스스로 알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을 말하여 듣고는 이익이 된다고 하느니라.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 함은, 의혹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이름을 의심함[疑名]이요, 다른 하나는 이치를 의심함[疑義]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름을 의심하는 마음을 끊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이치를 의심하는 마음을 끊을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의심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부처님이 반드시 열반하는가 의심하고, 둘째 부처님이 항상 계시는가 의심하고, 셋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즐거운가 의심하고, 넷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깨끗한가 의심하고, 다섯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내[我]가 있는가 의심함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열반하는가 하는 의심을 영원히 끊게 되고,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네 가지 의심을 영원히 끊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의심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성문이 있는가 없는가, 둘째 연각이 있는가 없는가, 셋째 불승(佛乘)이 있는가 없는가 함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세 가지 의심을 영원히 끊어 남음이 없고,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면 온갖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아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의심이 매우 많으니, 항상한가 무상한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깨끗한가 깨끗하지 못한가, 내가 있는가 내가 없는가, 수명인가 수명이 아닌가, 필경인가 필경이 아닌가, 다른 세상인가 지나간 세상인가, 있는가 없는가, 고통인가 고통이 아닌가, 집(集)인가 집이 아닌가, 도인가 도가 아닌가, 멸인가 멸이 아닌가, 법인가 법이 아닌가, 선인가 선이 아닌가, 공한가 공하지 않은가 따위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들이 아주 끊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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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선남자여, 이런 경을 듣지 못한 이는 가지가지 의심이 많으니, 색이 나인가, 수(受)·상(想)·행(行)·식(識)이 나인가, 눈이 보는가 내가 보는가, 내지 식이 아는가 내가 아는가, 색이 과보를 받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내지 식이 과보를 받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색이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가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지 식도 그와 같으며, 나고 죽는 법이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는가, 처음이 없고 나중이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이 아주 없느니라. 또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일천제들이 4중금(重禁)을 범하고 5역죄를 지으며, 방등경전을 비방하나니, 이런 무리들은 불성이 있는가 불성이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이 모두 끊어지느니라. 또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세간이 끝[邊]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시방세계가 있는가 시방세계가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들이 아주 없어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 하느니라.
  지혜 마음이 곧고 굽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의심이 있으면 소견이 바르지 못하나니, 모든 범부들이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을 듣지 못하면 소견이 삿되어지고, 내지 성문·연각들도 소견이 잘못되느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모든 범부들의 소견이 잘못됐다 하는가. 샘이 있는[有漏] 속에서 항상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고, 여래에게는 무상하고 고통이고 깨끗하지 않고 내가 없는 줄을 보며, 중생과 수명과 지견(知見)이 있는 줄로 보며, 비유상비무상천을 열반이라 억측하며, 자재천에 8성도(聖道)가 있는 줄로 보며, 있다는 소견·없다는 소견 따위를 잘못됐다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거룩한 행[聖行]을 닦으면 이렇게 잘못된 소견을 끊게 되느니라.
  어떤 것을 성문·연각의 잘못된 소견이라 하는가. 보살이 도솔타천에서 내려와 흰 코끼리를 변화해내어 타고 어머니의 태에 드시니, 아버지는 정반왕이요 어머니는 마야부인이었다. 가비라(迦毗羅)성에서 태중에 있다가 열 달이 차 태에서 나올 때에, 땅에 닿기 전에 제석천왕이 받들어 모시고, 난다용왕과 우바난다용왕은 물을 뿜어 몸을 씻기고, 마니발다 대귀신왕은 보배 일산을 받들고 뒤에 모시고 섰으며, 지신(地神)은 연꽃을 변화로 지어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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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들매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고, 천신의 사당에 이르니 천신의 상[天像]들이 일어나 맞았다. 아사타 선인이 와서 태자를 안고 상(相)을 보았으며, 상을 보고 나서는 슬픈 생각을 내어 부처님이 출현함을 보지 못할 것을 스스로 서러워하였다. 스승에게 나아가 글과 산수와 활쏘기, 말타기와 참서와 기예를 배웠으며, 깊은 궁전에 있어서는 6만 채녀와 더불어 즐거이 향락하였고, 네 군데 문으로 나가 유람하다가 가비라 동산에 이르는 도중에 노인과, 내지 법복을 입고 가는 사문을 보았다. 궁중에 돌아와서는 채녀들을 보니, 형상은 마치 송장과도 같고 궁전은 무덤 속인 듯하였다. 그것이 싫어져서 집을 떠나 밤중에 성을 넘었으며, 울타가(鬱陀伽)와 아라라(阿羅邏) 신선에게 가서는 식처천(識處天)과 비상비비상천의 이야기를 들었고, 듣고는 그런 곳들이 무상하고 괴롭고 부정하고 내가 없음을 관찰하였으며, 거기를 버리고 나무 아래 가서 6년 동안 고행을 닦으면서 이런 고행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할 줄을 알았다.
