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동산연선사 1) 제자의 행각에 부침
반드시 "생사" 두 자를 이마 위에 붙여두고 이 일을 분명히 판단하도록 하라.
만약 무리들을 따라 떼를 지어 헛된 이야기로 날을 보낸다면,
후일에 염라노자가 밥값을 추심할 것이니,
그때를 당하여 내가 너에게 미리 일러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라.
만약 공부를 하고저 할진대 항상 간단없이 지어가되
어떤 곳이 힘을 얻는 곳이고 어떤 곳이 힘을 얻지 못하는 곳이며
어떤 곳이 잘못된 곳이고 어떤 곳이 잘못되지 아니한 곳인가를 때때로 점검하라.
혹 어떤 자는 포단에 앉아 마냥 졸기만 하다가,
졸음에서 깨어서는 어지러히 망상만 하며,
포단에서 내려오면 곧 잡된 이야기만 치중하는 것을 보니
이와 같이 공부하여서는 비록
미륵하생(彌勒下生) 2) 에 이르더라도 마침내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용맹히 정신을 차려 화두를 들되 밤이나 낮이나
오직 힘써 밀어나갈 것이요, 일 없는 집(無事甲) 3) 에 들어 앉았거나
포단 위에 정신없이 주저앉아 있지 말아야한다.
혹 잡념이 일어 힘써 버려도 더욱 일어나거든
모두를 활활 놓아버리고 조용히 땅에 내려와 한바퀴 거닐은 다음,
다시 포단에 앉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주먹을 불끈 쥐고
척양골(脊粱骨)을 바르게 세워 다시 전과 같이 화두를 들면
문득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 흡사 끓는 물에 한국자 냉수를 부은 것과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공부하면 결정코 집에 돌아갈 4) 시절이 있을 것이다.
▒ 용어정리 ▒
[1] 동산연(東山演) :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선사, 남악하 14세. 백운수단(白雲守端)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면주(綿州)에서 출생, 속성은 등(鄧)씨.
35세에 출가하여 성도에 가서 유식(唯識) 백법론(百法論)을 연구하다가 한번은 "물을 마셔봐야 차고 더운 것을 안다" 는 구절에 이르러 생각하기를 "차고 더운 것을 알기는 하나 이 스스로 아는 물건은 무엇인가" 하고 의심이 나서 강사에게 여러 가지로 물어보아도 아무 말이 없으므로 마침내 말하기를, "스스로 아는 이치를 모르면서 어떻게 강의를 하십니까?" 하니 강사 한참만에 하는 말이 남방으로 불심종(佛心宗)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여러 선지식을 찾아뵈온 끝에 원조본(圓照本)에게 참예하여 의심을 파하긴 하였으나, 아직도 미진한 바가 있어 부산원(浮山遠)에 참예하였다가 다시 원의 권유로 백운단(白雲端)에게로 갔다. 백운을 뵈어서 조주(南泉?)의 "마니주(摩尼珠) 화두" 를 물으니 백운이 되게 꾸짖는데서 곧 깨치고 게송을 지어바쳤는데,
"산 밑의 한뙈기 밭,
몇 번 팔고 다시 산 그 이유를 노인에게 은근히 물었더니,
송죽(松竹)을 이웃하여 밝은 바람 분다.
山前一片閑田地 又手町영問祖翁
幾度賣來還自買 爲隣松竹引淸風" 하였다.
백운은 "옳다" 하시고 방앗간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얼마 후 백운이 "여러 선객이 노산(盧山)에서 왔는데 다 깨친 바가 있어 저에게 '말하라' 하면 제자가 내유를 말하고, '인연을 들어 말하라' 면 또한 밝게 말하고, 또한 '할 말 일러라' 하면 또한 이르나, 그러나 아직 멀었더라." 하는 말을 듣고, 크게 의심이 나서 혼자 생각하기를,
"이미 깨쳐서 말할 것도 잘하고 밝을 것도 또한 밝은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아직 멀었다 하실까?"
하고, 마침내 참구하기를 여러 날만에 깨치고 종전에 보배같이 아끼고 간직하던 것들을 일시에 다 놓아 버리고 백운에게 달려가 뵈오니 백운이 춤을 추었다 한다.
한번은 백운이 대중에게 이르기를,
"고인이 말씀하기를 '거울로 모양을 만들 때에 모양이 다된 후에는 거울이 어느 곳에 있느냐?' 하였으니, 대중은 일러라."
하시는데 대중은 아무도 계합하지 못하는데 사에게 물으니
사는 백운에게 나아가 인사하고
"너무도 많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백운은 웃으면서
"도자(道者)만이 아는구나!"하고 이후부터 백운과 같이 죽비를 들고 대중을 지도하였다.
한 사람이 묻기를,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어떻게 더 나아갑니까?" 하니
"빨리 달려야된다" 하였다.
사는 임제종(臨濟宗)의 대종장으로 사면산(四面山) 백운산(白雲山) 태평산(太平山), 오조산(五祖山) 동선사(東禪寺)등에서 크게 교화하여 많은 제자가 나왔다. 사의 법을 이은 이가 이른바 오조문하 삼불(五祖門下三佛)이라고 일컫는 불과(佛果圓悟), 불감(佛鑑慧勤), 불안(佛眼淸遠)등을 위시한 22인이 있다. 송 휘종(徽宗) 숭녕(崇寧)3년, 법문을 마치고 산내 토목 역사를 돌보고는 "너희들 잘들 힘써라. 나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하고 돌아와 삭발 목욕 후 앉아서 갔다.
[2] 미륵하생(彌勒下生) :
당래에 이 사바세계에서 성불할 부처님이 미륵불인데, 미륵하생이란 "오는 세상에 미륵 보살이 도솔천에서 강탄하시어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한 뒤 3회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 는 경의 말씀에서 나온 말. "미륵하생까지" 라 하면 흔히 "멀고 먼 미래, 미래가 다한 미래"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도 그 뜻이다.
경에 이르기를 미륵불은 정명(定命) 8만4천세시에 출현하신다 하였고, 석가세존이 열반에 드신 후 8백만 9천2백년에 탄생하신다는 설도 있다.
[3] 일 없는 집 :
무사집(無事甲)을 옮긴 말인데, 화두를 알뜰히 궁구하지는 않고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고 "도무지 아무 할 일 없다" 하고 멀건히 지내면서 "본래 일 없는 것이다" 라는 알음알이를 짓고 지내가는 것을 "무사갑에 들어 앉았다" 고 한다. 무사갑은 당후(堂後)의 소실(小室)인데 무용처(無用處)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화두 십종병의 하나.
[4] 집에 돌아간다 :
중생은 제 본곳을 모르고 무지(無知)와 불안 속에서 허둥지둥 눈물과 웃음과 기대와 탄식의 범벅을 먹고 사는 것이니, 이것이 착각(錯覺)의 구름다리를 서성대며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생선(人生線)을 어지러히 방황하는 중생살이의 전부이다. 말하자면 본집은 잊어 버리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것이니 그 원인은 다름아니고 망견으로 인한 착각이 원인일 뿐이다. 그 망견만 버리면 즉시에 대안은지(大安은地)인 자기 본집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이 도리를 궁구하는 공부가 생사윤회고해삼계(生死輪廻古海三界)인 객지살이에서 사덕(四德) 원만한 대해탈지인 본집에 돌아가는 가장 지름길임을 확신하여야 한다. 공안이야말로 중생을 본집으로 이끄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고 안전한 큰 수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