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17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 ④
   
  이 때에 왕사성의 아사세왕은 성질이 모질고 살육하기를 좋아하며,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나쁜 짓을 갖추었으며, 탐심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이 치성하여 눈앞의 일만 보고 장래 일을 보지 못하였으며, 나쁜 사람들로 권속을 삼았고 현세의 5욕락만을 탐하는 탓으로 허물 없는 부왕을 살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부왕을 살해하고 나자 마음으로 뉘우치는 열기를 내고 몸에는 영락을 벗고 풍류를 가까이하지 아니하며, 마음에 뉘우침의 열기로 온 몸에 독창이 생기어 지독한 냄새가 나 가까이할 수 없었다. 드디어 생각하기를 '내 몸이 지금 화보(花報)를 받았으니 지옥의 과보도 멀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 때에 어머니 위제희(韋提希)가 가지가지 약을 발라 주었지만, 독창은 더욱 성하고 나아지지 아니하였다. 왕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이 독창은 마음에서 생기었고 4대(大)로 난 것이 아니니, 중생으로는 다스릴 도리가 없겠나이다."
  이 때에 한 대신이 있으니 이름은 월칭(月稱)이었다. 왕에게 나아가 한 곁에 서서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무슨 근심을 하시는지, 안색이 화평하지 못하시나이다. 몸이 아프시나이까? 마음이 불편하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허물이 없는 부왕을  
   
 
[405 / 909] 쪽  
  역해(逆害)하였구려. 나는 일찍이 지혜 있는 이에게 들은즉, 이 세상에서 다섯 종류의 사람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나니, 5역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였소. 나는 이미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 죄를 지었거늘, 어떻게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겠소. 더구나 나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여 줄 의원이 없구려."
  "대왕이시여, 너무 근심하지 마옵소서."
  그리고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다섯 종류의 사람이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오나, 누가 가서 보고 대왕에게 말하더이까? 지옥을 말함은 이 세상에서 잔꾀 있는 사람의 말이옵니다. 대왕의 말씀이 세상에는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오나, 지금 큰 의원이 있으니 이름은 부란나(富蘭那)라 하나이다. 온갖 것을 알고 보고 하오며, 자재한 선정을 얻었사오며, 깨끗한 범행을 끝까지 닦았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에게 위없는 열반의 길을 연설하오며 제자들에게는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검은 업도 없고 검은 업의 과보도 없으며, 흰 업도 없고 흰 업의 과보도 없으며, 검고 흰 업도 없고, 검고 흰 업의 과보도 없으며, 상품 업도 없고 하품 업도 없다.' 이런 사람이 지금 왕사성 안에 있사오니, 원컨대 대왕이시여, 그 사람에게 거둥하시어서 그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치료케 하여지이다."
  "참으로 나의 죄를 벗겨줄 수 있다면 내가 마땅히 귀의하리라."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이 장덕(藏德)이었다. 왕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406 / 909] 쪽  
  "대왕께서 용안이 여위시고 입술이 마르시고 음성이 작으심이 마치 겁약한 사람이 큰 대적을 만난 듯, 얼굴이 초췌하시니 무슨 괴로움이 계시나이까? 몸이 아프십니까? 마음이 불편하십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내가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여 친구를 삼았으며, 제바달다란 악한 사람의 말을 듣고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시는 부왕을 역해하였구려. 나는 일찍이 지혜 있는 사람의 게송을 들었소.
   
  아버지나 어머니나  
  부처님과 제자에게  
  좋지 못한 마음으로
  나쁜 짓을 지었으면  
  이와 같은 과보로는  
  아비지옥 간다 하오.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마음이 송구하고 매우 괴로움을 참지 못하며, 더구나 치료하여 줄 의원도 없구려."
  "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옵소서. 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출가한 법이요 다른 하나는 임금의 법입니다. 임금의 법에는 부왕을 해하였으면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이매, 비록 시역이라 하더라도 죄가 없는 것입니다. 저 가라라충(迦羅羅虫) 어미의 배를 무너뜨리고야 나오지만, 나오는 법이 그러하므로 비록 어미의 배를 무너뜨렸으나 죄가 없는 것이며, 노새가 새끼를 배는 것도 그와 같나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 그런 것이오매, 비록 아버지나 형을 살해하였더라도 죄가 없는 것이옵고, 출가한 법에는 모기나 개미를 살해하여도 죄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은 마음을 너그럽게 하시고 걱정하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이는  
   
 
[407 / 909] 쪽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거니와, 지금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을 말가리구사리자(末伽梨拘舍離子)라 하나이다. 온갖 것을 알고 보며, 중생들을 갓난아기처럼 불쌍히 여기고, 번뇌를 이미 여의었으며, 중생들의 세 가지 독한 살을 뽑아 주나이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법을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거니와, 이 사람만이 홀로 알고 보고 깨달았으며, 이런 스승이 항상 제자들에게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의 몸에 일곱 가지 부분이 있으니, 지대·수대·화대·풍대·괴로움·즐거움·목숨이라, 이 일곱 가지 법은 변화함도 아니고 지음도 아니어서, 깨뜨릴 수 없기는 이사가 풀과 같고, 머물러 있어 흔들리지 않기는 수미산과 같고, 버릴 수 없고 지을 수 없기는 타락과 같아서 각각 서로 시새우지 아니하며, 괴롭거나 즐겁거나 선하거나 선하지 않거나가, 마치 잘 드는 칼에 던져져도 상하지 않음 같으니, 왜냐 하면 일곱 부분이 공한 속에서 서로 장애되지 않는 연고며, 목숨도 해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해할 이와 죽을 이가 없는 까닭이며, 짓는 이도 없고 받을 이도 없고 말할 이도 없고 들을 이도 없으며, 생각 하는 이도 가르칠 이도 없는 까닭이다.'
  항상 이런 법을 말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한량없는 중대한 죄를 멸하나이다. 그 사람이 지금 왕사성에 있사오니, 바라건대 대왕께서 그곳에 가시어서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될 것입니다."
  "참으로 나의 죄를 멸할 수 있으면 내가 마땅히 귀의할 것이오."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은 실득(實得)이었다. 왕에게 이르러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대왕께서 무슨 일로  
   
 
[408 / 909] 쪽  
  몸에 영락 벗으시며  
  머리카락 덥수룩해  
  이런 모양 되시니까.
   
  대왕의 몸 무슨 일로  
  불안하고 벌벌 떨어
  꽃가지에 바람 불어  
  흔들리듯 하나이까.
   