  그 때에 다시 아이라발제(阿夷羅跋提)강에 이르러 목욕하고, 마침 소 기르는 여자가 받드는 우유죽을 받고는, 보리수 아래로 가서 마왕 파순을 깨뜨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 바라나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처음으로 법수레를 굴리었고, 내지 구시나성에서 열반에 드는 것을 보는 것이니, 이런 소견을 말하여 성문·연각의 잘못된 소견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이러한 소견들을 끊어 버리게 되며, 만일 쓰고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하고 뜻을 생각하면, 올바른 소견을 얻어 잘못된 소견이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의 가르침[諦]을 수행하면, 보살이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도솔타천에서 내려와서 어머니의 태에 들며, 내지 구시나성에서 반열반에 들지 아니하는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올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비밀한 뜻을 능히 안다 함은 곧 대반열반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어서, 네 가지 중대한 계율 범한 것을 참회하고, 법을 비방한 죄를 없애고, 5역죄를 끝내고, 일천제를 멸하며,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깊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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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깊은 이치라 하는가. 비록 중생에게 내가 없음을 알지만, 세상에 업과 과보를 잃지 아니하며, 비록 5음이 여기서 소멸함을 알지만 선악의 업은 마침내 없어지지 아니하며, 비록 여러 가지 업이 있지만 짓는 이가 없으며, 비록 이르는 곳이 있으나 가는 이가 없으며, 비록 속박이 있으나 속박 받을 이가 없으며, 비록 열반이 있으나 열반할 이가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깊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 듣고 듣지 못한다는 뜻을 해석하기로는, 그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법이 만일 있다면 결정코 있을 것이고, 법이 만일 없다면 결정코 없을 것이니, 없는 것이면 생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면 멸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일 들을 것이면 곧 들었을 것이요, 만일 듣지 못할 것이면 곧 듣지 못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오리까? 세존이시여, 만일 들을 수 없는 것이면 그것은 듣지 못하는 것이요, 만일 이미 들었으면 다시 듣지 아니할 것이니, 이미 들은 까닭이거늘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마치 가는 이가 이르렀으면 가지 아니할 것이요 간다면 이르지 못한 것과 같으며, 또한 났으면 나지 아니할 것이요, 나지 않은 것이면 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얻었으면 얻지 아니할 것이요, 얻지 못하는 것이면 얻지 못할 것과도 같나니, 들었으면 듣지 아니할 것이요 듣지 못하는 것이면 듣지 못할 것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면, 모든 중생이 보리를 소유(所有)하지 못한 것을 마땅히 소유할 것이요, 열반을 얻지 못한 것을 마땅히 얻을 것이며,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나 마땅히 볼 것이온데, 어찌하여 10주(住) 보살이 비록 불성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다 말씀하시었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면, 여래께서는 옛적에 누구에게서 들었사오며, 만일 듣는다 하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아함 가운데에서 스승이 없다 말씀하셨나이까?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도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다면, 모든 중생들도 듣지 못한 것을 듣지 못하고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오며, 여래께서 만일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고 불성을 보았다면, 모든 중생들이 이 경을 듣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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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였으나 역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빛이란 것은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볼 수 없는 것도 있사오며, 소리도 그와 같아서 들을 것도 있고 듣지 못할 것도 있거니와 이 대반열반은 빛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보고 들을 수 있다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과거는 이미 없어졌으므로 들을 수 없고, 미래는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들을 수 없으며, 현재는 들을 때에는 들었다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들었으면 소리는 이미 없어졌으니 다시 들을 것 아니거니와, 이 대반열반은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오니, 만일 삼세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들을 수가 없삽거늘, 어찌하여 보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닦으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는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을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온갖 법이 환술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건달바성과 같고 물에 번진 파문과 같으며, 물거품 같고 파초나무가 공하여 실속이 없는 것 같으며, 수명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괴롬과 즐거움이 없음을 알았으니, 10주 보살의 지견과 같으니라."
  이 때에 대중 가운데에 별안간 큰 광명이 있었으니, 푸른 것이 아닌데 푸른 것을 보고, 누른 것이 아닌데 누른 것을 보고 붉은 것이 아닌데 붉은 것을 보고, 흰 것이 아닌데 흰 것을 보며, 빛이 아닌데 빛을 보고, 밝음이 아닌데 밝음을 보고, 보는 것이 아닌데 보게 되었다. 그 때 대중들이 이 광명을 만나고는 몸과 마음이 쾌락하기가, 마치 비구들이 사자왕정(師子王定)에 든 듯하였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광명은 누가 놓나이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가섭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대중에게 비치는 것입니까?"  
