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현사비 선사 1) 시중
대개 반야 2) 를 배우는 보살은 큰 근기를 갖추고 큰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근기가 옅고 둔하거든 모름지기 힘써 괴로움을 참으며
밤낮으로 피로를 잊고 정진하기를 흡사 친상(親喪)을 당한 듯이만 하라.
이와 같이 급하고 간절히 지으며 다시 선지식 3) 의 도움을 받아 뼈저리게 실다히 궁구하면, 비록 둔근일지라도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용어정리 ▒
[1] 현사(玄沙) :
(835-908) 호는 종일(宗一), 법명은 사비(師備)다. 청원 하(靑原下) 7세가 된다. 설봉의존(雪峰義存)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은 사(謝)씨. 어려서부터 낚시질을 좋아하여 복주(福州) 남대강(南臺江)에 배를 띄우고 지냈다. 나이 30세가 되어 문득 세속 생활에 싫증이 나서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선사에게 가서 축발하고 개원사(開元寺) 도현(道玄) 율사에게서 계를 받았다.
처음부터 의식(衣食)을 극히 절제하고 극단으로 고행하며 진종일 정진하였다. 설봉스님은 사를 비두타(備頭陀)라고 부르고 지도하였다. 설봉스님을 따라 상골산(象骨山)에 가서 밤낮을 이어가며 입실 결택(決擇)하더니, 하루는 능엄경을 보다가 크게 깨치고 이로부터 응기(應機)민첩하고 모든 경에도 또한 확통하여 제방 현학(玄學)이 답지하였다.
설봉선사를 도와 지내다가 매계장(梅谿場) 보응원(普應院)에 출세하고 얼마 있다가 현사산(玄沙山)으로 옮기어 여기서 종신하였다.
시중일단(示衆一段) -
"이제 너희들은 이일(一大事)을 마쳤느냐? 안심입명(安心立命)도리를 얻었느냐? 이 도리를 판단하지 못하였다면 너희들이 보고 듣는 산하대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광로화상(狂勞華相)인 것이다.
무릇 출가인은 마음을 밝혀 근본을 요달하는 것이 사문인데 너희들은 이제 머리 깎고 가사를 입어 겉모양만 사문 모양을 하고 자리리타(自利利他)의 분을 하는 것처럼 차렸으니 이제 알고보니 모두가 캄캄하기가 그야말로 먹통이로구나.
제 치닥거리도 못하는 위인들이 무슨 남을 돕는다 하느냐? 인자(仁者)야! 너희들은 이 일이 참으로 큰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예 한가하게 모여 앉아 어지러히 잡된 이야기나 희롱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마라. 참으로 세월은 빠르고 시간은 귀한 것이다.
아깝다. 대장부들아! 어찌하여 스스로 살피고 이 일을 밝혀내려 하지 않는가! 하루 아침에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덮치면 그런 구물구물 졸던 살림으로는 터럭끝 만큼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업식이 망망하여 아무것도 빙거할 것이 없으니, 나귀배나 소배에 쑥 들어가기도 하고 쟁기를 끌거나 길마다 안장을 지기도 하고 지옥멧돌에 들어가거나 화탕노탕에 굽고 져지기도 하리니 어찌하여 사문이 이꼴이 된단 말이냐?"
후량(後梁)태조 개평(開平) 2년 74세로 시적(示寂)하였다. 그의 법을 받은 제자가 13인이 있는데, 그중에 나한원(羅漢院) 계침(谿琛)선사가 있다. 저술로는 현사어록(玄沙語錄) 3권, 현사광록(玄沙廣錄) 3권이 있다.
[2] 반야(般若) :
중생이 중생된 연유가 오직 미혹으로 인한 착각으로 말미암아 지견이 전도하여 본래의 자기 즉, 부처와 더불어 지혜와 덕상과 위력이 자족한 자기를 한정 상태로 결박지워진 까닭이니, 실은 한정 결박된 것이 아닌 것을 그렇게 착각하고 망견을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므로 결박 부자유에서 해탈하는 길은 그 첫째가 어떠한 역량이나 복을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바른 지견 즉 이 바른 종사를 만나는 것을 첫째가는 큰 복으로 치는 소이가 있다.
공부인은 밝은 지혜에 의하여 비로소 정지견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종문을 '반야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공부인의 지혜를 '반야'라고도 한다. 반야는 범어의 "푸라쥬냐" 인데 반야는 팔리어를 음대로 적은 것이다. 일체 사물의 도리를 밝게 사무쳐 보는 깊은 지혜를 말한다.
[3] 선지식(善知識) :
또는 도사(道師)라고도 한다. 사람에게 능히 생사가 없는 도리를 설하고 학인을 이끈다.