  "대왕의 용안에 수심이 가득하심, 마치 농부들이 씨를 심은 뒤에 비가 오지 아니하여 걱정하는 듯 하오니, 마음이 불안하시나이까? 몸이 아프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선대왕께서 인자하시며 나를 사랑하기 특별하시어 조그만 허물도 없었으며, 관상쟁이에게 물었더니, 관상쟁이의 말이 아이가 나기만 하면 반드시 아버지를 해하리라 하였으나, 이런 말을 들으시고도 나를 사랑하여 기르셨소. 일찍이 지혜 있는 이의 말을 듣건대, 만일 사람이 어미나 비구니를 간통하거나, 승가의 물건을 훔치거나, 위없는 보리심 낸 이를 죽이거나, 아버지를 살해하면, 이런 사람은 결정코 아비지옥에 떨어진다 하였거늘,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원컨대 대왕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왕께서 해탈을 닦으셨으면 해한 것이 죄가 되려니와, 나라를 다스렸으므로 해하여도 죄될 것이 없나이다. 대왕이여, 법이 아닌 것은 무법이라 이름하오며, 무법이란 말은 무죄라는 뜻이니이다. 마치 아들이 없는 것을 무자라 하고 나쁜 아들도 무자라 하거니와, 무자라 하더라도 참으로 아들이 없는 것이 아니오며, 음식에 소금이 안 든 것도 간이 안 되었다 하고 소금이 덜 든 것도 간이 안 되었다 하오며, 강에 물이 아주 마른 것도 물이 없다 하고 물이 적은 것도 물이 없다 하오며, 찰나찰나 없어지는 것도 무상하다 하고 한 겁 동안을 살아도 무상하다 하오며, 사람이 괴로움을 받는 것도 낙이 없다 하고 즐거움이 적어도 낙이 없다 하오
   
 
[409 / 909] 쪽  
  며, 자제하지 못함을 내가 없다 하고 조금 자제하는 것도 내가 없다 하오며, 캄캄한 밤을 해가 없다 하고, 안개가 자욱할 때에도 해가 없다 하는 것 같사오니, 대왕이시여, 법이 부실하다고 무법이라 하오나 실로 법이 없는 것이 아니니이다. 원컨대 대왕은 유의하시어 신의 말을 들으십시오.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남은 업[餘業]이 있고 업의 인연으로 자주자주 생사를 받는 것이온데, 만일 선왕께서 남은 업이 있사오면 지금 대왕께서 해하였기로 무슨 죄가 있겠나이까?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시고 수심하지 마시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이는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오나, 지금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을 산사야비라지자(刪闍耶毗羅胝子)라 하나이다. 온갖 것을 알고 보며, 지혜의 깊기는 바다와 같고, 큰 위덕이 있고 큰 신통을 갖추었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은 알고 보고 깨닫지 못하오나, 이 사람만이 홀로 알고 보고 깨달았으며, 지금 왕사성 가까운 데 있어 제자들에게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모든 중생 중에 임금된 이는 자재하게 마음대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짓나니, 비록 여러 가지 악한 일을 짓더라도 죄가 있는 것 아니니라. 마치 불이 물건을 태울 적에 깨끗하고 부정한 것이 없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불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땅덩이가 깨끗한 것 더러운 것을 모두 실을 적에 기뻐하거나 성내지 아니하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땅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물이 깨끗한 것 더러운 것을 모두 씻으면서도 기뻐하고 근심함이 없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물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바람이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모두 불
   
 
[410 / 909] 쪽  
  어 날리면서도 기뻐하고 근심함이 없나니, 임금도 그러하여 바람의 성품과 같으니라. 마치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졌다가 봄이 되면 다시 나나니, 비록 잎을 떨어뜨려도 진실로 죄가 없듯이,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여기서 목숨이 마치고는 다시 여기에 나는 것이며, 다시 하는 것이매 무슨 죄가 있겠는가. 모든 중생의 괴롭고 즐거운 과보는 모두 현재의 업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지난 세상에 지은 인으로 지금 세상에서 과보를 받는 것이니, 현재의 인이 없고 다음 세상에 과보가 없건만 현재의 과보를 위하여 중생들이 계율을 가지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현재의 나쁜 과보를 막는 것이니라. 계율을 가지므로 무루(無漏)를 얻고 무루를 얻으므로 번뇌의 업이 다하고, 업이 다하므로 모든 고통이 끝나고, 모든 고통이 끝나므로 해탈을 얻는다.'
  원컨대 대왕은 그이에게 가시어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옵소서. 대왕이 그를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되리이다."
  "참으로 그 사람이 나의 죄를 멸할 수 있으면 내가 마땅히 귀의할 것이오."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은 실지의(悉知義)였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무슨 일로 용안이 단정하지 못하시나이까? 나라를 잃은 이 같으며, 우물이 마른 듯하며, 못에 연꽃이 없는 것 같으며, 나무에 꽃과 잎이 없는 듯하며, 파계한 비구의 위덕이 없는 것 같사오니, 몸이 편치 않으십니까? 마음이 괴로우십니까?"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부왕께서는 인자하신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셨건만, 내가 불효하여 은혜 갚을 줄을 몰랐으며, 항상 나를 즐겁게 하셨건만 내가 배은망덕하여 즐거움을 끊었으며, 선왕께서 허물이 없으시거늘 내가 역해를 하였구려. 일찍이 지혜 있는 이의 말을 듣건대, 만일 아비를 해하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큰 고통을 받는다 하더니, 나는 이제 오래지 않아 지옥에 떨어질 것이거늘, 어느 의원 한 사람 나의 죄를 구하여 줄 이가 없구려."
  "원컨대 대왕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옛적에 라마(羅摩) 임금은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고, 발제대왕·비루진왕·나후사왕·가제가왕·비사가
   
 
[411 / 909] 쪽  
  왕·월광명왕·일광명왕·애왕·지다인왕, 이런 임금들이 모두 부모를 살해하고 왕이 되었지만 한 임금도 지옥에 들어간 이가 없사오며, 지금 계시는 비유리왕·우타나왕·악성왕·서왕·연화왕, 이런 임금이 모두 그 부왕을 해하였지만 한 임금도 걱정 근심하는 이가 없습니다. 비록 말로는 지옥이니 아귀의 갈래니 천상이니 하지만 누가 보았나이까? 대왕이여, 다 두 갈래뿐이오니 인간과 축생이오며, 두 갈래가 있지만 인연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인연으로 죽는 것도 아니오며, 만일 인연이 아니라면 무슨 선과 악이 있겠나이까? 원컨대 대왕은 걱정하고 공포하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오나, 지금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을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라 하나이다. 온갖 지견을 가진 이로서 금과 흙을 평등하게 보며, 오른쪽 옆구리를 칼로 찌르거나 왼쪽 옆구리를 전단으로 바르더라도 이 두 사람에게 차별하는 마음이 없으며, 원수와 친한 이를 평등하게 대하고 다르게 생각하지 아니하오니, 이 사람은 진실로 이 세상의 용한 의원입니다. 가거나 섰거나 앉거나 누웠거나 항상 삼매에 있어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하오며, 제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나이다.  
  '제가 짓거나 남을 시켜 지었거나, 제가 찍었거나 남을 시켜 찍었거나, 제가 구웠거나 남을 시켜 구웠거나, 제가 해하였거나 남을 시켜 해하였거나, 제가 훔쳤거나 남을 시켜 훔쳤거나, 제가 음행하였거나 남을 시켜 음행하였거나, 제가 거짓말 하였거나 남을 시켜 거짓말 하였거나, 제가 술을 먹었거
   