  문수보살 역시 잠자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다시 무변신(無邊身)보살이 가섭보살에게 이 광명은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으나, 가섭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아니하였고, 정주왕자(淨住王子)보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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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변신보살에게 무슨 인연으로 대중 가운데 이 광명이 있는가를 물었으나, 무변신보살도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5백 보살이 서로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인연으로 대중 가운데 이 광명이 있는가?"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런 광명은 지혜라 이름하오며, 지혜는 항상 머무는 것이옵고,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이 없삽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고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대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은 항상 머문다 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고 하시나이까? 이 광명은 곧 여래요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대자대비라 하고 대자대비는 항상 머무는 것이라 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곧 염불이요 염불은 항상 머무는 것이라 이름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모든 성문·연각과 함께하지 아니하는 도며, 모든 성문·연각과 함께하지 아니하는 도는 항상 머무는 것이라 이름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세존이시여, 역시 인연이 있사오니, 무명이 없어짐을 인하여 환하게 치성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등불을 얻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모든 법의 깊고 깊은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가지 말고, 세상법[世諦]으로써 해설하라."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동쪽으로 20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부동(不動)이라 합니다. 그 부처님 계시는 곳은 가로와 세로가 꼭 같아서 1만 2천 유순이요, 땅은 7보로 되어 흙이나 돌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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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듯하고 단정하고 부드러워 구렁이 없으며, 나무들은 네 가지 보배로 되었으니 금과 은과 유리와 파리요,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없는 때가 없나이다. 만일 중생이 그 꽃향기를 맡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마치 비구가 3선천에 든 듯하며, 그 주위에 다시 3천의 강이 있는데 물이 미묘하여 여덟 가지 맛이 갖추어졌으며, 만일 중생이 그 물에서 목욕하면, 즐겁기가 2선천에 들어간 비구와 같습니다. 그 물에 가지각색 꽃이 있으니 우발라꽃·파두마꽃·구물두꽃·분다리꽃·향화·대향화·미묘항화와 모든 중생들의 애호하는 꽃이며, 그 강의 양쪽 언덕에도 여러 가지 꽃이 있으니 아제목다가화·점파화·파타라화·파사라화·마리가화·대마리가화·신마리가화·수마나화·유제가화·단누가리화·상화 등 모든 중생들이 애호하는 꽃입니다. 바닥에는 금 모래가 깔리고, 네 가지 계단이 있으니 금·은·유리와 잡색 파리며, 여러 가지 새들이 그 가운데 모여들고, 또 한량없는 범·이리·사자 등 사나운 짐승들이 있으나, 마음이 유순하여 어린아기들처럼 서로 어울립니다.
  그 세계에는 중대한 계율을 범한 자나 바른 법을 비방하는 자나 일천제(一闡提)나 5역죄를 짓는 자가 없으며, 그 토양이 조화롭고 기후가 알맞아 춥고 덥고 굶주리고 목마른 고통이 없고, 탐욕과 성내는 일과 방일하고 질투하는 일이 없고, 해와 달과 밤과 낮이 없는 것이 도리천과 같습니다. 그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광명이 있고 교만한 마음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보살들이며, 모두 다 신통을 얻었고, 큰 공덕을 구족하였으며, 마음으로 바른 법을 존중하여, 대승을 타며 대승을 사랑하며, 대승을 즐거워하며 대승을 애호하며, 큰 지혜를 이룩하여 큰 총지(摠持)를 얻었고, 마음으로는 항상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깁니다. 부처님 명호는 만월광명(滿月光明) 여래·응공·전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며 계시는 곳을 따라 법을 강설하시니, 그 나라의 중생들은 그 부처님께서 유리광(琉璃光)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나이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모두 듣느니라' 하셨고, 저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만월광명부처님께 여쭌 것도, 여기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물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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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다름이 없었나이다.
  저 만월광명부처님께서 유리광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여, 여기서 서쪽으로 20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서 거기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사바(娑婆)인데, 그 세계에는 산과 구릉이 많고, 흙·모래·자갈·돌·가시 등이 가득하며, 항상 기갈과 춥고 더운 고통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부모나 스승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법답지 아니한 것을 탐하며 잘못된 법을 욕구하여, 삿된 법을 행하고 바른 법을 믿지 아니하며, 수명이 짧고 간사한 짓을 행하므로 국왕이 그것을 다스리며, 국왕이 나라를 가지었어도 만곡한 줄 모르고, 다른 임금이 가진 토지에 탐심을 내어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싸우매 억울하게 죽는 이가 한정이 없으며, 임금의 행하는 일이 이렇게 옳지 못하므로, 사천왕과 선신들이 환희한 마음이 없고, 그리하여 가뭄과 재앙을 내려 곡식이 풍년 들지 못하고 괴질이 유행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한량이 없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은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신데,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순후하며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대중을 위하여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며, 거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광명변조고귀덕왕이라, 이미 이 일을 물은 것이 그대와 다름이 없거늘, 부처님께서 지금 대답하시나니, 그대가 빨리 가면 들을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유리광보살이 이 말을 듣고, 8만 4천 보살마하살과 더불어 이곳으로 오려 하므로 이런 상서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런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사오니, 이것은 인연이라고도 하고 인연이 아니라고도 하나이다."
  이 때에 유리광보살이 8만 4천 보살과 함께 모든 깃발과 일산과 향과 꽃과 영락과 가지가지 풍악이 앞엣 것보다 갑절이나 훌륭한 것을 가지고,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와서는, 가지고 온 공양거리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얼굴을 부처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으며, 그렇게 공경하고는 물러가서 한쪽에 앉았다.
  이 때에 세존께서 그 보살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이르러서 왔는가, 이르지 않고서 왔는가?"
  "세존이시여, 이르러서 오지도 않았고, 이르지 않고서 오지도 않았사오니, 제가 이 뜻을 관찰하건대 도무지 오는 일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행(行)이 항상하더라도 오지 아니하고, 무상하더라도 오지 않나이다. 만일 사람이 중생의 성품이 있는 줄로 보면 오고 오지 아니함이 있으려니와, 저는 지금 중생의 결정된 성품을 보지 아니하거늘, 어찌 오고 오지 않음이 있사오리까? 교만이 있는 이는 가고 오는 일이 있음을 보거니와, 교만이 없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집착하는 행[取行]이 있는 이는 가고 옴이 있음을 보거니와, 집착하는 행이 없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만일 여래가 필경에 열반하는 줄로 보면 가고 옴이 있거니와, 여래가 필경에 열반하는 줄로 보지 아니하면 가고 옴이 없나이다. 불성을 듣지 못한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불성을 들은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성문·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는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성문·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성문·벽지불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보지 않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여래에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는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여래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이 일은 그만두고 여쭐 일이 있사오니, 가엾이 여기시어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지금이 물을 때니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다. 그 까닭을 말하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꽃과 같고, 법도 그러하여 듣기 어려우며, 12부 경전에서 방등경이 더욱 어려우니,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느니라."
  이 때에 유리광보살마하살은 이미 허락을 받았고, 또 경계하심을 받자왔으므로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 대승 대열반의 바다를 다하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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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 또 나를 만났으니 잘 해설하리라. 그대에게 있는 의심과 독화살은, 내가 큰 의원으로서 뽑아줄 것이며, 그대가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지혜의 횃불이 되어 밝게 비쳐줄 것이며, 그대가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려 하니, 내가 뱃사공이 되어 줄 것이며, 그대가 나를 부모같이 생각하니, 나도 그대를 아들처럼 생각할 것이며, 그대가 마음으로 법보를 탐구하니, 나에게 있는 것을 보시하여 주리라. 자세하게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석하리라.  
  선남자여, 법을 들으려면 지금이 좋은 때니라. 법을 듣고는 마땅히 공경하고 믿음을 내어 지성으로 듣고 공경하고 존중하라. 바른 법에 대하여 허물을 찾지 말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생각지 말며, 법사의 문벌이 높고 낮음을 보지 말며, 법을 듣고는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며, 공경과 명예와 이양을 위하지 말고 세상을 건지는 감로법이 되어야 하며, 또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나니 '내가 법을 듣고는 먼저 내 몸을 제도하고, 그런 뒤에 남을 제도하리라. 먼저 내 몸을 해탈하고 그런 뒤에 남을 해탈케 하리라. 먼저 내 몸을 편안케 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리라. 먼저 내가 열반한 뒤에 다른 이도 열반을 얻게 하리라' 하지 말며,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에 평등한 생각을 내며, 나고 죽는 데는 괴로운 생각을 내며, 대열반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생각을 내며, 먼저 다른 이를 위하고 나중에 나를 위하며, 대승을 위하고 2승을 위하지 말며, 모든 법에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하며, 모든 법의 모양만을 집착하지 말며, 모든 법에 대하여 탐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항상 법을 알고 법을 보려는 생각을 내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이렇게 지성으로 법을 들으면 이것을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듣지 못하면서 들음이 있고, 듣지 못하면서 듣지 못함이 있고, 들으면서 듣지 못함이 있고, 들으면서 들음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나지 않으면서 나고,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고, 나면서 나지 않고, 나면서 나는 것과 같으며, 또 이르지 않으면서 이르고, 이르지 않으면서 이르지 않고, 이르면서 이르지 않고, 이르면서 이르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세제(世諦)에 편안히 머물러서 처음 태에서 나올 때를 이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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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나지 않으면서 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이 대열반은 나는 모습이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세제에서 죽는 때를 이름하여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면서 난다 하는가. 선남자여, 온갖 범부들을 이름하여 나면서 난다 하느니라. 왜냐 하면 나고 나는 것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며, 온갖 유루(有漏)들이 찰나찰나 나는 까닭으로, 이것을 이름하여 나면서 난다 하느니라. 4주(住) 보살을 이름하여 나는 것이 나지 않는다 하나니, 왜냐 하면 나는 것이 자재한 까닭으로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은 안엣 법이라서 하거니와, 무엇을 바깥 법이라 하는가. 나지 못하는 것이 나며,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나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남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종자에서 싹이 나지 못할 때에 4대가 화합하고 사람이 공들여 가꾸면 나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지 못하는 것이 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는가. 마치 썩은 종자가 연(緣)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음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는가. 