 
[412 / 909] 쪽  
  나 남을 시켜 술을 먹었거나, 한 마을·한 도시·한 나라 사람들을 살해하였거나, 칼로써 모든 중생을 죽였거나, 항하의 남쪽에서는 중생에게 보시하고 항하의 북쪽에서는 중생들을 살해하였어도 죄도 복도 모두 없으며, 보시하고 계행 가지고 선정 닦는 일이 없다.'  
  지금 왕사성 가까이 있사오니, 대왕은 속히 가옵소서. 대왕이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할 것이니이다."
  "대신하여 참으로 나의 죄를 소멸할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귀의할 것이오."
  또 한 대신이 있으니 이름은 길덕(吉德)이었다. 또 왕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무슨 일로 용안에 윤기가 없나이까. 낮에 켠 등불 같고 낮에 보는 달 같고, 나라 잃은 임금 같고 장사에 실패한 사람 같나이다. 대왕이시여, 지금 사방이 태평하여 원수나 대적이 없사온데, 무슨 연고로 이다지 수심하시나이까. 몸이 괴로우시나이까, 마음이 아프시나이까? 다른 왕자들은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언제나 자재함을 얻을까 하옵는데, 대왕은 이제 소원을 이루었고 자재하신 왕으로서 마가타국을 차지하셨고 선왕의 보물을 모두 다 얻었사온즉, 마땅히 만족한 마음으로 복을 즐길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다지도 근심하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내가 지금 어떻게 수심하지 않겠는가. 대신이여, 어리석은 사람이 단맛만 탐하고 칼날을 보지 못하는 듯, 독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걱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듯, 나도 그와 같으며, 사슴이 먹을 풀만 보고 함정을 보지 못하는 듯, 쥐가 먹을 것만 보고 고양이를 보지 못하는 듯, 나도 그와 같아서 현재의 쾌락만 보고 오는 세상에서 고통의 나쁜 과보 받을 줄을 보지 못하였소. 일찍이 지혜 있는 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소. '차라리 하루 동안에 3백 자루 창에 찔릴지언정 부모에게 대하여 잠깐 동안 나쁜 생각을 내지 말라' 하였거늘, 나는 지금 지옥의 맹렬한 불에 타게 되었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겠소."
  "누가 지옥이 있다고 말하더이까. 가시 끝이 뾰족한 것은 누가 만들었으며, 나는 새의 빛이 제각기 다른 것은 누가 지었으며, 물의 성질은 축축하고  
   
 
[413 / 909] 쪽  
  돌의 성질은 단단하고 바람은 흔들리고 불은 뜨거우며, 온갖 만물이 저절로 났다가 저절로 죽는 것은 누구의 짓이오니까. 지옥이란 말은 잔꾀 있는 이의 문자로 조작한 말이오니, 지옥이 무슨 뜻인지를 신이 말하겠습니다. 지는 땅이요 옥은 깨뜨린다는 것이니, 지옥을 깨뜨려도 죄보가 없사올새 지옥이라 하나이다. 또 지는 인간이요 옥은 천상이니, 아비를 살해한 탓으로 인간·천상에 이를 수 있으므로, 바수(婆藪) 선인이 말하기를 '양을 죽이고 인간·천상의 낙을 얻는다'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지옥이라 하나이다. 또 지는 목숨이요 옥은 길다는 것이니 생명 있는 것을 죽이면 목숨이 길어지므로 지옥이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그러므로 실로 지옥이 없는 줄을 알겠나이다. 대왕이여, 밀을 심으면 밀을 거두고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두듯이, 지옥을 죽이면 지옥에 나게 되고 사람을 살해하고는 인간에 날 것입니다.
  대왕이여, 지금 신이 말하는 살해가 없는 이치를 들으십시오. 만일 내가 있다 하여도 실로 살해함이 없삽고, 만일 내가 없다면 해할 것이 없나이다. 왜냐 하면 내가 있다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할 것이며, 항상 머무는 터이므로 살해하지 못할 것이니, 깨뜨리지 못하고 부수지 못하고 얽매지 못하고 속박하지 못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기뻐하지 아니함이 허공과 같을 것이니 어찌 살해하는 죄가 있겠나이까. 만일 내가 없다면 모든 법이 무상할 것이며, 무상한 것이므로 찰나찰나 멸할 것이니, 찰나찰나 멸하는 연고로 죽인 이 죽은 이가 모두 찰나찰나 멸할 것이요, 만일 찰나찰나 멸한다면 누가 죄가 있겠나이까. 대왕이시여, 불이 나무를 태워도 불은 죄가 없으며, 도끼로 나무를 찍어도 도끼는 죄가 없으며, 낫으로 풀을 베어도 낫은 죄가 없나이다. 마치 칼로 사람을 죽였을 적에 칼은 실로 사람이 아니니, 칼이 이미 죄가 없을진댄 사람이 무슨 죄가 있사오며, 독약으로 사람을 죽였을 적에 독약은 실로 사람이 아니니, 독약이 죄가 없을진댄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나이까. 온갖 만물도 그와 같아서 진실로 살해함이 없삽거늘 어찌 죄가 있사오리까?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게송과 같이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을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거니와, 여기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은 가라구타가전연(迦羅鳩馱迦旃延)입니다. 온갖 지견을 가진 이로서 삼세를 분명히 알고, 잠깐 동안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를 보고, 소리를 듣는 것도 그와 같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허물을 여의게 함이, 마치 항하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허물이 모두 깨끗하듯이, 이 사람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안팎의 죄를 멸하게 하오며, 제자들에게 이런 법을 말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모든 중생을 살해하고도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마치 허공이 티끌과 물을 받지 않는 듯하며, 부끄러움이 있으면 지옥에 떨어지나니, 마치 큰 물이 땅을 적시는 듯하니라. 모든 중생은 모두 자재천이 지은 것으므로 자재천이 기뻐하면 중생들이 안락하고 자재천이 노하면 중생들이 고통을 받으며, 모든 중생의 죄와 복은 모두 자재천이 하는 것이거늘, 어찌 사람에게 죄와 복이 있다고 말하리요. 마치 공장(工匠)이 허깨비 사람[機關木人]을 만들면 가고 서고 앉고 눕지만 말은 하지 못하나니, 중생도 그와 같아서, 자재천은 공장과 같고 허깨비 사람은 중생의 몸과 같으며, 이와 같이 만드는 것이거늘 누구에게 죄가 있겠느냐.'
  이 사람이 지금 왕사성에 있사오니, 원컨대 빨리 가시면 보기만 하여도 모든 죄가 소멸할 것입니다."
  "진실로 이런 사람이 있어 나의 죄를 멸한다면 내가 마땅히 귀의하리라."
  또 한 신하가 있으니 이름은 무소외(無所畏)였다.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하루 동안에 백 번 기뻐하고 백 번 수심하며, 백 번 자고 백 번 깨며, 백 번 놀라고 백 번 통곡하거니와, 지혜 있는 사람은 그런 일이 없삽거늘, 대왕은 무슨 일로 그렇게 수심하나이
   