마치 싹이 나고도 자라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는 것이 난다 하는가. 마치 싹이 나서 자라는 것 같음이거니와, 만일 나는 것이 나지 못하면 자라는 일이 없나니, 이러한 모든 유루법을 이름하여 바깥 법의 나는 것이 난다 하느니라."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의 법이 만일 난다면 항상함이 되나이까, 무상함이 되나이까? 나는 것이 만일 항상하다면, 유루의 법은 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요, 나는 것이 만일 무상하다면 유루의 법이 항상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나는 것이 능히 스스로 난다면 나는 것이 제 성품이 없을 것이며, 만일 능히 다른 것을 낸다면, 무슨 인연으로 무루(無漏)는 내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나지 않았을 적에 나는 일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이제서야 났다 이름하나이까? 만일 나지 않았을 적에 나는 일이 없었다면, 어찌하여 허공이 났다고는 말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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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나지 않는 것이 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이 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지 않는 것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없거니와,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 있느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이 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지 않는 것을 난다고 이름하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왜냐 하면 그가 났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이 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이 나는 까닭으로 나고, 나는 것이 나는 까닭으로 나지 아니하므로 역시 말할 수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이 나지 아니함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은 났다고 이름하거니와, 나는 것이 스스로 나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이 나지 아니함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지 않는 것은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는데, 열반은 나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도를 닦아서야 얻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얻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도 있다 하느냐. 열 가지 인연법이 나는 것의 인이 되나니, 그런 이치로 말할 수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깊고 깊은 공한 정[空定]에 들어가지 말지니 대중이 둔한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함이 있는 법은 나는 것이 항상하지만, 머무는 것[住]이 무상하므로 나는 것도 무상하며, 머무는 것이 항상하지만, 나는 것으로 내게 되므로 머무는 것도 무상하며, 달라지는 것[異]이 항상하지만, 법이 무상하므로 달라지는 것도 무상하며, 무너지는 것[壞]이 항상하지만,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므로 무너지는 것도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성품인 까닭으로 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무너지는 것이 모두 항상하거니와, 찰나찰나 멸하는 까닭으로 항상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대열반으로써 끊어 없앨 수 있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유루의 법은 나지 않았을 때에 벌써 나는 성품이 있으므로 나는 것이 능히 내거니와, 무루의 법은 본래 나는 성품이 없으므로 나는 것이 능히 내지 못하느니라. 마치 불은 본래 성품이 있으므로, 연을 만나면 불이 나는 것이요, 눈은 본래 보는 성품이 있으므로, 빛을 인하고 밝음
   
 
[469 / 909] 쪽  
  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여서 보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나는 법도 그와 같아서, 본래 성품이 있으므로 업의 인연과 부모가 화합함을 만나면 나는 것이니라."
  이 때에 유리광보살마하살과 8만 4천 보살마하살들이 이 법문을 듣고는 공중으로 다라나무의 7배 높이까지 솟아올라서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의 은근하게 가르침을 입사와 대열반을 인하여 비로소 깨닫고, 듣지 못한 바를 들었사오며, 8만 4천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들을 깊이 알게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알고서 의심을 끊었사오나, 이 회상에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을 무외(無畏)라 하옵는데, 부처님께 여쭙고자 하오니 허락하시옵소서."
  이 때에 세존은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해설하리라."
  이 때에 무외보살이 6만[어떤 판본에서는 8만이라 함] 4천 보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의 중생들은 무슨 업을 지어야 저 부동(不動)세계에 가서 날 수 있나이까? 그 세계의 보살들은 어찌하여 지혜가 성취되었사오며, 사람 중의 코끼리 왕으로서 큰 위덕이 있사오며, 모든 행을 갖추어 닦아서 영리한 지혜가 빠르며, 듣고는 곧 이해하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모든 생명 해하지 않고  
  여러 가지 계율을 굳게 지키며
  부처님의 미묘한 법 받아 지니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의 귀한 재물 빼앗지 말고  
  언제라도 중생들에 늘 보시하며
   
 
[470 / 909] 쪽  
  시방 스님 모여 있을 절을 지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의 여자들을 범하지 않고  
  때 아니면 자기 처도 범하지 말며
  계행 갖는 니사단을 보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나와 남의 이익을 위하여서나  
  아무리 두려운 일 닥치더라도
  입 다물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언제라도 선지식을 헐뜯지 말고  
  좋지 못한 권속들을 멀리 여의며
  입으로는 화합한 말 항상 말하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저 모든 보살마하살처럼  
  나쁜 말은 입 안에서 멀리 여의고  
  다른 이가 즐겨 듣는 말만 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희롱으로 웃는 말을 할 때에라도  
  말할 때가 아닌 말은 말하지 않고
  조심조심 말할 때만 말을 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가 이양을 얻는 일 보고  
   
 
[471 / 909] 쪽  
  어느 때나 즐거운 마음을 내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생각 없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중생들을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어느 때나 인자한 마음을 내며  
  방편으로 짓는 악도 내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잘못된 소견으로 보시도 없고  
  부모도 과거 미래 없다고 하는  
  이러한 나쁜 소견 내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넓은 벌판 먼 길에는 우물을 파고  
  간 데마다 과실 나무 많이 심으며
  거지에겐 좋은 음식 항상 준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과 법보와 스님들에게  
  향 한 개나 등불 하나 공양하거나  
  하다못해 꽃 한 송이 바치더라도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서나  
  이양이나 복덕을 얻기 위하여
  이 경전을 한 게송만 쓴다 하여도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472 / 909] 쪽  
  어떤 이가 복덕·이양 얻기 위하여  
  여러 날은 그만두고 하루 동안만  
  이 경전을 외우고 읽는다 하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어떤 이가 무상도를 얻기 위하여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이라도  
  정성으로 8재계를 받아 지니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크고 중한 계율을 범한 사람과  
  한 곳에서 한가지로 있지 않거나
  방등경전 훼방한 이 꾸짖는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어떤 이가 병난 사람 살펴보거나  
  맛난 과실 한 개라도 보시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간호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스님들의 쓰는 물건 범하지 않고  
  부처님의 상주(常住)물을 수호 잘하며
  절 도량을 잘 치우고 소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 형상이나 부처님 탑을  
  엄지손가락만치라도 조성해 놓고
  어느 때나 즐거운 맘 항상 낸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473 / 909] 쪽  
  대반열반 이 경전을 위하는 마음  
  내 몸이나 재물 보배 아끼지 않고
  설법하는 법사에게 보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의 비밀한 이런 법장을  
  듣거나 배우거나 읽고 외우며
  쓰거나 통달하여 해설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이 때에 무외보살마하살은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짓는 업을 따라서 저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일을 알았나이다. 이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먼저 여쭌 바를 여래께서 해설하시면, 세간 사람·천상 사람·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들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리이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여기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낱낱이 말해 주리라.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하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데에 이르지 아니하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데에 이르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이르지 못할 데는 대열반인데, 범부는 이르지 못하나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있는 탓이며, 몸으로 짓는 짓과 입으로 짓는 짓이 깨끗지 못한 탓이며, 모든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받아 둔 탓이며, 4중금(重禁)을 범한 탓이며, 방등경을 비방한 탓이며, 일천제인 탓이며, 5역죄를 지은 탓이니, 이런 이치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는가. 이르지 못할 데는 대열반인데, 어떠한 뜻으로 이르는가.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과 몸과 입으로 짓는 나쁜 짓을 아주 끊은 까닭이며,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 않는 까닭이며, 4중금을 범하지 아니한 까닭이
   
 
[474 / 909] 쪽  
  며, 방등경전을 비방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일천제가 되지 아니한 까닭이며, 5역죄를 짓지 아니한 까닭이니, 이런 뜻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른다 이름하며, 수다원은 8만 겁에 이르고 사다함은 6만 겁에 이르고, 아나함은 4만 겁에 이르고 아라한은 2만 겁에 이르고 벽지불은 10천 겁에 이르나니, 이런 뜻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르지 않는다 이름하는가. 이를 데라 함은 25유(有)인데,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번뇌에 덮인 바가 되어 갔다 왔다 하면서 여의지 못함이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것 같나니, 이것을 이른다 하며,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은 이미 여의었으므로 이르지 않는다 하며,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 일부러 있으므로 이른다고도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른다 이름하는가. 이를 데라 함은 25유인데, 온갖 범부들과 수다원, 내지 아니함은 번뇌의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른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듣지 못할 것을 듣는 일도 있고, 듣지 못할 것을 듣지 못하는 일도 있고, 듣는 것을 듣지 않는 일도 있고, 듣는 것을 듣는 일도 있느니라.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듣지 못할 것을 대열반이라 하나니, 어찌하여 듣지 못한다 하는가. 함이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음성이 아닌 까닭이며,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듣는다 하는가.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까닭이니 이른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이런 이치로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대열반을 들을 수 없다면,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들을 수 있다' 하나이까?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번뇌를 끊은 이는 열반을 얻었다 이름하고, 번뇌를 끊지 못한 이는 얻지 못하였다 이름하나니, 이런 이치로 열반의 성품은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다 하나이다. 만일 세간의 법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무상하다 이름하나니, 마치 병(甁) 따위가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으니 이미 있다가는 도로 없어지므로 무상하다 하거늘, 열반이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겠습니까? 또 세존이시여, 무릇 장엄함을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나니 열반이 만일 그러하면 으레 무상하다 하겠습니다. 무엇을 인연이라 하나이까? 37품(品)과 6바라밀과 4무량과 뼈의 모양을 관함[骨相觀]과 아나파나(阿那波那)와 6념처(念處)와 6대(大)를 분석하는 것이니, 이런 법들은 모두 열반을 성취하는 인연이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있는 것을 무상하다 하나니, 만일 열반이 있는 것이라면 역시 무상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연각과 부처가 다 열반이 있다 하였사오니, 이런 뜻으로 무상하다 하겠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볼 수 있는 법을 무상하다 하나니,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열반을 보는 이는 온갖 번뇌를 끊는다 하셨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마치 허공이 중생들에게 평등하여 장애가 없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는 것과 같나니, 만일 열반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중생이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하나이까? 