 
[415 / 909] 쪽  
  까. 동무를 잃은 나그네 같으며, 수렁에 빠졌을 적에 구원할 이가 없는 것 같으며,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만나지 못한 듯하며, 길을 잃은 사람이 길잡이를 만나지 못한 듯하며, 병든 사람에게 치료할 의원이 없는 듯하며, 바다에서 파선하였을 적에 건질 이가 없는 듯합니다. 대왕께서는 지금 몸이 아프시나이까, 마음이 불안하시나이까?"
  왕은 대답하였다.
  "나의 몸과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나는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고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허물 없는 부왕을 역해하였으니, 마땅히 지옥에 들어갈 줄 알지만 구제하여 줄 의원이 없구려."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지 마소서. 찰리는 왕족이라 하옵는데, 국왕이 되었거나 사문이 되었거나 바라문이 되어서,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하여서는 비록 살해하더라도 죄가 없나이다. 선왕이 사문을 공경하였으나 바라문은 섬기지 아니하였으니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였삽고, 평등하지 못한 연고로 찰리가 아니니이다. 대왕께서 바라문들을 공양하시려고 선왕을 해하심이 무슨 죄가 있사오리까. 대왕이여, 실로 살해가 없나이다. 살해란 말은 목숨을 죽였다는 것인데, 목숨은 바람 같은 기운이오며, 기운의 성품은 살해할 수 없거늘, 어찌하여 목숨을 살해하였다고 죄가 있사오리까?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지 마옵소서. 왜냐 하면 게송과 같기 때문입니다.
   
  항상 근심하는 사람  
  근심 더욱 느는 것이,  
  잠 잘자는 잠꾸러기  
  잠이 점점 많아지듯,  
  탐욕·음욕·술 먹는 일  
  역시 그와 같으니라.
   
  대왕의 말씀이 이 세상에 치료할 의원이 없다 하거니와, 여기 큰 스승이 있으니 이름은 니건타야제자(尼乾陀若提子)이온데, 온갖 지견을 가진 이로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며, 중생들의 근성이 영리하고 둔함을 잘 알고 모든  
   
 
[416 / 909] 쪽  
  방편을 통달하여,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이 더럽히지 못하고 고요하게 깨끗한 범행을 닦았으며, 제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나이다.
  '보시도 없고 선한 일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지금 세상도 없고 뒤의 세상도 없고 아라한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닦을 도도 없으며, 모든 중생들이 만겁을 지나면 생사의 윤회에서 자연히 해탈하며,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간에 모두 그러한 것이니라. 마치 신두·항하·박차·사타 등 네 강이 모두 바다에 들어가서 아무 차별도 없듯이,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해탈을 얻을 적에는 차별이 없다.'
  이 사람이 지금 왕사성에 있사오니 원컨대 대왕은 빨리 가십시오. 그 사람을 만나면 모든 죄가 소멸할 것입니다.
  "진실로 그 사람이 나의 죄를 덜어준다면 나는 마땅히 귀의하겠소."
  이 때에 기바라는 큰 의원이 임금 계신 데 나아가서 여쭈었다.
  "대왕이여, 안녕히 주무셨나이까?"
  왕은 게송으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누구든지 모든 번뇌  
  깨끗하게 끊어지고
  이 세상에 물 안 들면  
  편안하게 잠을 자고.
   
  큰 열반을 얻고 나서  
  깊은 뜻을 연설하며
  참바라문 된 뒤에야  
  편안하게 잠을 자고.
   
  몸으로는 세 가지 업  
  입으로는 네 가지 업
  의심 그물 끊은 뒤에  
  편안하게 잠을 자고.
   
 
[417 / 909] 쪽  
  목과 맘에 번뇌 없고  
  고요한 곳 머물러서
  위없는 낙 얻고서야  
  편안하게 잠을 자고.
    
  마음 속에 고집 없고  
  원수들을 멀리 떠나
  다툼 없이 화평하면  
  편안하게 잠을 자고.
   
  나쁜 업을 짓지 않고  
  부끄러움 항상 품어
  악의 과보 믿어야사  
  편안하게 잠을 자고.
   
  부모에게 공경하고  
  산 목숨을 살해 말고
  남의 재물 안 훔치면  
  편안하게 잠을 자고.
   
  모든 감관 조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하며
  마군들을 깨뜨려야  
  편안하게 잠을 자고.
   
  고·락·길·흉 보지 말고  
  중생들을 위하여서
  나고 죽고 애쓰는 이  
  편안하게 잠을 자네.
   
 
[418 / 909] 쪽  
  평안하게 잠잘 이는  
  시방세계 부처님들  
  공한 삼매 관하면서  
  몸과 마음 편안한 이.
   
  편안하게 잠잘 이는  
  자비하신 보살들
  불방일(不放逸)을 항상 닦고  
  중생 보길 아들처럼.
   
  무명 가린 중생들이  
  번뇌 과보 못 보면서
  나쁜 업만 짓는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자기 몸을 위해서나  
  다른 이를 시키어서
  10악업을 짓는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아비 죽인 죄 없으니  
  목전 쾌락 누리자는
  나쁜 동무 사귄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절차 없이 밥을 먹고  
  지나치게 찬 술 먹고
  그리고서 병난 이는  
  편안한 잠 못 자느니.
   
 
[419 / 909] 쪽  
  임금에게 죄를 짓고  
  유부녀에 정을 두고
  쓸쓸한 길 다니는 인  
  편안한 잠 못 자느니.
    
  계행 아직 미숙한 이  
  등극 못한 태자거나
  돈 못 뺏은 도둑들은  
  편안한 잠 못 자느니.
   