열반이 그와 같이 중생들에게 불평등하다면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백 사람에게 공통한 한 사람의 원수가 있을 때에 그 원수를 살해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울 것입니다. 만일 열반이 평등한 법이라면, 한 사람이 얻을 때에 여러 사람이 함께 얻을 것이니, 한 사람이 번뇌를 끊으면 여러 사람도 번뇌를 끊을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나이까? 어떤 사람이 임금이나 왕자나 부모나 스승에게,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이양을 얻으면, 이것은 항상하다 하지 않나이다. 열반도 그러하여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할지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 가운데에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열반을 공경하면 번뇌의 결박을 끊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는다 하였기 때문이오니, 이런 뜻으로 항상하다 이름하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열반에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는 이름이 있으면 항상하다고만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없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열반의 자체는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만일 열반의 자체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다면, 무루의 항상 머무는 법이 아니리라.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성품과 모양이 항상 있건만, 중생들은 번뇌에 가리웠으므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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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을 보지 못하고 없다 하며, 보살마하살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써 마음을 닦아 번뇌를 끊었으므로 문득 보는 것이니, 열반은 항상 머무는 법으로서, 본래는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두운 우물 속에 가지가지 7보가 있는 것을 사람들도 알지만 어두워서 보지 못하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 방편을 알고서 등불을 켜 가지고 가서 비치면 모두 보는 것이며, 이 사람들이 여기서 생각하기를 '물과 7보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하지 않느니라. 열반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요, 지금에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니며, 번뇌가 어두워서 보지 못하거든, 큰 지혜인 여래가 알맞은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서 보살들로 하여금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게 하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장엄을 인하여서 보리를 이루는 것이매, 무상하리라' 함은,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나는 것도 아니요 나오는 것도 아니며 진실한 것도 아니요 빈 것도 아니며 업을 지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유루인 함이 있는 법이 아니며, 들을 것도 아니요 볼 것도 아니요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다른 모양도 아니요 같은 모양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요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요 여럿도 아니요 긴 것도 아니요 짧은 것도 아니며, 둥근 것도 아니요 모난 것도 아니며, 뾰족한 것도 아니요 비낀 것도 아니며, 있는 모양도 아니요 없는 모양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요 빛도 아니며,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니며, 나와 나의 것도 아니니, 이런 이치로 열반은 항상한 것이며 영원히 변역하지 아니하는 것이건만,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선한 법을 닦아 모아서 스스로 장엄한 뒤에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땅밑에 여덟 가지 맛을 가진 물이 있는 것을 모든 중생들이 얻지 못하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 공력을 들여서 파면 얻게 되나니,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마치 눈먼 사람이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다가 용한 의원이 눈을 치료하여 고치면 보게 되거니와, 해와 달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원래 있었던 것이요 지금에야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죄가 있어 옥에 갇히었다가 오랜 뒤에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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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집에 돌아가면, 부모·형제·처자·권속들을 보게 되나니,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인연인 까닭으로 열반의 법이 무상하리라' 함도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 내는 인[生因]이요, 둘째 화합하는 인[和合因]이요, 셋째 머무는 인[住因]이요, 넷째 자라는 인[增長因]이요, 다섯째 먼 인[遠因]이니라. 무엇을 내는 인이라 하는가. 내는 인이란 곧 업과 번뇌며, 밖으로는 초목의 종자들이니, 이것을 내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화합하는 인이라 하는가. 선한 것은 선한 마음과 화합하고, 선하지 못한 것은 선하지 못한 마음과 화합하고 기억이 없는 것[無記]은 기억이 없는 마음과 화합하는 것이니, 이것을 화합하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머무는 인이라 하는가. 마치 아래에 기둥이 있으면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고, 산과 강과 초목은 땅을 인하여 머물러 있는 것같이 안으로 4대와 한량없는 번뇌가 있으므로 중생이 머물러 있나니, 이것을 머무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자라는 인이라 하는가. 의복과 음식 따위를 인연하여 중생이 자라는 것이니, 마치 종자가 불에 타지 아니하고 새가 먹지 아니하면 자라는 것 같으며, 사문(沙門)이나 바라문들이 화상(和上)이나 선지식을 의지하여 자라는 것 같으며, 부모를 인하여 아들이 자라는 따위니, 이것을 자라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먼 인이라 하는가. 마치 주문을 인하여 귀신이 침로하지 못하고 독이 해하지 못하며, 임금을 의지하여 도적이 없으며 싹이 땅과 물과 더운 것과 바람을 인하며, 물과 젓는 것과 사람의 노력이 생소[酥]의 먼 인이 되며, 밝음과 빛이 식(識)의 먼 인이 되며, 부모의 정기와 피가 중생의 먼 인이 되나니, 시절 같은 것을 이름하여 먼 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이러한 다섯 가지 인으로 이룬 것이 아니어늘, 어찌하여 무상의 인이라 말하겠는가.
  또 선남자여, 다시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짓는 인[作因]과 아는 인[了因]이니라. 마치 옹기장이의 물레와 노끈 따위는 짓는 인이라 하고, 등촉으로 어두운 데 물건을 비치는 것은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대열반은 짓는 인을 따라 있는 것이 아니고, 아는 인으로 좇아 있는 것이니, 아는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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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함은 37조도법과 6바라밀 등으로 이것을 아는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시는 열반의 인이요, 대열반의 인은 아니니, 보시바라밀이라야 대열반의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37품은 열반의 인이요, 대열반의 인은 아니니,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 동안의 도를 돕는 법이라야 대열반의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보시는 보시바라밀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어떠한 보시는 보시바라밀이라 이름하오며, 내지 반야는 어찌하면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어찌하면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합니까? 어떤 것은 열반이라 이름하고, 어떤 것은 대열반이라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방등한 대반열반을 수행함에는 보시를 듣지 못하고 보시를 보지 못하며, 보시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보시바라밀을 보지 못하며, 내지 반야를 듣지 못하고 반야를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며, 열반을 듣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하며, 대열반을 듣지 못하고 대열반을 보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 법계를 알고 보며 실상을 이해하여, 공하여 있는 것이 없고 화합하여 깨닫는 모양이 없으며, 무루의 모양과 짓는 일이 없는 모양과 환술과 같은 모양과 더울 때의 아지랑이 같은 모양과 건달바성 따위의 비고 공한 모양을 얻게 되리니, 보살이 이러한 모양을 얻으면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없어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진실한 모습이며, 실상에 머문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그 때에는 이것은 보시요 이것은 보시바라밀이며, 내지 이것은 반야요 이것은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은 열반이요 이것은 대열반임을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어찌하여 이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라 하는가. 달라는 이가 있음을 보고야 주는 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거니와, 달라는 이가 없는데, 마음을 내어 스스로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때때로 주는 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거니와, 항상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다른 이에게 주고는 도로 후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은 보시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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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밀이 아니거니와, 주고는 후회하지 아니하면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재물에 대하여 임금·도둑·수재·화재의 네 가지 공포한 마음을 내어 기쁘게 보시하면 이름을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과보를 희망하여 주는 것은 이름이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며, 주고도 갚음을 바라지 않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공포(恐怖)나 명예나 이양이나 집의 규모[家法]를 상속하거나 천상의 5욕락을 위한다면, 교만을 위함이고, 아는 동무[知識]를 위함이고 오는 세상의 과보를 위하는 것이므로, 장사하는 법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서늘한 그늘을 위하고 꽃과 과실과 재목을 얻기 위하여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과 같나니, 만일 이런 보시를 행한다면 그것은 보시라 이름하거니와 바라밀은 아니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대열반을 수행하는 이는 보시하는 이· 받는 이·주고 받는 재물을 보지 아니하며, 시절을 보지 아니하며, 복밭과 복밭 아님을 보지 아니하며, 인을 보지 않고 연을 보지도 않고 과보도 보지 아니하며, 짓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받는 이도 보지 아니하며, 많음도 보지 않고 적음도 보지 않고, 깨끗함도 보지 않고 부정함도 보지 아니하며, 받는 이와 자기와 재물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며, 보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보지 않는 이도 보지 아니하며, 자기와 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방등한 대반열반의 항상 머무는 법을 위하므로 보시를 수행하고 모든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며, 온갖 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며,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받는 이·주는 이·재물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큰 바다에 빠졌을 때에 송장이라도 붙들면 벗어나게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도 그와 같아서 송장과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옥에 갇히면, 문이 굳게 잠기고 뒷간 구멍만이 있는데, 그리로 나와서라도 자유로운 곳에 가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존귀한 사람이 위급하고 무서울 때에 의지할 데가 없으면 전다라에게라도 의지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난 사람이 병고를 소멸하고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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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얻기 위하여서는 부정한 것이라도 먹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바라문들이 곡식이 귀할 적에는 목숨을 위하여서 개고기라도 먹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대열반 중에서는 이러한 일을 한량없는 겁 동안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 것이니, 지계와 지계바라밀과, 내지 반야와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잡화경(雜花經)』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는가. 12부 경전은 뜻이 매우 깊어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인데, 이제 이 경을 인하여 구족하게 들으며, 먼저 들었다 하더라도 이름만 듣다가 이제 이 대반열반경에서 뜻을 들었으며, 성문·연각도 12부 경전의 이름만 듣고 뜻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 경에서 갖춰 들었으니, 이것을 일러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성문·연각의 경에서는 부처님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는 것과 필경에 멸하지 않는다는 것과 삼보의 불성에 차별이 없다는 것과 4중금을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였거나, 5역죄를 지었거나, 일천제들이 모두 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다가, 지금 이 경에서 듣는 것을 이름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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