  기바여, 나는 지금 병이 중하오.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부왕에게 역해를 하였으니, 모든 의원이나 약이나 주문이나 좋은 방편으로 구원하더라도 나을 수가 없소. 그 까닭을 말하면 부왕께서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실로 허물이 없거늘, 나쁜 마음으로 역해를 하였는지라, 뭍에 나온 물고기 같으니 무슨 낙이 있으며, 그물에 걸린 사람과 같으니 애초부터 즐거운 생각이 없으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을 아는 사람과 같으며,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는 임금과 같으며, 자기의 병은 고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 같으며, 파계한 이가 죄의 설명을 들은 것 같구려. 나는 예전에 지혜 있는 이의 말을 들으니,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이 깨끗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 하였소. 나의 신세가 그와 같거니 어찌 편안하게 잠을 자겠는가. 그리고 나에게는 법의 약을 말하여, 병을 치료하여 줄 만한 훌륭한 의원이 없소."
  "좋은 말씀입니다. 대왕께서는 비록 죄를 저질렀으나 마음으로 깊이 뉘우치고 부끄러운 생각을 품으셨나이다. 대왕이시여, 부처님 세존이 항상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선한 법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으니, 하나는 제 부끄러움[慚]이요, 다른 하나는 남 부끄러움[愧]이니라. 제 부끄러워하는 이는 스스로 죄를 짓지 아니하고, 남 부끄러워 하는 이는 다른 이를 시켜 죄를 짓지 아니하며, 제 부끄러워하는 이는 속으로 수치한 줄 알고, 남 부끄러워 하는 이는 남을 향하여 죄를 털어 놓으며, 제 부끄러운 이는 사람에게 부끄럽고,  
   
 
[420 / 909] 쪽  
  남 부끄러운 이는 하늘께 부끄러워하나니 이것을 참괴라 하느니라. 참괴가 없는 이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짐승이라 이름하며, 참괴가 있으므로 부모와 스승과 웃사람을 공경하고, 참괴가 있으므로 부모 형제 자매가 있다고 말하느니라' 하시더니, 대왕께서는 지금 참과 괴를 갖추었나이다.  
  대왕이시여, 신이 부처님의 이런 말씀을 들었나이다.
  '지혜로운 이가 둘이니 하나는 나쁜 짓을 짓지 않는 이요, 다른 하나는 지은 뒤에 곧 참회하는 이니라. 어리석은 이도 둘이니 하나는 죄를 짓는 이요, 하나는 짓고는 감추려는 이니라. 비록 나쁜 짓을 지었지만, 이내 드러내어 참회하며 참회하고는 부끄러워서 다시 짓지 아니하면, 마치 흐린 물에 맑은 구슬을 넣으면 구슬의 위력으로 물이 곧 맑아지며, 구름이 걷히면 달이 청명하여지듯이, 죄를 짓고 참회하는 것도 그와 같다.'
  왕께서 만일 참회하시고 참괴한 생각을 품으시면 죄가 곧 소멸되어 본래와 같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부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코끼리와 말과 가지가지 짐승이요, 다른 하나는 금과 은과 가지가지 보배이온데, 코끼리와 말이 아무리 많아도 여의주 하나를 대적할 수 없나이다. 중생도 그러하여 하나는 악이 부자요 하나는 선이 부자니, 모든 악을 많이 지어도 한 가지 선함만 같지 못하나이다. 신이 부처님 말씀을 듣사오니 한 가지 선을 닦는 마음이 백 가지 악을 깨뜨린다 하더이다. 대왕이시여, 작은 금강이 능히 수미산을 깨뜨리며, 작은 불이 능히 온갖 것을 태우며, 적은 독약이 능히 중생을 해롭게 하나니, 작은 선도 그와 같아서 큰 악을 파하오며, 비록 작은 선이라 이름하나 실제로는 큰 것이니 왜냐 하면 큰 악을 파하는 까닭입니다. 대왕이시여,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덮어 감추는 것은 새고 감추지 아니하면 새지 않나니, 털어놓고 허물을 참회하므로 새지 않느니라. 여러 가지 죄를 지었더라도 덮어 두지 말고 감추지 말지니, 덮어 두지 아니하므로 죄가 경미하여지고 부끄러운 생각을 품으면 죄가 소멸한다'고 하였나이다. 대왕이시여, 물방울이 비록 작으나 점점 모이면 큰 그릇에 차나니, 선한 마음도 그러하여 하나하나의 선한 마음이 큰 악을 깨뜨리는 것이오며, 만일 죄를 덮어 두면 죄가 점점 더하거니와, 털어놓고 참회하면 죄가 소멸하는 것이므로 부처님 말씀이 지혜 있는  
   
 
[421 / 909] 쪽  
  이는 죄를 덮어 두지 아니한다 하였나이다. 좋은 일입니다. 대왕이시여, 능히 인과 과를 믿사오며 업을 믿고 과보를 믿사오니, 원컨대 대왕은 근심하고 공포하지 마시옵소서.
  만일 어떤 중생이 모든 죄를 짓고는 덮어 두고 참회하지 아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며, 인과와 업보를 보지 못하면서 지혜 있는 사람에게 묻지도 아니하며 선지식을 친근하지 아니하면, 이런 사람은 모든 훌륭한 의원이나 병구원을 잘하는 이라도 다스릴 수 없나니, 마치 대풍창병은 세간의 의원들이 손을 댈 수 없는 것처럼 죄를 감추는 사람도 그와 같나이다. 어떤 것을 죄인이라 합니까. 일천제를 말함입니다. 일천제는 인과(因果)를 믿지 않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고 업보를 믿지 않고, 지금 세상과 오는 세상을 보지 못하며, 선지식을 친근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나니 이런 사람을 일천제라 하며, 부처님들도 다스릴 수 없나이다. 왜냐 하면 마치 세간의 죽은 송장은 의원도 고칠 수 없는 것처럼, 일천제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세존도 다스릴 수 없거니와, 대왕은 일천제가 아니옵거늘 어찌 치료할 수 없다고 말씀하나이까.
  왕의 말씀은 치료할 이가 없다 하시오나, 가비라성 정반왕의 아드님은 성은 구담이요 이름은 실달다이니, 스승이 없이 혼자 깨달아서 자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사오며, 32상과 80종호로 몸을 장엄하고, 10력과 4무소외(無所畏)와 온갖 지견과 대자비를 구족하옵고,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김을 라후라와 같이 하며, 선한 중생을 따르기를 송아지가 어미 따르듯 하며, 때를 알아서 말하고 때가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며, 진실한 말·깨끗한 말·미묘한 말·이치 있는 말·법다운 말·한결같은 말을 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번뇌를 영원히 여의게 하며, 중생들의 근성과 심리를 잘 알고 마땅한 방편을 모두 통달하였으며, 지혜의 높고 크기는 수미산 같고, 깊고 넓기는 바다와 같으며, 이 부처님 세존은 금강 같은 지혜가 있어 중생들의 모든 죄악을 깨뜨리나니, 못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나이다.  
  여기서 12유순 되는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계시며, 한량없는 아승기 보살들을 위하여 가지가지 법을 연설하시니, 있는 법, 없는 법, 함이 있는 법, 함이 없는 법, 샘이 있는 법, 샘이 없는 법, 번뇌의 과보, 선
   
 
[422 / 909] 쪽  
  한 법의 과보, 빛이 있는 법, 빛이 아닌 법,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닌 법, 나라는 법, 내가 아닌 법, 나도 아니고 나 아님도 아닌 법, 항상한 법, 항상하지 않은 법,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닌 법, 즐거운 법, 즐겁지 않은 법, 즐겁지도 않고 즐겁지 않음도 아닌 법, 모양 있는 법, 모양 아닌 법,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닌 법, 아주 없는 법, 아주 없지 않은 법, 아주 없지도 않고 아주 없지 않음도 아닌 법, 세간법, 출세간법, 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 법, 승(乘)인 법, 승 아닌 법, 승도 아니고 승 아님도 아닌 법, 제가 짓고 제가 받는 법, 제가 짓고 남이 받는 법,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는 법 들이옵니다. 대왕이 만일 부처님 계신 데서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음을 들으시면 있는 바 중대한 죄가 곧 소멸할 것입니다.
  대왕은 또 들으십시오. 제석환인이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생기니, 첫째는 옷에 때가 묻고, 둘째는 머리 위에 꽃이 시들고, 셋째는 몸에서 냄새가 나고, 넷째는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다섯째는 앉은 자리가 편안하지 못함입니다. 이 때에 제석이 고요한 곳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고는 그곳에 나아가 부처님인 줄 생각하더니, 그 때에 사문과 바라문은 제석이 오는 것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면서 천왕이여, 나는 지금 당신에게 귀의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석이 듣고는 부처가 아닌 줄 알고 다시 생각하기를 '저가 부처가 아니면 나의 다섯 가지 쇠퇴하는 모양을 다스릴 수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때에 모시고 있던 신하 반차시가 제석에게 말하였습니다.
  '교시가여, 건달바왕의 이름이 돈부루요, 왕의 딸은 수발타라 하나니, 왕이 이 아가씨를 신에게 주시면 신이 그 쇠퇴하는 모양을 없앨 방도를 보여드리겠나이다.'  
  제석의 대답하였습니다.
  '선남자야, 비마질다 아수라왕의 딸은 이름이 사지라. 내가 공경하는 터이나, 경이 만일 나의 쇠퇴함을 소멸할 방도를 보여주면 경에게 주리니, 하물며 수발타리요.'
  '교시가여, 부처님 세존이 계시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며, 지금 왕사성에 있으니, 그이에게 가서 물으면 쇠퇴하는 모양을 없앨 수 있으리이다.'
   
 
[423 / 909] 쪽  
  '선남자야, 부처님이면 쇠퇴하는 모양을 없앨 수 있으리니 수레를 돌려 그리로 가자.'
  신하는 왕의 명을 받들어 수레를 몰아 왕사성의 기사굴산에 이르렀다. 제석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한 곁에 물러가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천상 인간에서 무엇이 속박하나이까?'
  '교시가여, 간탐과 질투니라.'
  또 여쭈었다.
  '간탐과 질투는 어찌하여 생기나이까?'
  '무명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무명은 무엇을 인하여 생기나이까?'
  '방일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방일은 또 무엇을 인하여 생기나이까?'
  '뒤바뀜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뒤바뀜은 또 무엇을 인하여 생기나이까?'
  '의심을 인하여 생기느니라.'
  '세존이시여, 뒤바뀐 법이 의심을 인하여 생긴다 하심은 실로 말씀하심과 같나이다. 왜냐 하면 나는 의심이 있었삽고 의심인 연고로 뒤바뀜이 생기어서 세존이 아닌데 세존이란 생각을 내었삽더니, 지금 부처님을 뵈옵고 의심이 없어졌으며, 의심이 없으므로 뒤바뀐 생각도 다하였고, 뒤바뀜이 다하였으므로 간탐심과 질투심이 없어졌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그대의 말대로 간탐·질투가 없어졌으면 아나함과를 얻었는가. 아나함은 탐하는 마음이 없나니, 만일 탐심이 없다면 어찌 목숨을 구하려고 여기 왔는가. 참으로 아나함이면 진실로 목숨을 구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뒤바뀐 마음이 있는 이는 목숨을 구하고 뒤바뀜이 없는 이는 목숨을 구하지 않는다 하거니와 저는 목숨을 구함이 아니옵고 구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신과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교시가여, 부처님의 법신과 부처님의 지혜를 구한다면 오는 세상에 반드시 얻으리라.'
  이 때에 제석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즉시 소멸하여져서, 일어나 예배하고 세 바퀴를 돌고 공경하고 합장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죽었다가 살았고 목숨을 잃었다가 목숨을 얻었사오며, 또 부처님께서 수기하시기를,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시니, 이것이 다시 산 것이며 다시 목숨을 얻음입니다. 세존이시여, 온갖 세간 사람 천상 사람이 어찌하면 많아지오며, 무슨 인연으로 줄어지나이까?'
  '교시가여, 싸우는 인연으로 사람과 하늘이 줄어지고 화합과 공경을 닦으면 느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싸우기 때문에 준다 하오면 저는 오늘부터 다시는 아수라와 싸우지 않겠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잘하는 일이다. 교시가여, 부처님 세존이 욕되는 일을 참는 법을 말씀하는데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일이 되느니라.'
  이 때에 제석환인은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나이다. 대왕이여, 여래께서 나쁜 모양을 없애었므로 부처님을 불가사의라 하오니, 왕이 만일 가시기만 하면 무거운 죄악이 반드시 없어지리이다.
  대왕은 또 들으십시오. 한 바라문의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불해(不害)라 하는데, 한량없는 중생을 죽이었으므로 또 앙굴마라라 이름하며, 다시 어머니를 죽이려고 나쁜 마음이 일어날 때에 마음이 따라 동하였고 몸과 마음이 동하였으므로 5역죄의 인이 되고, 역죄의 인연으로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뒤에 부처님을 뵈올 때에 몸과 마음이 동하여 해하려 하였으니, 몸과 마음이 동함은 5역죄의 일이요, 역죄의 인연으로 지옥에 들어갈 것이거늘, 이 사람이 여래를 만나서 지옥의 인연이 소멸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니 외도의 6사(師)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또 수비라 왕자는 그 아버지가 성을 내어 손발을 끊어서 우물 속에 넣은 것을 어머니가 가엾게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건져내어 데리고 부
   
 
[425 / 909] 쪽  
  처님 계신 데 갔더니, 부처님을 뵈올 적에 손과 발이 도로 구족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여, 부처님을 뵈온 인연으로 현세의 과보를 얻었사오니,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며,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여, 항하의 가에 아귀가 있으니 수효가 5백이오며, 한량없는 옛적부터 물은 보지 못하고, 비록 강가에 이르러도 흐르는 불만 보며, 기갈이 막심하여 부르짖어 통곡하였나이다. 그 때에 여래께서 그 강 곁에 있는 우담바라 숲속에 앉았더니, 아귀들이 부처님 계신 데 와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기길이 심하여 죽을 날이 멀지 않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하의 흐르는 물을 어찌하여 먹지 않느냐?'
  아귀가 대답하였습니다.
  '여래는 물로 보시나 우리는 불로 보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하의 맑은 물은 불이 아니건만, 나쁜 업의 연고로 마음이 뒤바뀌어 불이라 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없애고 물을 보게 하리라.'
  이 때에 세존이 아귀들을 위하여 간탐의 허물을 말씀하시니, 아귀들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갈증이 심하여 아무리 법문을 들어도 마음에 들어가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목이 마르면 먼저 강에 들어가서 양껏 물을 마시라.'
  아귀들은 부처님 법력으로 물을 먹게 되었고, 물을 먹은 뒤에 여래는 다시 가지가지 법문을 말씀하셨으며, 아귀들이 법문을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 아귀의 형상을 벗고 하늘의 몸을 얻었나이다. 대왕이시여,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니,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사위성에 강도 5백 명이 있는 것을 바사닉왕이 그들의 눈을 뽑았더니, 눈이 없고 길잡이도 없어서 부처님 계신 데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
   
 
[426 / 909] 쪽  
  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도적들이 있는 데로 가셔서 이렇게 위로하셨습니다.
  '선남자들이여, 몸과 입을 잘 수호하고 다시 나쁜 짓을 하지 말라.'
  그러자 도적들은 여래의 음성이 미묘하고 청아함을 듣고 곧 눈을 회복하여, 부처님 앞에 합장 예배하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서야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이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덮이시었고 인간 천상만이 아닌 줄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여래께서 법문을 말씀하시니, 그 법문을 듣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므로, 여래는 참으로 세간의 훌륭한 의원이옵고,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또 사위성에 전다라가 있으니, 이름은 기허(氣噓)입니다. 한량없는 사람을 죽였는데, 부처님의 제자 목건련을 보고는 즉시 지옥의 인연을 깨뜨리고 33천에 태어났사오니,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가 있으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위없는 의원이라 하오며, 외도의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바라내성에 한 장자의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아일다(阿逸多)라, 그 어미를 간통하고, 이 인연으로 아비를 죽였더니, 어미가 또 다른 사람과 정을 통하므로 아들이 알고는 또 어미를 죽였으며, 한 아라한이 있어 모든 일을 잘 알므로 그 아라한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또 죽이고는 기타숲 절에 가서 출가하기를 원하였으나, 비구들은 이 사람이 세 가지 역죄 지은 줄을 알았으므로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다시 성을 내어 그날 밤에 불을 놓아서 절을 불사르고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런 뒤에 다시 왕사성으로 갔다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출가하기를 애걸하였더니, 여래가 허락하시고, 그에게 법을 말씀하여 그의 죄를 가볍게 하여주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나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일컬어 세상의 훌륭한 의원이라 하오며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왕의 성품이 포악하여 나쁜 제바달다를 믿고 술취한 코끼리를 놓아서 부처님을 밟게 하였으나, 코끼리가 부처님을 보고는 곧 술이 깨었고, 부처님이 손을 내밀어 머리를 만지면서 법문을 말씀하여,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였나이다. 대왕이시여, 축생도 부처님을 보
   
 
[427 / 909] 쪽  
  고 축생의 업보를 벗어버렸거든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대왕이 만일 부처님을 뵈오면 무거운 죄악이 반드시 소멸될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세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적에 마군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권속들과 함께 보살의 계신 데 이르거늘, 보살이 그 때에 인욕하는 힘으로 마군의 나쁜 마음을 깨뜨리고 마군으로 하여금 법을 받게 하였더니,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큰 공덕이 있나이다.
  대왕이시여, 들판에 귀신이 있어 중생들을 많이 해치는 데, 여래는 그 때 선현장자를 위하여 광야 촌에 가서 법을 말하였더니, 들판에 귀신이 법을 듣고 환희하여 장자를 부처님께 드리고 문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시여, 바라내국에 백정이 있으니 이름은 광액(廣額)이라, 날마다 한량없는 양을 죽이더니, 사리불을 만나서 8계를 받고는, 하루 낮 하룻밤을 지나고 그 인연으로 목숨이 마치고 북방천왕 비사문의 아들이 되었나이다. 여래의 제자도 이런 공덕의 과보가 있거든, 하물며 부처님이겠습니까.
  대왕이시여, 북천축에 한 성이 있으니 이름이 세석(細石)이요, 그 성중에 임금이 있으니 이름은 용인(龍印)이라, 나라와 왕위를 탐내어 부왕을 살해하였고, 살해한 뒤에는 뉘우치는 마음을 내어 나라 정사를 버리고 부처님계신 데 와서 출가하기를 애걸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善來]' 하시니, 곧 비구를 이루어 중죄가 소멸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의 과보를 가지셨나이다.
  대왕이시여, 여래의 동생 제바달다가 승가를 파괴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고 연화 비구니를 해하여 세 가지 역적죄를 지었으나, 여래가 가지가지 법을 말하여 그 중한 죄가 마침내 경미하여졌나이다. 그러므로 여래를 용한 의원이라 하오며, 6사와는 다르니이다. 대왕이시여, 만일 신의 말을 믿사오면 원컨대 빨리 여래에게로 가시옵고, 만일 믿지 않으시면 잘 생각하시옵소서.
  대왕이시여, 부처님 세존은 크게 가엾이 여김이 널리 덮이어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바른 법이 크고 넓어 포섭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원수나  
   
 
[428 / 909] 쪽  
  친한 이에 평등하여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며, 한 사람에게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고 다른 이는 얻지 못하게 하지 아니하며, 여래는 사부대중의 스승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천상·인간·용·귀신·지옥·축생·아귀들의 스승이 되는 터인즉, 모든 중생들도 부처님 뵈옵기를 부모처럼 하여야 하나이다.
  대왕께서는 이런 줄을 아셔야 합니다. 여래는 호화롭고 부귀한 발제가왕만을 위하여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천한 우파리 등에게도 법을 말하며, 수달다아나빈지가 받드는 공양만 받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수달다의 음식도 받으며, 사리불 같은 영리한 근기를 위하여서만 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근성이 둔한 주리반특에게도 법을 말하며, 대가섭같이 탐심이 없는 사람이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 것만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이 많은 난타의 출가도 허락하며, 번뇌가 엷은 우루빈나가섭 등의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 것만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무겁고 중죄를 지은 바사닉왕의 동생 우타야의 출가도 허락하여, 사초(裟草)로 공경하고 공양함으로써 그의 성내는 근성을 뽑고, 앙굴마라가 나쁜 마음으로 해하려는 것을 버려 두고 구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지혜 있는 남자만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리석은 이의 짝이 된 지혜 있는 여인을 위하여서도 법을 말하며, 출가한 사람으로 하여금 네 가지 도과(道果)를 얻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에 있는 이로 하여금 세 가지 도과를 얻게 하며, 부다라 등 바쁜 일을 버리고 한적하게 생각하는 이만을 위하여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빈바사라왕 등의 나라를 통치하고 정사를 살피는 이를 위하여서도 법을 말하나이다.
  또 다만 술을 끊은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즐기는 욱가 장자의 만취한 이에게도 말하며, 선정에 들어 있는 리바다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죽어 상심하는 바라문의 딸인 바사타를 위하여서도 말하며, 자기의 제자들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외도인 니건자를 위하여서도 말하며, 다만 25세의 장년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80세의 늙은이들을 위하여서도 말하며, 선근이 성숙한 이들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선근이 성숙하지 못한 이에게도 말하며, 말리 부인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음녀인 연화녀(蓮花女)를 위하여서도 말하며, 바사닉왕의 훌륭한 음식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429 / 909] 쪽  
  시리국다 장자의 나쁜 음식도 받나이다. 대왕이시여, 시리국다도 옛적에 역죄를 지었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법을 들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나이다.
  대왕이시여, 가령 한 달 동안을 의복과 음식으로 온갖 중생에게 항상 공양하고 공경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 염불하여 얻는 공덕의 16분의 1도 미치지 못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가령 황금을 녹여 사람을 만들고 수레와 말에 보배를 실은 것 각각 백으로써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발심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을 옮긴 것만 같지 못하나이다. 대왕이시여, 가령 또 코끼리 수레 일백 채에 대진국(大秦國)의 가지가지 보물을 싣고, 여인의 몸에 차는 영락을 각각 일백 가지로 보시하더라도, 오히려 발심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을 옮긴 것만 못하나이다. 그것은 그만두고, 만일 네 가지 것[四事]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더라도, 오히려 발심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한 걸음을 걸은 것만 못하나이다. 또 그것은 그만두고, 만일 대왕이 항하의 모래처럼 한량없는 중생에게 공양·공경하더라도,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가서 부처님 계신 데서 정성으로 법문을 듣는 것만 못하나이다."
  이 때에 임금은 기바에게 말하였다.
  "여래 세존은 성품이 조화되셨으므로 조화된 이로 권속을 삼으시니 마치 전단숲에는 전단만으로 둘려 있는 듯하며, 여래가 청정하므로 그 권속들도 청정하니, 마치 용왕은 용으로만 권속을 삼은 듯하며, 여래가 고요하므로 권속들도 고요하며, 여래가 탐욕이 없으므로 권속들도 탐욕이 없으며, 부처님이 번뇌가 없으므로 권속들도 번뇌가 없는 것이거늘, 나는 지금 가장 나쁜 사람이어서 나쁜 업에 얽히고 몸이 더러워 지옥에 매였으니, 어떻게 부처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있겠는가. 내가 설사 가더라도 돌아보지도 않으며, 상대하여 말씀도 하시지 않을까 싶소. 그대는 비록 나를 권하여 부처님 계신 곳에 가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몸이 더럽고 황송하여 갈 마음이 조금도 없구려."
  그 때에 허공에서 이런 말이 들리었다.
  "위없는 부처님 법이 장차 쇠하려 하며, 깊고 깊은 법의 강물이 장차 마르
   
 
[430 / 909] 쪽  
  려 하며 법의 등불이 오래잖아 꺼지려 하며, 법 산이 무너지려 하며, 법 배가 잠기려 하며, 법의 다리가 끊어지려 하며, 법의 궁전이 파괴되려 하며, 법의 짐대가 꺼꾸러지려 하며, 법의 나무가 꺾어지려 하며, 선지식이 가시려 하며, 큰 공포가 장차 이를 것이며, 법에 굶주린 중생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번뇌의 괴질이 장차 유행할 것이며, 암흑시대가 닥칠 것이며, 법에 목마른 시기가 이를 것이며, 마왕은 경행하여 갑옷을 벗으며 부처님의 해는 열반의 산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이 만일 세상을 떠나시면 왕의 중죄를 다스릴 이가 다시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 이미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한 죄업을 지었으니 그 죄업의 인연으로 지옥의 고통을 받을 것이 의심없으리다.
  대왕이여, 아는 없단 말이요 비는 사이란 말이니, 잠깐도 즐거울 사이가 없으므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하나이다. 대왕이여, 가령 한 사람이 혼자서 이 옥에 들어가도 몸이 8만 유순으로 커져서 그 속에 가득하여 빈틈이 없고 몸으로는 두루두루 가지각색 고통을 받으며, 설사 여러 사람이라도 몸이 가득 차서 서로 방해하지 않나이다. 대왕이여, 치운 지옥에서는 잠깐 동안 더운 바람을 만나서 즐거울 수도 있고, 더운 지옥에서는 잠깐 동안 찬바람을 만나서 즐거울 수가 있으며, 어떤 지옥에서는 설사 명이 끊어졌다가도 살아라 하는 소리를 들으면 문득 살아나지만, 아비지옥에는 그런 일이 아주 없나이다. 대왕이여, 아비지옥에는 사방에 문이 있고, 문 밖마다 맹렬한 불이 있어 동서남북으로 서로 통하였으며, 8만 유순 되는 무쇠 담이 둘려 있고 철망이 덮이었고 땅도 철로 되었으며, 위의 불이 아래로 사무치고 아래의 불이 위로 통하였으므로, 대왕이여, 번철 위에 놓인 물고기가 기름이 끓듯이, 지옥 속의 죄인도 그와 같나이다.
  대왕이여, 한 가지 역죄를 지었으면 한 가지 죄를 이렇게 받고, 두 가지 역죄를 지었으면 두 갑절 죄를 받고, 5역죄를 모두 지었으면 다섯 갑절 죄를 받나이다. 대왕이여, 내가 알기에는 왕의 지은 악업이 반드시 면할 수 없으리니, 원컨대 대왕은 빨리 부처님 계신 데로 가시오. 부처님을 제하고는 구원할 이가 없으리다. 나는 왕을 딱하게 여겨서 이렇게 권하는 것이오."
  이 때에 대왕은 이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품고 온몸이 떨리고 사지가  
   
 
[431 / 909] 쪽  
  흔들리기 파초나무같이 하면서 우러러 대답하였다.
  "당신은 누구인데 형상은 드러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가?"
  "대왕이여, 나는 왕의 아비인 빈바사라로다. 왕은 마땅히 기바의 말을 따르고 여섯 신하의 잘못된 소견을 따르지 말라."
  왕은 이 말을 듣고는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니 창병은 더욱 성하여 역한 냄새가 곱절이나 더하였으며, 냉한 약을 바르며 치료하였으나 창이 성하며 뜨거운 독이 더하기만 하고 덜하지 아니하였다.
 

,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